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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폭력 없는 세상은 가정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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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14 ㅣ No.1056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7) 폭력 없는 세상은 가정으로부터 (상)

 

 

2003년 7월 5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K소장은 ‘한국 가정의 위기 진단- 이혼 현상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고 나는 이 발표에 대한 논평자로 참석했다.

 

K소장은 한국 가정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이혼율이 높아지고 가정이 해체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가부장적인 가정문화와 가정폭력을 꼽았다. 그는 전통적으로 남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고수하는 한국사회가 점차 새로운 양성평등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혼율이 자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였다. 게다가 남성 중심의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남성들은 오직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에 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그 결과 평등한 가정 문화를 정당하게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폭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가부장적 문화와 가정의 폭력이 이혼과 가정해체를 급속하게 진행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됐다.

 

이 주제발표에 대해 나는 남성 중심의 가족관과 가정폭력이 가정 붕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교회는 사회문화적 원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며 다소 이상주의적 논평을 했다. 내가 생각한 근원적 원인이란 가정과 혼인에 대한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있었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물질만능사회 혹은 소비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상품화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혼인도 선택했다가 원하지 않으면 다시 폐기할 수 있는 상품처럼 여겨질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세속주의적 가치관을 복음 정신으로 변화시키고 가정이 상품화되어가는 풍조를 그리스도교적 혼인관으로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교회는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혼인의 단일성’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제48항에는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으로 세워진다”라고 천명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하시면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4-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원론적 논평에 대해 K소장은 교회의 사목적 돌봄은 좀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복음 정신과 양성평등의 가치관에 기초하여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데 힘쓰자는 것이었다. 이혼한 가정 안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정폭력이었다. K소장은 실제로 가정폭력이야말로 성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며 동시에 가정해체를 가속하는 가장 핵심적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겠다고 사제가 되었지만, 정작 한 분 한 분의 인생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가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고, 몇몇 가정의 폭력적 상황은 예외적 사건인 줄 알았다. 과잉 일반화를 경계하면서 나는 대부분 가정이 그래도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실로 믿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상당히 많은 가정에서 서로 폭력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모른 채 폭력이 대물림되고 있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14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8) 폭력 없는 세상은 가정으로부터 (중)

 

 

가정폭력이 무엇일까?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이며 신체적인 폭력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물리적으로 힘이 센 남편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내에게 가하는 신체적인 폭력이 생각난다. 하지만 가정폭력의 개념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가정폭력은 모든 가정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부부간에, 자녀들에게, 그리고 부모를 향해 가해지는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 성적, 그리고 경제적 폭력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은 자신을 방어하고 생존하기 위해 ‘공격성’이라는 속성을 진화를 통해 발전시켜 왔다. 즉, 공격성은 음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동시에 타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기제이다. 하지만 공격성은 생존이나 방어가 아닌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격성이다. 이때 공격성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한다는 긍정적 의미를 상실하고,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부정적 의미로 전환된다. 이처럼 공격성이 폭력성으로 바뀌는 과정 안에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항상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묻기 이전에, “욕구와 욕망은 과연 폭력으로만 채워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화와 소통, 협상과 타협을 통해 원시적 폭력성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방식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연민과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욕구와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의 폭력성은 분명 극복 가능한 것이다. 폭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우리는 가정 내에서부터 폭력을 몰아내야만 한다. 성가정을 이루기 이전에 폭력 가정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의 폭력이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폭력이 부지불식간에 그리고 무지와 몰이해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데레사는 그날따라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학원을 빠지고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온종일 놀고 난 후 밤늦게 귀가했다. 이미 학원으로부터 데레사가 학원에 결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데레사가 집에 오자마자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데레사는 하루 정도는 학원을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어머니의 야단에 말대답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의 등 짝을 한 대치며 “넌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 “도대체 그 말버릇 누구한테 배운 거야?”, “넌 학원 다닐 자격이 없어, 앞으로 학원 다니지 마!”라고 윽박지르며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에서 이런 경우는 흔히 발생할 수 있다. 사실 많은 부모는 이런 상황을 자녀양육의 과정으로 보고 있으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분명히 가정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아이를 때리고, 소리치며,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면, 이것은 명확히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해당한다.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가족관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가족 안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쯤 되면, 폭력 없는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2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9) 폭력 없는 세상은 가정으로부터 (하)

 

 

가정에서의 폭력은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성적, 경제적 폭력과 방임으로 구별된다. 신체적 폭력은 물리적인 힘이나 도구를 이용해 신체를 직접 때리는 일, 혹은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몸을 세게 움켜잡으며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방에 가두는 행위도 여기에 해당하며, 만일 폭력으로 몸을 다쳤는데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에 보내지 않아도 신체적 폭력에 해당된다.

 

언어적 폭력은 욕설, 폄하발언, 비방, 허위사실 유포, 협박 등이 해당한다. “대체 누구를 닮아서 공부도 못하고 말을 안 듣냐?”와 같은 말은 언어적 폭력이다. 또한, 별명 부르기, 욕설하기, 앞뒤에서 흉보기, 부모님을 비난하며 말하기, 신체적으로 놀리기, 약점 가지고 놀리기 등도 언어적 폭력에 해당한다.

 

정서적 폭력은 폭언, 무시, 모욕과 같은 언어폭력이 기분을 상하게 만들 때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는 언행,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 무시함,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함, 애완동물을 학대하는 등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성적 폭력은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나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할 때 발생한다.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억지로 성행위를 강요할 경우 부부간에도 부부 강간죄가 성립된다.

 

경제적 폭력은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동의 없이 임의로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는 행위, 가족구성원의 소득을 가로채거나 임의로 사용하는 행위, 집안의 돈을 동의 없이 가지고 나가는 행위, 무계획적으로 빚을 지는 행위, 생활비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구성원들을 통제 혹은 방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방임은 생계위험에 노출하는 행위는 물론이요 정서적인 무관심, 냉담, 교육을 하지 않거나 오랜 시간 가둬 놓는 등 기본적인 존엄성을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가정폭력의 종류와 형태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사실 너무나 폭력이 일상화되어 무엇이 폭력인지조차 잘 가늠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자녀의 훈육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배우자와의 작은 의견 대립일 뿐이다” “어느 집이나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조그만 폭력 앞에 사람들은 너무 관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폭력도 폭력이며 이것은 분명한 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가정에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폭력을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우리 가정이 폭력에서 벗어나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 “남의 집 일에 상관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다. 이웃이나 지인의 폭력 사실을 알았다면, 신고하거나 이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셋째, “내 아이니까, 내 맘대로 때릴 수 있다”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이며, 고유한 인격체이다. 넷째,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 맞는 것이다”가 아니다. 세상에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다섯째, “신체적인 폭력보다는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 그나마 나을 수 있다”가 아니다. 언어적 폭력은 신체적 폭력에 비해 훨씬 더 오래가고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폭력 없는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믿고 싶다. 왜냐하면,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이미 하느님의 축복으로 성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네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햇순들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시편 128,3-4)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28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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