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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49: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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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7 ㅣ No.629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9)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돌기둥, 마리아의 신비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성모의 원주를 찾아 성모님께 꽃다발을 봉헌한다.

 

 

로마의 관광명소 스페인 광장에 가면 바로 옆에 ‘성모의 원주(圓柱)’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돌기둥 꼭대기의 성모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광장의 백성들을 굽어보고 계십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성모의 원주 주변에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주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이 있습니다. 중세시대 스페인 왕이 교황을 알현하러 로마에 왔을 때 잠시 머물렀던 임시 왕궁이 지금은 대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원죄 없음

 

업무상 스페인 광장에 갈 때마다 성모의 원주를 찾습니다. 11.8m의 긴 돌기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는 나무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그냥 불이 아니라 성령의 불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원죄!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인간의 몸속에 잉태되신 태중의 예수님이 어떻게 ‘원죄 없음’을 유지하며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요. 엄마와 태아는 피와 살이 섞여 있는 ‘한 몸’인데 말입니다. 만약 성모님에게 티끌만 한 흠이라도 있었다면 예수님의 원죄 없음은 불가능했을 것 아닙니까. 성모님은 당연히 원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요? 아무리 믿을 교리라지만, 그래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톨릭교리신학원 다닐 때 배웠던 마리아론이 생각났습니다. 서한석 신부님(요한 사도)이 소개해 준 참고서적에서 장작불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성모의 원주를 볼 때마다 장작불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나무 장작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때 나무 장작과 불이 분리될 수 있나요? 개념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성모님과 태중의 아들 예수님도 이와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저는 무릎을 치고 탄복했습니다. 스페인 광장에서 ‘장작불 이론’을 생각할 때마다 성령의 불이 타고 있는 성모의 원주가 그곳을 밝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음에 대한 묵상은 성모님의 조상으로 옮겨갑니다. 성모님이 원죄가 없는 몸이라면 성모님은 언제부터 원죄가 없었을까요? 성모님이 엄마(성녀 안나) 몸에서 태어난 후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 어느 순간 원죄가 정화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성모님의 원죄를 없애 주었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모님이 엄마 몸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원천적으로 원죄가 없었을까요? 그렇다면 성모님의 엄마도 원죄가 없어야 하고(장작불 이론에 의하면), 또 성모님의 외할머니도 원죄가 없어야 하고, 한도 끝도 없는데….

 

물음표에 물음표! 생각이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갑론을박, 이 주제를 놓고 신학적 토론이 오랫동안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신학의 대가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지요. 논쟁을 매듭짓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분은 영국 출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라고 합니다. 그는 명징한 논리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선행 구원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와 함께 스콜라 신학의 대가로 평가되는 스코투스는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이 단지 원죄의 정화만이 아니라 마리아를 원죄에서 보호하는 데에도 효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소위 ‘선행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선행적으로 성모님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분부로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주러 갔을 때 “은총이 가득하신 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코투스는 바로 여기에서 선행 구원을 찾아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12월 8일입니다.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통해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진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마다 12월 8일 성모의 원주를 찾아 성모님께 꽃다발을 바치고 묵주기도를 올립니다. 한국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독자 여러분, 혹시 로마에 성지순례를 가시게 되면 꼭 성모의 원주를 찾아 묵주기도를 바치고 마리아의 신비를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돌기둥에서 성령의 불이 거룩하게 타오르는 모습도 보시고!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6일,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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