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침잠의 영성2 - 침잠에 들어간 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현존의 빛 안에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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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08 ㅣ No.1807

[현대 영성] 침잠의 영성 (2) 침잠에 들어간 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현존의 빛 안에서 보게 된다

 

 

‘침잠’ 혹은 ‘거둠’은 추리적 묵상과 관상 사이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관상(Contemplation)의 은총을 얻기 위한 준비로 세 가지를 언급하는데, 추리적 묵상(Discursive Meditation), 거둠(Recollection), 고요의 기도(Prayer of Quiet)가 그것이다. 여기서 Recollection을 데레사 성녀의 영성을 연구한 이들은 ‘거둠’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외부로 흩어져 있던 자신의 지성과 기억, 의지 및 감각들의 활동을 거두어 잠잠하게 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 안으로 모든 관심을 집중하여 그곳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통교하는 것이 바로 거둠이다.

 

토마스 머튼도 관상을 위해 필요한 침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마음은 하느님께 집중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야 하고, 이를 위해 감각들은 침잠해져야(be recollected)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감각들을 온종일 통제할 수 없다면 이것은 기도를 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도 때에 하느님께 집중하여 믿음의 분위기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적절한’ 침잠은 모든 기도 시간에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에서 머튼은 “침잠은 영적 초점의 변경이며 우리의 온 영혼을 자신 너머, 저 위의 존재, 하느님께 맞추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세상에서 어지럽게 살았던 우리의 모든 삶과 감각들을 정화하고 하느님께 집중하여 그분의 뜻하심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침잠인 것이다. 그는 침잠과 집중을 구분하는데, 이 둘은 공존할 수 있지만 사고를 한곳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침잠은 “단순화를 통해 사고를 흩뜨려 긴장과 자기 관리의 수준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머튼이 말하는 침잠은 외적인 것들을 배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것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을 질서 있게 정리해 주는 것이 바로 침잠이다. 침잠에 들어간 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현존의 빛 안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잠은 하느님의 부재가 아니라 현존의 상태이다. 머튼은 침잠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 현존하도록, 그분 안에서 우리 자신에게 현존하도록, 그리고 그분 안에서 다른 모든 것에 현존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침잠의 열매는 무엇일까? 침잠은 무엇보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환상이나 헛된 망상 속에서 만들어 놓은 자신을 쫓으며 살아갈 때, 혹은 현실을 회피하며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하느님 안에서 침잠할 수 없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먼저 현재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삶의 근심이나 주의를 끄는 것들이 우리를 스스로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러한 것에 자신을 맡기고 있는 한, 마음은 집에 있지 않다. 실체에서 벗어나 환상에 빠져 그것을 쫓고 있는 것이다…. 미래와 과거는 항상 우리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므로 우리 것이 아니다. 현재야말로 우리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다.” 침잠은 우리가 ‘오늘’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침잠은 또한 외적인 활동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균형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나친 외적인 활동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은 침잠에 방해가 되지만,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 안에 침잠해 있는 사람은 외적인 활동 가운데에서도 내적 순수성과 외적 주의력 사이에 균형을 가질 수 있다. 참된 침잠된 활동과 기도의 비결은 결국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 기도의 결과에 대해 초연하게 대처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침잠에 들어가는 것을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침잠은 궁극적으로 믿음에 근거하고 걱정, 근심은 믿음의 핵심을 침식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침잠은 영혼을 빛이나 공기가 없는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기에 내적인 금욕생활이나 신앙생활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행위 자체가 아닌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더 깊이 침잠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의 행위는 더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분주하게 일상을 살면서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침잠의 영성은 참된 하느님과의 친교(Communion)를 알게 해 줄 것이다.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외로운 상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독과 침잠 속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운, 자연적인 친분이 주는 환상보다 고독의 실체를 선호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보이지 않는 친교를 알게 된다.”(토마스 머튼)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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