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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레지오 마리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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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5 ㅣ No.792

[허영엽 신부의 ‘나눔’] 레지오 마리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학교에서 싸우게 되면 어떤 아이는 “너! 우리 형 데리고 와서 때려준다”며 으름장을 놓는 아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몇몇 아이들이 한 여학생을 심술궂게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쉬는 시간에 우리 반에 그 아이의 5학년 오빠가 찾아와서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자신의 동생을 괴롭힌 아이들을 색출해서(?) 교단으로 끌어내 혼내주었습니다. 당연히 그 이후에는 그 여학생을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괴롭혔다가는 경을 칠게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보호와 인정을 받을 때 행복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주변에 아무도 나의 편이 없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심한 불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성경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대명사입니다. 아무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대변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과부는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남편이나 아들 등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여성을 지칭했고,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이스라엘에서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였습니다. 실제로 과부들은 특히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빈곤층을 형성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우선적으로 기억하고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이고 그들을 돕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선은 교회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최일선에서 성실하게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가 레지오 마리애라고 생각합니다. 레지오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921년 9월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시에서 20대의 젊은 여성 15명이 환자 방문 계획을 세우기 위한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1925년 11월 예전의 로마군대를 본뜬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라는 명칭을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53년 5월 당시 광주교구장 헨리(Henry) 주교님께서 목포시 산정동본당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경동본당에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을 처음 만들어 레지오 마리애가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우리 교회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존재와 활동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에는 레지오 마리애의 역할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놀라운 발전은 세계교회 안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지닙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성모님의 깊은 겸손과 완전한 순명을 본받고 끊임없는 기도를 하면서 봉사의 정신으로 활동합니다. 본당의 사목 방침과 지도에 따라 봉사하고 선교 활동을 하는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제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가 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주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제가 사목한 본당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밤중에 갑자기 응급실로 가야할 정도로 아프시면 멀리 살고 있는 자녀들보다 주변에 살고 있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에게 전화를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성당에 며칠 안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시면 레지오 단원들이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외롭게 홀로 세상을 떠난 분이 계시면 영안실을 지키고 기도를 지속적으로 드리는 것도 항상 레지오 단원들의 몫이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희생과 활동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질이나 영적으로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먼저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아가셨기 때문입니다.(루카 4,16)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주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끊임없는 기도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찾아 도와주고 그들의 힘이 되어주는 희생과 활동으로 그들의 벗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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