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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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3: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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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20 ㅣ No.1726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3)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합생태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 하느님은 인간에게 창조질서에 따라 하느님의 경륜을 실천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사명을 외면함으로써 집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루카스 그라나흐 작 ‘에덴 동산’. 출처=위키디피아.

 

 

지난 연재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창한 ‘통합생태론’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의미론적으로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창조로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집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생태’, 인간 공동체의 ‘사회생태’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환경생태’, 이 세 가지 차원의 집을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임시로 분양받아 살아가고 있다.

 

 

임시 분양받아 살아가는 세가지 차원의 집

 

이를 전제로, 인간은 오늘날의 인간과 공동체, 생태계 위기를 바라보아야 하며 이에 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하느님에게 부여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각기 자신의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도록 그리고 잘 유지되고 고양되도록 세 가지 차원의 집들을 잘 돌보라는 사명을 내리셨다. 이와 관련해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여기서 ‘에덴을 잘 돌보라’는 뜻은 하느님의 집으로써 ‘인간 생태’, 공동체 상생의 집으로써 ‘사회생태’는 물론, 이를 떠받치는 토대로써 모든 생명체의 공동의 집인 ‘환경생태’까지도 인간이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내리신 돌봄의 사명은 각각의 집의 목적에 맞게 그리고 그것을 통합적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창조 목적에 맞게 유지, 보호되도록 힘쓰라고 주문하신 것이다.

 

또한 집을 잘 돌보라는 사명은 ‘Economy(경제)’라는 용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래 Economy(경제)라는 말의 어원은 희랍어 Oikos (Eco) + Nomos(nomy)의 합성어로 ‘원리’나 ‘질서’에 따라 ‘집을 돌본다’는 뜻이다. 즉 서양어 경제(Economy)란 용어에는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가 그렇듯이, 이미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Economy)와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가 서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은 어원적으로 집을 돌보는 것, 곧 ‘경제’(Economy)라고 할 수 있다. 단, 집을 돌보라는 사명이 인간의 자의적 판단이나 탐욕에 의해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집들의 질서’인 통합생태론(Integral Ecology)에 따라 돌보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돌본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경제(경륜)’(경제(Economy)라는 용어를 교회에서는 주로 ‘경륜’으로 번역한다)를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부여받은 사명, 즉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하느님의 경륜(경제)’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창세기 3-4장에서 인간은 자기 범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을 외면함으로써 집들이 무너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실 때 아담은 두려워서 숨었다. 또한,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라고 물었을 때, 카인은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하느님께 반발한다. 이때부터 이미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질서 구상(Ecology: 생태론)에 따른 하느님 집의 돌봄이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어기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음에도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계약을 통해(창세 9,9) 훼손된 관계와 붕괴한 집들을 복구(구원)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셨다. 이러한 하느님의 업적을 ‘하느님의 구원 경륜(경제, Economy of Salvation)’이라 일컫는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은 ‘하느님의 구원경륜’의 역사, 즉 하느님께서 무너진 집을 바로 일으켜 세우시려는 복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 무너진 집을 복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십계명’을 주시고 예언자들을 파견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외아들마저 이 세상에 내어 놓으셨다.(요한 3,16) 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은 나머지 “하느님의 집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본래의 사명을 또다시 망각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후기 산업시대를 맞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 사회 공동체의 위기, 지구환경의 위기의 가속화에 봉착하였다.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합생태론’에 기초를 두고,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 즉 ‘하느님의 경제(경륜)’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만한 생각으로, 같은 인간에게 하느님 창조질서에 어긋난 행위를 자행하거나, 물질문명에 함몰된 나머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무한 경쟁체제만을 추구하거나, 생태계를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시도 등은 모두 하느님의 경륜(경제)에 어긋난다고 하겠다. 또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경제)’에 힘입어 온갖 죄로 물든 우리 ‘인간성’이 먼저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2월 19일,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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