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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산재는 정말 불의의 사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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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08 ㅣ No.1270

[알아볼까요] 산재는 정말 ‘불의의 사고’일까?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이 자연스럽게 사그라지는 날을 맞이하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

 

2018년 12월 10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하던 24살 청년 김용균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찢겨 사망했다. 취업한 지 3개월째다. 공공기관에 취업했다고 부모님은 양복과 신발을 사줬다. 김용균은 그 옷을 입고 부모님 앞에서 이래저래 포즈를 취했고 세 가족은 한껏 웃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20년 5월 22일, 재활용업체에서 일하던 김재순은 파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김재순 노동자는 사망사고가 있기 전 너무 열악하고 힘든 직장이라 그곳을 퇴사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돌아갔다. 26살의 청년, 장애인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남들이 기피하는 곳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산업재해로 병이 들거나 다치고, 사망한 이들에게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고 말하곤 한다. ‘불의의 사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일이나 상황에서 생긴 사고를 말한다. 정말로 산재는 불의의 사고일까?

 

 

이유를 알 수 있는 죽음들을 막기 위해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일터 어디에선가 죽고 있다. 1~2년 사이에 새롭게 생긴 일이 아니다. 매년 정부의 공식 통계가 말하는 2400여 명의 산재사망자 중 절반은 건설현장에서 떨어지고 부딪히면서 목숨을 잃는다. 매해 11만여 명의 노동자가 어느 일터에선가 병들고 다친다.

 

그래서 청년비정규직 김용균의 죽음을 보며 “우리가 김용균이다”를 외쳤던 시민 노동자들이 나섰고, 국회는 압박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지만 아쉽게도 구멍이 많았다.

 

그래서 다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만들자고 요구했다. 세월호참사처럼 영국에서도 배가 침몰하는 재난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가리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업살인법’을 만들었다. 산재, 참사가 벌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기업과 경영책임자가 원인제공자이기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에서라도 사망사고를 줄여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나 산재 사망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산재는 기업의 문화나 분위기, 운영구조, 작업시간, 작업 인원 등의 조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 산재를 줄이거나 없애기 힘들다.

 

2020년 4월 봄날에 발생한 건설현장의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원청사가 정한 공사비용을 시공사가 받아서 16개가 넘는 하청업체에 또 일을 나누고 공사비용을 나눠준다. 한익스프레스는 길어지는 공사 기간을 줄이기를 원했고 공사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시에 하면 안 되는 작업들이 마구잡이로 진행된다. 원청이 정한 제대로 공사하기엔 짧은 기간, 다단계로 이어지며 줄어드는 공사비용은 더 적은 사람을 고용하고, 더 싼 재료를 쓰고, 혼재작업을 하게 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고가 나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피해를 입으면 ‘산업재해’가 되고, 시민이 피해를 입으면 ‘시민재해’가 된다. 2021년 6월 여름의 초입에 광주 건물해체공사 중 건물이 무너져 지나가던 시민이 죽고 다쳤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넘어진 자리에 또 넘어지는 이유가 뭘까”로 시작된 요구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와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책임은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법이다. 책임을 강제하는 방안 중 하나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작업자, 안전관리담당자는 회사의 작업구조, 시스템을 안전하게 바꾸고 2인 1조를 시행하기 위해 예산을 더 쓰자고 결정할 권한이 없다. 다만 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용접과 신나 작업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경영책임자가 아니라 용접작업을 한 노동자, 신나 작업을 한 작업자가 처벌받아왔다.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받지 않으니 인원과 작업시간, 운영구조 등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윤을 늘리는 것이 최우선이며 최고의 선이 된 채, 이런 과정이 무한 반복되고 더불어 산재 재난도 반복된다.

 

기업이 잘돼야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기업이윤’을 우선하는 생각들이 산재 발생이 작업자 때문이라는 기업의 핑계를 용인해주었다. 그리고 산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왔다. 이제 한국의 경제는 성장할 만큼 성장했다.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그만해야 하지 않겠나. 누군가의 목숨을 연료로 달리는 기차라면 그 기차는 멈춰야 한다. 그 누군가가 지금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게 했다.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권한자들이 처벌받아야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이런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하청 다단계를 통해 죽음을 외주화하지 말 것,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다할 것, 시민들과 이용자들의 생명을 침해하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는 책임을 다할 것,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권한자들은 처벌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강제할 것, 죽지 않고 일하는 사회, 모두의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향할 것.

 

그러나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사망사고가 가장 많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생명을 가장 우선시 하자는 법의 취지에 어긋나게 죽음방지선이 그어져있다. 다수의 불특정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나 공간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올 6월 광주붕괴사고도 적용받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위험한 화학물질과 과로로 인한 직업병들도 제외시켜 놓았다. 안전과 건강을 위한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안전보건담당부서를 만들고 보고받는 걸로 제한될 가능성도 열어두는 등 시행예정인 법에 대해 벌써 개정 필요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법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에는 부족한 내용은 앞으로 바꿔가야 한다. 법의 존재이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넘어지는 노동자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기보다는, 넘어지게 만드는 걸림돌을 없애야 한다. 걸림돌을 평상시에 잘 살펴야 하고, 치우기 위해 비용도 투자하고 길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 결정권한이 있는 경영책임자와 원청이 달라져야 하고, 정부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작업장에서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알아야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일하다 병들지 않게,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10만 국민동의로 요구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향하는 사회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0월호, 권미정 (사)김용균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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