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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산타 사비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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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14 ㅣ No.769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4) 산타 사비나 대성당 (Basilica Santa Sabina)


예수님 새긴 최초의 나무문과 12세기 말씀 정원 보존된 성전

 

 

산타 사비나 대성당 내부.

 

 

사비나 성녀를 기념하여 5세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바실리카 성당

 

지금의 성당은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 한 곳인 아벤티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사비나라고 하는 로마 귀족 여성의 집이 있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혹자는 그녀가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69~79) 시대에, 또 다른 이는 하드리아누스(117~138) 시대에 순교했다고 한다.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422~432) 재위 기간에 일리리아(Illyria)의 베드로가 그녀의 집터 위에 성당을 세웠다(432-435). 그 후, 성 식스토 3세 교황(432~440)에 의해 대규모로 확장되었고, 에우제니오 2세 교황(824~827) 때 성당 건축은 절정에 달했다. 또한, 1222년 호노리우스 3세 교황에 의해 도미니코 수도회에 양도되었고, 1584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와 1643년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에 의해 내부의 장식들이 추가되었다. 1830년에 대대적인 복원이 진행되었고, 1900년대에 이르러 창문 29개가 추가되면서 그 모습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천상과 지상을 드러내는 성당구조

 

성당의 형태는 바실리카 구조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 형태는 고대 그리스도교 성당들의 공통된 구조다. 로마에서 고대 그리스도교, 5세기의 건축물로 그 형태가 보전된 몇 안 되는 성당 중 대표적인 성당이라 할 수 있겠다. 성당의 외부는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성당 내부는 모자이크와 기둥들로 넘치지 않는 화려함과 군더더기 없는 정갈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 24개의 코린트식 기둥들은 로마 시대 귀족들의 저택에서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사비나 성녀의 저택 일부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둥들로 인해 성당 내부의 공간들은 통일감을 이루며 모두 중앙 앱스를 향하고 있다. 또한, 성당 상부의 29개의 창문도 기둥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이 모든 요소는 앱스에서 만나게 된다. 이 앱스 바로 아래에 이 성당의 제대가 놓여 있다. 이로써 주 제대는 이 성당 모든 공간의 중심점을 이루게 된다. 또한, 이 기둥들은 성당의 상부와 하부의 경계선을 이루며, 24개 육중한 기둥들의 열주 때문에 성당 하부의 공간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이는 세속적인 세상을 나타내게 되며 이런 어두운 하부와 대조적으로 성당의 상부는 양쪽 창문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덕분에 더욱 빛난다. 이 모든 빛은 앱스에서 모이고, 그러므로 앱스 바로 아래에 있는 제대만은 하부에 있으면서도 어두운 하부의 공간들에서 유일하게 반짝인다. 천상의 공간인 제대가 상부로 유입되는 것이다.

 

산타 사비나 대성당 외관.

 

 

“너 사비나 성당에 왜 가는데?” “어~ 난 성당 문짝 보러 가”

 

이 대화는 로마 국립미술원에 다닐 때 조각과에 다니는 친구와 나눈 대화다. 우린 수업을 마치고 사비나 성당을 찾았고, 아무도 없고 어두운 성당에서 정말 빛의 속도로 ‘문짝’만 보고 나왔다. 하지만 그때는 그 가치를 몰랐었지만, 그 후 이 ‘문짝’만을 보기 위해 이 성당을 여러 번 찾아야만 했었다.

 

이렇게 나를 여러 번 찾게 한 그 유명한 ‘문짝’은 432년경 제작된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문으로 이 성당 중앙회랑 입구에 있다. 이 문은 아프리카산 삼나무로 제작되었다.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 이 문은 원래 28개 패널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18개 패널만 존재한다. 패널들의 장면들은 구약과 신약의 장면들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 현존하는 18개의 패널 중 가장 오래된 패널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담고 있는 패널이다. 패널을 살펴보면 죽음을 넘은 승리의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십자가의 형태는 거의 없으며, 거의 벌거벗은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외 신약의 장면들은 눈먼이의 치유, 빵과 물고기의 기적, 카나의 혼인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는 동물들과 포도 넝쿨로 패널 하나하나의 테두리를 정밀하고 세밀하게 조각했다. 로마 시대 예술의 특징인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또한, 각각의 패널 안 인물들의 묘사뿐만 아니라 공간감과 깊이감을 충분히 표현해낸 배경처리는 언뜻 보면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라 생각할 정도다. 보존 상태는 그리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생명력이 길지 않은 나무 조각이 1500년 넘는 시간 동안 버텨 준 것만으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패널들은 19세기에 와서 대대적인 복원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 긴 세월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 산타 사비나 대성당의 나무문.

 

 

교황이 재의 수요일 순회 미사를 거행하는 산타 사비나 성당

 

산타 사비나 대성당은 교황이 재의 수요일 순회 미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회 미사(Missa stationis)’는 중요한 축일들에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자기 성직자들, 교우들과 함께 로마 내의 정해진 성당들로 행렬한 후 미사를 거행하는 전례를 말한다. 5세기 중반에 성 힐라리우스 교황(461~468)에서 ‘순회 미사’는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성 그레고리우스 1세 대교황(590~604) 때 체계가 완성되었다. 700년 동안 잊혔던 재의 수요일 순회 미사를 다시 시작한 것은 1962년 성 요한 23세 교황 때부터이다. 지금도 매년 교황은 베네딕도 수도회 총원이 있는 성 안셀모 성당에서부터 행렬하여 산타 사비나 대성당에 들어와 재의 수요일 미사를 드린다.

 

 

독서대와 복음대가 있는 말씀의 정원

 

12세기에서 13세기에 설치된 제대 앞 중앙 공간에 독서대와 복음대를 따로 둔 ‘성가대석(Schola cantorum)’을 산타 사비나 대성당에서 볼 수 있다. 독서대는 동쪽에 있는 제대를 향해 있고, 복음대는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에서 이루신 구원 업적을 낭독하며 기억하는 것이고, 세상의 어둠을 이기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복음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빛의 세계로 표상되는 남쪽에서 어둠을 상징하는 북쪽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한 것이다. 복음대 옆에는 자캐오의 돌무화과나무를 연상시키는 부활 촛대가 서 있고, 복음대 아래에는 빈 무덤을 의미하는 회색 대리석이 장식돼있다. 곧 이곳은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었던 에덴동산을 상징하며 전례에서는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말씀의 정원인 것이다.

 

로마의 아벤티노 언덕 위에서 우리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최초로 새긴 나무문과 12세기의 말씀 정원이 있는 산타 사비나 성당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옆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총원도 볼 수 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산타 사비나 대성당 문짝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13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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