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묵주를 손에 든 어머니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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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5 ㅣ No.793

[길 위의 사람들] 묵주를 손에 든 어머니의 선택

 

 

안녕하세요. 성모님의 사랑, 레지오 마리애 ‘성모님의 군대’ 단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한 해 동안 월간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만나 뵐 수 있는 은총이 주어져 저로서는 너무도 영광스럽습니다.

 

한 해 동안 매달 월간 레지오 마리애에 글을 기고해 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아주 가볍게 “예”라고 응답했는데, 사무국장 수녀님이 “정말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하느님께서 힘주시겠지’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 번 “예”라고 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이 느껴졌습니다. 격월로 써보겠다고 할까 망설이다가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저에게 아주 친근한 신심 단체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생 때, 쁘레시디움 서기셨던 어머니 덕분에 교본을 읽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와서도 꾸리아 단장이셨던 어머니의 청으로 단원들의 피정 동반과 영성 강의를 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일상의 보잘것없는 일들에서 크고 영광스러운 일들에 이르기까지 하늘로 올려드리는 분들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입니다. 모든 은총의 중계자이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악에 맞서는 영적 군대답게 단원들의 기도를 담은 삶은 감동을 줍니다.

 

단원들의 숨은 덕행 안에는 성모님의 정신인 겸손, 순명, 부드러움, 기도, 고행, 인내, 순결, 지혜,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덕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그 덕행에 맞갖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모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덕행을 따라 사는 단원들의 무수한 공로들이 하늘로 올려져 우리 교회가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레지오 단원들의 숨은 덕행 안에는 성모님의 정신이 스며 있어

 

평범한 사람들이 보통의 일상 안에서 크고 작은 일을 겪어내면서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평범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그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가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성모님도 그런 분이시지요.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평범한 여인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를 지니셨습니다. 성모님은 다른 여인들처럼 보통의 혼인 여정을 거쳐 아기를 낳고 키우는 기쁨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그 순간부터 성모님의 숨은 삶은 평범하고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이성으로 따져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길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에 간직하면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길을 걸으셨으니까요.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밤새워 기도하셨던 것처럼요.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8-29)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4-35, 37-38)

 

마리아 자매님은 주회합에 참석하러 성당에 올 때마다 저에게 꽃을 한 다발씩 선물해 주셨습니다. 성모님께 드릴 꽃을 사면서 조금 더 샀다면서…. 마리아 자매님은 외동딸 데레사가 첫영성체를 하고 난 후, 43세의 늦은 나이에 아기를 잉태했습니다. 그 당시 마리아 자매님 네는 맞벌이였습니다. 그분들은 각자 보증을 잘못 서서 살던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가고, 가족들은 빈손으로 집을 나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으니, 기다리던 아이가 기쁨일 수 없고 암담하게만 느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저는 늘 꾸준히 성체조배를 해오셨으니 하느님께 여쭤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매님은 언젠가 하느님께 ‘아이를 주시면 꼭 낳아서 잘 키우겠다’고 서원했던 것이 생각나 만 하루 만에 잉태를 기쁘게 받아 안았습니다.

 

고령의 산모라 다양한 검사를 하던 중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많은 혼란 중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태중의 아기를 두고 갈등하는 것을 두고 자매님은 큰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며칠 후, 아기를 기쁘게 낳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자매님은 양수검사를 거부하고 태교에 들어갔습니다. 하느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3주 먼저 출산한 아이를 안고 미안한 마음에 한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는 몇 배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심과 같이 자매님은 아기를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아기를 축복의 선물로 주셨으니 나머지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다 하시라고 맡겨드리며 성모님 앞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 얼이가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

 

 

하느님과의 약속 지키기 취해 다운증후군 아기를 기쁘게 낳아

 

20년이 넘도록 굽이굽이 일도 많았지만, 저는 그 어머니가 아들 얼이를 통해 얻게 되는 기쁨과 생기에 놀라면서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집이 아주 센 얼이가 하는 대로 받아주면서도 지혜롭게 훈육의 때를 기다렸다가 교육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키워가는 얼이 어머니 안에서 저는 성모님의 굳은 의지를 보았습니다. 얼이는 한 번도 부모님을 떠나 본 적도 없고, 부모님이 아이를 혼자 남겨둔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얼이는 자존감이 높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얼이 어머니는 영적으로 점점 더 강건해지고, 시선이 확장되어서인지 다른 어머니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머니들을 통해 고정불변의 세상이 아니라 확장된 세계 안에서 당신 창조사업을 계속하시는 것을 목격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얼이는 21살 멋진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려서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모전에 출품해 프리마켓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간 자주 아팠지만 이젠 건강합니다. 멋진 화가가 되기 위해 매일 그림을 그리는 유쾌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랑스런 청년 얼. 한결같이 묵주를 손에 든 얼이 어머니의 헌신적 돌봄에서 주님을 봉헌하신 성모님의 마음을 깊이 만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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