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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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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27 ㅣ No.1055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4) 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상)

 

 

상담을 통해 도움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유형으로 심리적인 고통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심리적인 고통이란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며 불안한 증상에서부터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역시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포함해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유발하는 고통이 존재한다.

 

심리적 차원이든 관계적 차원이든 우리는 다양한 유형의 십자가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진정한 고통은 이 두 차원의 문제가 서로 통합이 되지 않을 때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대인 관계적 문제가 발생하고, 반대로 대인관계를 잘하려다 보니 자신의 심리적 고통이 발생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마치 시소를 타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나를 우선으로 챙기면 타인이 피해를 보게 되고, 반대로 타인을 먼저 생각하자니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30대 중반의 실비아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당연히 대인관계는 원만하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되고 심장이 조여드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매일 두통과 불면증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 시작되었다. 소화기내과와 심장내과를 찾아가 진료를 보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만 해줄 뿐이었다. 정신과를 찾아간 실비아는 자신이 불안장애 환자이며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실비아는 불안을 가라앉히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2년째 복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신체적인 증상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심리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 오히려 더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약물치료는 증상 완화를 위한 것이지 온전한 치료와 회복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실비아는 불안신경증을 극복하기 위한 심리치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찾아간 간 상담실에서 실비아는 비록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해 주는 상담자를 만났다. 상담자는 지금까지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왔던 삶의 태도를 자신에게 맞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까지는 나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며 살아왔지만(You-OK), 이제부터는 타인보다는 자신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한다(I-OK)는 말이었다.

 

실비아는 이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인지 의문이 들었다. 실비아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은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한 삶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타인을 위한 자신의 인생 태도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심리적 불안과 신체적 증상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자는 바로 그런 삶의 태도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과 신체적인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치유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의 종교적 믿음이 불안신경증의 원인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실비아는 심리상담을 통해 안정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상처를 겪게 되었다. 복음대로 살아가려는 자신의 삶을 인정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상담자에게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실비아는 신앙이 없는 상담자를 떠나 자신을 신앙 안에서 치유해 줄 수 있는 상담자를 찾고 있었다. 결국, 사제를 찾아오게 된 실비아는 이전 상담으로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함께 불안한 마음과 신체적인 증상까지 모두 치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표현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24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5) 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중)

 

 

겉으로 보기에 실비아의 심리적 불안의 문제는 그 근저에 종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프로이드(Freud)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종교가 “신경증 환자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도 실비아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종교가 신경증 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신경증 환자를 만들고 있다면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는 개인의 신념이 신경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실비아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말씀을 “이웃을 너 자신보다 우선적으로 혹은 너 자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의식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왜 내 자신보다 이웃을 더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나의 질문에,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내 자신보다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예수님이 더 기쁘게 생각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말을 통해 실비아는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가치를 더 강조하신 분이라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비아의 이런 종교적 신념의 형식들은 그녀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았다. 실비아는 선과 악은 명확하고 절대 그 중간은 없다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세상에 온전한 선행은 있어도 적당한 선행은 없다고 믿었다.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철학적 담론들은 모두 마귀가 인간을 꾀어내기 위한 시도일 뿐이었다.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은 이기적 본성을 합리화하는 말일 뿐이었다. 근본적인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기 어려워 꾸며낸 자위적 말일 뿐인 것이다.

 

실비아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를 자신의 영성적 모델로 삼았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가 평소 즐겨 묵상한 성경 구절, 즉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점점 죽이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자신을 죽이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진실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실비아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영적 실천을 수행했다. 추운 겨울밤 서울역 지하도 안에 노숙하는 분들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점퍼나 코트를 벗어주는 일은 그나마 쉬운 사랑의 실천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거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그 음식값과 영화비용을 저금해서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놓았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일어나면 곧바로 이웃을 위한 봉헌으로 희생했다. 추운 겨울에도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면 따뜻하게 입고 다닐 수 없었으며, 굶주린 사람을 생각하면 배부르거나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로 살아있는 성인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비아에게 육체적 건강이 악화되고 심리적 불안이 심각해지는 현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할 자신이 오히려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몸과 마음의 고통은 영성적 길을 걷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사회생활은 물론이요. 선행도 실천하기 어렵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실비아는 이 건강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선행의 영성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의사와 상담자를 만났다. 하지만 신체적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도 소용없었고 심리적 건강을 도와주는 상담사도 자신을 돌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인 사제에게 도움을 청하는 실비아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3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6) 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하)

 

 

실비아의 종교적 신념 자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태도가 정서적 불안과 함께 신체화 증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억눌린 이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병자들에게는 영육간의 치유를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이 신경증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실비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거나, 아니면 생활에 잘못 적용함으로 인해 문제를 갖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비아는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는 실비아의 양육보다는 오로지 집안일을 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밥 짓는 일부터 시작하여 빨래와 청소 그리고 의붓동생을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집안일은 실비아에게 도맡겼다. 실비아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계모가 시키는 일을 온전히 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체벌과 가혹한 학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실비아에게 이런 삶의 고통을 이겨낼 힘은 오로지 신앙밖에 없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곧바로 계모에게 적용되었다. 실비아는 계모의 말에 순종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곧 사랑의 실천이며 동시에 못다 한 친어머니를 향한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계모 밑에서 겪는 혹독한 시련들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였다. 계모가 아무리 힘든 일을 시켜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감내할 힘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웃(계모)을 사랑하라는 복음 말씀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다 보니 자신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실비아는 집을 떠나 독립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부터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심리정서적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는 삶의 방식이 사회의 대인관계에서는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거처럼 자신보다 남을 더 우선적으로 돌보며 배려했지만, 자신이 느끼는 것은 언제나 공허하고 무기력한 마음뿐이었다. 실비아는 어린 시절 기능했던 삶의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수님의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신이 보호받을 길은 없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었다.

 

상담을 통해 실비아는 타인을 먼저 돌보는 사랑의 실천 없이도 하느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실비아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계모의 말을 잘 따라야만 그나마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삶의 경험이 하느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을 잘 섬겨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신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을 먼저 챙기는 것이 자유로운 기쁨이 아니라 강박적인 의무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상담 과정에서 실비아는 수십 년 동안 억압됐던 계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그 어떤 종교적인 수치심이나 죄의식 없이 모두 쏟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계모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자신의 느낌을 억압하고 있었던 실비아는 감정이 정화되고 환기된 이후에야 비로소 상처 입은 자신을 온전히 안아줄 수 있었다. 또한, 계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실비아는 계모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자신과도 화해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마침내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이웃 사랑은 공허한 자신의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해진 자신의 온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라틴어 속담에는 “아무도 받지 않고서 남에게 줄 수 없다(Nemo dat, no quod habet)”는 말이 있다. 여기에 사랑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7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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