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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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 하느님의 침묵은 기다림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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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28 ㅣ No.1617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하느님의 침묵은 기다림의 사랑이다

 

 

“매일 기도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제 기도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요.”

“세상의 고통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나요?”

“고요히 침묵 가운데 머물며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온갖 생각들만 가득합니다.”

 

 

요즘 저희 분도 명상의 집에는 많은 분들이 고해 성사와 면담을 위해 찾아옵니다. 그 가운데 50~60대 어머님들은 자식 걱정이 참 많으십니다. 자녀들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성당에도 잘 다니고 복사도 서는 착한 아이였는데 요즘은 성당에 가라고 하면 오히려 짜증을 내거나 외면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고민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자녀들은 하느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엄마의 하느님’을 떠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성모님의 지켜보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이 어릴 때는 모든 것을 돌보아 주고 함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공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직접 돌보는 사랑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 지켜보는 사랑은 믿음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인 십자가 아래에서는 눈물로 그 고통에 함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어머니는 자녀들이 ‘나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성당에 계신 하느님을 넘어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어머님이 성모님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지지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성당에 가라는 잔소리는 이제 그만하시고, 성당 다니는 사람답게 예수님의 더 큰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눠 주셔요.”

 

성모님의 드러나지 않는 겸손과 침묵의 삶은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침묵 역시 우리를 향한 기다림의 사랑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루카 15,11-32 참조)을 침묵 중에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안아 주시는 그 아버지의 침묵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기에 침묵으로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침묵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불의에 방관하는 그런 침묵이 아닙니다. 정의를 위한 외침을 진정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침묵 중에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 먼저 필요한 것입니다.

 

침묵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 자신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의 현존 체험은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삶은 듣는 것이고 그분이 말씀하신다. 나의 구원은 듣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의 삶은 침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침묵이 곧 나의 구원이다.”(『고독 속의 명상』) 침묵은 또한 말 없는 창조물과의 영적 친교요 휴식이기도 합니다. 머튼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혀가 침묵을 지키며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면 말 없는 존재들의 침묵이 그들의 휴식을 우리와 나눌 것이다.”

 

이러한 영적 침묵은 외적인 침묵과 내적인 침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로부터 떼어 놓는 외적 침묵은 보다 자신을 하느님께 집중하게 하며, 자신을 거짓 자아로부터 떼어 놓는 내적 침묵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따라서 침묵은 외적인 말과 내면의 소리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종의 기도입니다. 침묵 가운데 고요히 머물며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죄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아픔을 하느님과 함께 아파하고 그분의 도구가 되어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의 침묵은 하느님의 침묵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침묵은 하늘 사랑과 하나 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졌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침묵 중에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2021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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