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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증오심에 가까운 질투(카인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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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5 ㅣ No.794

[레지오와 마음읽기] 증오심에 가까운 질투(카인 콤플렉스)

 

 

아담은 아내가 아들 쌍둥이를 낳고 가출하자 이웃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형은 아버지를 닮아 밝은 성격에 착한 모범생으로 컸지만, 동생은 우울하고 삐딱한 성격으로 아버지 눈 밖에 났다.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린 동생은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오히려 야단만 맞을 뿐이었다.

 

그러자 동생은 끝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분노와 자괴감에 싸여, 홧김에 술집을 운영하는 생모의 존재를 형에게 알리고, 순진한 형은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험한 전장에 자진 입대하여 전사하고 만다. 결국 큰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쓰러지고, 동생은 형의 죽음이 자기 탓임을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작은 아들을 용서하며 숨을 거둔다.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인 존 스타인백의 작품 ‘에덴의 동쪽’이다. ‘에덴의 동쪽’은 창세기에 나오는 장소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후 추방된 땅을 일컫는다. 카인은 하느님이 아벨을 자기보다 더 편애한다고 생각하여 질투와 시기심으로 동생을 살해하여, 인류의 최초 살인 대상이 형제가 되는 비극을 낳았으며, 두 번째로 인류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은 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카인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 이는 종교적 경험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진 헝가리 정신과 의사인 레오폴드 손디가 1969년에 ‘카인, 악의 형태’를 출간하며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개념으로, ‘자신과 가장 비슷하고 가까운 혈육을 미워하는 심리’이다. 즉 아버지의 인정을 갈망한 나머지,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 하는듯한 형제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콤플렉스이다.

 

조선시대 이방원의 ‘왕자의 난’이나 현대 재벌들의 권력과 재산을 둘러싼 싸움 등은 대표적인 카인 콤플렉스 사건들이다. 이런 형제간의 경쟁은 동물들에게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며, 동생이 생긴 아이의 다양한 변화–대소변을 가리던 아이가 가리지 못하거나, 반항적으로 되거나, 동생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 등-처럼 일상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는 형제들은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비슷해 불가피하게 경쟁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장 비슷하고 가까운 혈육을 미워하는 심리, ‘카인 콤플렉스’

 

원래 인간은 위협이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깜짝 놀랄 뿐만 아니라 불안이나 공포, 증오 등을 강하게 느낀다. 이는 생명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선천적이며 반사적인 방어기제-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 책략-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경쟁자이긴 하나 자신과 가까운 형제에게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만큼 질투나 시기심은 원초적이고 제어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지만, 이 감정이 원시적으로 표출되면 각종 범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사회 질서 유지에 큰 위협이 된다. 이에 인류는 오래도록 제도와 도덕, 윤리 심지어 종교 등을 이용하여 이 감정을 다스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자매는 오랜 냉담을 풀고 입단하여 봉사를 시작하였다. 원래 손끝이 야문 그녀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제대회 일을 하면서 전례를 중요시 하는 신부님의 인정을 받아 봉사가 아주 즐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지 모를 이유로 인해 봉사도 시들해지고, 기도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마음이 불안해지고 단원 생활도 힘들어졌다. 그러다 피정 중 면담 고백성사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봉사에 힘을 잃었던 것은 쁘레시디움 단장에 대한 지나친 부러움이 질투와 미움으로 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단장에 대한 불만을 다른 자매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면서 단장을 헐뜯고 다녔더라고요. 그 이유를 찾아보니 저희 본당에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께서 성경 중심의 사목 활동을 하시면서, 성경봉사자였던 단장이 인정과 관심을 독차지 하고, 저는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봉사를 한 것이었고, 신부님의 인정이 없어지자 믿음마저 흔들렸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주님 사랑에 머물면서 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이 유독 몇 명의 형제만을 아낀다고 생각되어 불만스러운가? 어떤 형제가 일을 잘하여 인정받는 것을 보면 얄미워지는가? 뿐만 아니라 그 형제보다 내가 못하는 게 뭔지 궁금하여 마음이 조급해지는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카인처럼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분노로 질투와 시기심에 휘둘리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단원들의 화합을 깨는 질투와 시기는 늘 조심해야

 

‘질투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산(酸)과도 같아서 모든 인간관계에 끼어들어 독을 퍼뜨린다.’(교본 295쪽)고 하니 독이 퍼지기 전에 멈추어야 한다. 다행히 카인 콤플렉스를 말한 손디는 ‘이 욕구는 비록 유전이 되긴 하나 문화적 학습으로 조절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레지오 단원은 동료 단원들이나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뵙고 섬기듯이 하라고 배워왔기 때문’(교본 296쪽)에 상대를 주님으로 보며 오히려 기쁘게 함께 나아갈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1코린7,7)라며 우리 모두는 그 역할만 다를 뿐 교회의 몸에 딸린 지체로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에페소서 4,16 참고). 그러니 우리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선(善)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고 우리 모두는 그 도구에 불과하니, 다른 형제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것은 마치 그 능력을 주신 하느님께 나는 왜 안주냐고 따지는 꼴이 된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화합을 깨뜨리면서 얻어낸 것이라면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다.’(교본 189쪽)고 하였으니 단원들의 화합을 깨는 질투와 시기는 늘 조심하여야 한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믿는가? 나와 내 형제를 능력이 아닌 존재 자체로 똑같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말이다. 만약 그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젖는 시간’이다.

 

‘승리란, 전쟁이라도 터뜨릴 것같이 굳어진 마음을 과감히 깨뜨리고 증오심에 가까운 질투를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교본 295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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