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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36: 고종과 김대건 신부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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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25 ㅣ No.641

[사유하는 커피] (36) 고종과 김대건 신부의 커피


김대건 신부, 마카오 유학 중 커피 마셨을 것이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인물로 고종(재위 1863~1907)을 제치고 김대건 신부(1821~1846)가 주목받고 있다. 항간에는 고종이 을미사변으로 인해 1896년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뒤 커피를 접하게 됐고, 이것이 한국 커피의 효시라는 말이 파다하다. 하지만 이는 몇 가지 기록만 봐도 어렵지 않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오류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고종의 시대에 커피가 들어왔다는 의미쯤으로 가볍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커피가 물보다 자주 마시는 음료가 될 정도로 일상에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관련 직업군도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가 와인의 10배를 훌쩍 넘어섰다. 이와 함께 커피 인문학이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분위기다. 커피에 관한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고종이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이라는 소문”은 수많은 커피 애호가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사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는 내용까지 고종의 삶과 신념을 속속들이 알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러시아 공사의 가족인 미스 손탁으로 하여금 ‘정동화옥’이라는 사실상의 영빈관을 운영케 함으로써 치밀한 외교전을 펼쳤다거나 아관파천을 통해 경복궁에 남은 친일파를 처단한 전략을 구사한 것은 커피 애호가들이 아니면 묻힐 수 있었던 고종의 일면이기도 하다. 아관파천보다 10여 년 앞서 경복궁에서는 외교관과 선교사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커피와 샴페인, 시가가 공식적으로 나왔다는 증언과 자료들이 여럿 있으니 우리 커피 역사의 깊이는 마땅히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실마리가 될 역사적 사건은 열다섯 살 김대건을 비롯해 조선의 10대 청소년 세 명이 마카오 신학교에서 가톨릭 사제 수업을 받은 장면이다. 이들은 1836년 12월 한겨울, 걸어서 만주 몽고 중국 대륙을 횡단해 7개월여 만인 이듬해 6월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했다. 김대건 신부는 1937년부터 거의 7년간 마카오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생활하면서 서양식 식사와 함께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터라 신학교의 식단은 모두 서구식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커피를 마셨을 정황을 추적하면서 사제가 되기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처절한 사연이 구절구절 드러난다. 포르투갈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필리핀으로 여러 번 피난해야 했으며 사제품도 고국을 향하는 길에 중국 상해에서 받을 수 있었다. 소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기까지 모든 순간이 십자가의 길이었다고 할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학생 김대건은 마카오에서 바뀐 식생활 환경 탓에 복통, 두통, 요통을 달고 살았다. 당시 신학교 자료를 보면 조선 신학생들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빵과 커피를 먹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내 잘 이겨냈다는 내용이 있다. 특히 지도 교수격인 리브와 신부가 1839년 5월 6일 쓴 서신에는 “(김대건이) 잘 먹고 잘 잡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이 고종 시대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이보다 50년 앞선 헌종 때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조선 신학생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대건은 상해에서 사제가 된 뒤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을 향하다 풍랑을 만나 한 달쯤 표류하다가 제주에 표착했으며, 역경을 겪고 1845년 10월 한양에 도착했다. 이듬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했으니 신부로서 조선에서 활동한 기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유네스코가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성 김대건 신부를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커피를 통해서도 그분의 삶이 보다 구체적이고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24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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