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억지로 진 십자가의 은총과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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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3-23 ㅣ No.737

[레지오 영성] 억지로 진 십자가의 은총과 축복

 

 

복음을 보면, 예수님 시대에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적은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빵을 얻기 위해,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따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때가 오자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주님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도 다 흩어졌지요. 그리고 남은 자리에는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르던 소수의 사람만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따라갔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누굴까요? 바로 키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사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다인의 명절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이 올라온 평범한 시골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와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무리 지어 걸어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거기서 십자가를 지고 한발 한발 힘겹게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온몸에는 매 맞은 자국으로 인해 피가 흥건했고, 고문으로 초주검이 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을 무심코 따라가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로마 병사 하나가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한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시몬의 마음에는 ‘겁나게 재수 없구나. 어쩌다 이런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됐을까’하는 생각과 ‘저 가엽고 불쌍한 사람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 때문에 억지로 짊어지는 십자가는 없습니까? 또 그 십자가를 원망하고 두려워하며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적은 없습니까?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수많은 무리가 기적의 빵을 먹고, 병을 고침을 받고, 죄를 용서받으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예수님 수난의 십자가를 끝까지 따랐던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울 때 교회를 지키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소수인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성체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가야 하지만,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행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간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4,12 이하)

 

 

키레네 사람 시몬과 후손에게 남겨준 놀라운 은총과 축복

 

사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갔던 사건은, 그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과 함께 후손들에게까지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남겨 주었습니다. 비록 시몬이 당시에는 로마 병사에게 잘못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늘나라의 엄청난 보상이 뒤따랐습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키레네 시몬이 신자가 되었고, 또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에 명성을 떨친 신자가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 15장 21절에,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시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이 이름만 밝힌 것을 보면, 이미 복음을 접하는 신자들에게 이들이 이미 잘 알려진 저명인사였음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주님 안에서 선택을 받은 루포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 16,13)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은 다른 구절에도 자주 등장하는(사도 19,33; 1티모 1,20)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키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루포스가 키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라는 데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이나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 루포스의 이름이 기록되고, 바오로 사도로부터 인사 받을 만한 인물이라면, 교회 공동체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특히 시몬의 아내를 바오로 사도가 자기의 어머니와 같다고 칭했다면, 그들은 신앙적으로도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시몬은 어쩌다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잠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지만, 그는 후대에까지 예수님과 함께 그와 가족들의 이름이 거룩함과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어려운 시절을 지나 현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어려움이 오히려 여러분의 영을 튼튼하게 하고, 주님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 계셨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 은총과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지 마시고, 억지로라도 꿋꿋이 지고 가시길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의 헌신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정과 후손에게 큰 은총과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3월호, 김원중 안토니오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전주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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