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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왜관 수도원의 청소년 전인교육체, 성 마오로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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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02 ㅣ No.1343

[이 땅에 빛을] 왜관 수도원의 청소년 전인교육체, 성 마오로 기숙사

 

 

마오로 기숙사는 왜관 수도원이 1957년 3월 12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운영한 순심학교 남학생기숙사다. 성 마오로(512-584)는 베네딕도 성인의 첫 제자이며 당시 왜관 수도원 수호성인이었다. 수도원에서는 이 이름하에 베네딕도 정신으로 무장한 교회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를 육성하려고 했다. 이는 왜관 수도원과 순심학교 교사들의 협업으로 생활교육까지 이루어낸 전인교육 시스템이었다. 청소년기에 가톨릭 정신으로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들이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일군 삶은 종교교육의 귀중한 사례이다. 한국교육의 위기라고 하는 이때 이 제도를 돌아볼 이유가 있다.

 

 

규율과 절제로 다듬어지는 인재들

 

왜관 수도원 내 구성당 뒤에 있는 마오로관은 지척 거리에 있는 왜관역에서 기적 소리가 날 때마다 학생들이 집을 그리워하던 기숙사였다. 수도원은 1955년에 순심고등학교를 인수하고(중학교는 1961년 인수), 2년 후에 중·고 전학년에 걸쳐 총 32명을 선발하여 기숙사를 열었다. 이곳에 입사하려면 본당신부의 추천, 순심학교 입시 통과, 기숙사 입사 면접을 거쳤고, 성직 수도지원자를 우선했다. 학생 가운데에는 순교자의 후손이나 신부 · 수도자의 친인척, 공소회장의 자녀들이 적지 않았다.

 

기숙사 시설은 훌륭했다. 초가만이 즐비하던 시절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우뚝 솟은 건물에는 세면실과 목욕탕, 탁구장 등의 체육시설, 음악실, TV 오락실이 있었고, 수도시설과 수세식 화장실이 신입생들을 놀라게 했다.

 

학생들은 거의 수도원 일과와 같은 생활을 했다. 새벽 5시 30분(겨울엔 6시) 기상벨이 울리면 침대에서 일어나 선임자의 ‘Benedicamus Domino(주님을 찬미합시다)’에 ‘Deo Gratias(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세면, 미사와 묵상, 청소 후 7시에 아침식사를 하는데 이때 침묵이 해제되었다. 낮동안은 학교생활을 하고, 귀가 후에는 2시간 자습, 6시 저녁식사, 묵주기도와 저녁기도, 다시 1시간의 자습이 이어졌다. 9시 자습 종료와 동시에 취침기도를 하고, 이때부터 침묵에 들어갔다. 추가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10시 30분까지였다. 식사는 넉넉했고, 주일에는 토스트와 우유 등의 간식도 있었다. 사순절 동안은 금요일마다 금식을 지켰다.

 

주말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단체로 시내 외출이 허용되고 산책이나 운동을 했다. 기숙사에서는 음악, 문예활동과 영화감상 등 다양한 취미와 재능을 연마케 했다. 그들은 운동시합에서도 우승을 석권했고, 특히 남성 4부 성가는 빼어났다. 장차 신학교에 진학할 학생은 따로 라틴어를 배웠다.

 

이러한 기숙사 생활은 총급장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산책 코스부터 연례행사 준비까지 모두 학생들이 계획하고 실행했다. 또 학생들은 타종반 등 각 부서에 소속되어 일했고, 정원 관리 등의 작업도 했다. 총급장의 한마디는 교장 선생님 지시만큼이나 무게가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가톨릭문화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국제화에 대비했다. 고등학생들은 한동안 기숙사 내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했는데, 한국말을 하다 들키면 ‘Speak in English’가 새겨진 나무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사감은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부모를 대신해서 모든 일상생활을 챙겼다. 초대 사감 황춘홍 신부 등 27년 동안 9명의 사감이 있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했고 또 특수한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성적도 우수했고, 품행도 단정했다. 순심학교 1등부터 10등까지를 기숙사생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믿고 자녀를 맡긴 부모들, 12대 1까지 올랐던 치열한 입사 경쟁률, 더욱이 형제들이나 친인척들이 계속 입사했던 사실은 기숙사 교육이 성공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세상으로 나간 500여 마오로

 

마오로 기숙사는 설립 이듬해 고3 과정을 마친 3명을 사회에 배출했다. 총 졸업생은 260명으로 한해 평균 10명 미만이 졸업했다. 기숙사는 매해 15명 전후로 학생을 선발했고, 20명 이상이 입사하기도 했다. 물론 중간에 퇴사한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동문 숫자는 늘 유동적이다. 2014년 현재 동문회에서는 약 450여명의 이름을 파악했고, 이중에서 230여명의 주소를 확인했다. 기숙사를 거쳐 간 학생들 모두 계산한다면 500명도 넘을 것이다.

 

‘어린 마오로’들은 각자의 기숙사 생활을 지니고 세상에 나갔다. 특히 비가톨릭 신자들까지 받아들인 1973년 이후의 생도들 삶은 더욱 다양하다. 마오로 출신 목사도 있다. 그래도 마오로생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꼽는 것은 성직자의 삶이다. 배출된 사제는 43명(2014년 현재)으로 기숙사생의 약 8%, 졸업생의 16%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베네딕도 정신으로 사는 길을 보였다. 하인호는 평신도 선교사로서 신자 재교육에 앞장섰고, 그 공로로 교황 베네딕도 16세로부터 ‘성십자가 훈장’을 받았다. 정현재는 오랫동안 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 일했다. 또 연간 400벌의 옷을 소록도로 보내는 박봉환, 미생물 농법을 개척한 장영규와 이에 합류한 이종만 등등 곳곳에서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자제들에도 이어져, 윤충신의 아들 앤드류 윤은 아프리카에서 ‘One Acre Fund’를 설립하여 빈곤퇴치에 몰두하고 있다. 이외 다수가 교수나 학장, 교장, 고위 공무원 등으로 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어린 마오로들은 순심학교의 명예를 떨쳤고, 또 수도원의 자원이 되었다. 왜관 수도원의 이동호 아빠스, 이덕근 아빠스, 이형우 아빠스와 관리원장이었던 김구인 신부, 순심학교 교장이 된 고건상 신부와 함정호, 또한 사감이 된 정현재 수사와 함정태 신부나 석호익 재경 순심동창회장 등의 졸업생은 기숙사와 수도원, 순심학교를 든든히 이었다. 또 기숙사생일 때 이미 수도원 사업에 활력을 주기도 했다. 일례로 임인덕 신부는 사감 시절에 교리를 가르치면서 ‘융판그림’ 교재를 사용했는데, 이때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시청각 교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글로 부화(孵化)하는 마오로와 기숙사 재건운동

 

마오로 졸업생들은 1961년 동문회를 결성했다. 아직은 학생들이라 2~3년에 한 번씩 모였다. 1984년 입시제도의 변경 등으로 수도원에서 기숙사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1992년 다시 총회가 열려 2014년까지 이어졌다. 1993년 서울에서는 지회가 발족되어 동문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곧 이어 각 지역 지회들이 차례로 조직되었다.

 

동문회의 목적은 마오로 기숙사 설립의 이념을 살리는 사업을 해서 마오로의 이름을 이어가는 것이며 기숙사에서 1년 이상 생활한 사람을 정회원, 그 배우자를 가족회원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발전기금으로 3천만원을 모았고, 매년 주소록을 재정비하며 ‘동문회원카드’도 작성한다.

 

「마오로 소식」이란 회보도 발간되었다. 1993년부터 서울지회에서 발간하던 소식지가 전체 동문회 소식지로 발전한 것인데 62호까지 나오고 10여년 정지되었다가 2009년에 속간되었다. 약 200여 부가 국내외로 배달되었으나, 2014년 111호를 끝으로 멈추었다. 동문들의 회지 『등불』도 있다. 이 책은 1993년 창간호가 나온 뒤, 연간으로 5호까지 출간되었다. 현재는 2000년 개설된 <마오로카페>(http://cafedaum.net/maoro)가 대화 창구역을 하고 있다. 그 외 동문들의 에세이집 『수도원 뜨락에서 자란 성 마오로의 꿈과 소망』이 출간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다.

 

1990년대 동문회에서는 현 사회에서 마오로 기숙사와 같은 생활을 통한 교육기관이 절실하다고 판단하여 기숙사 재건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수도원 내에 있는 기숙사 건물을 제공받는다면 동문들끼리 자립운영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그들은 동문들의 길흉사를 비롯하여 왜관 수도원 사업, 동문 자녀 학자금 돕기 등을 해왔다. 2013년에는 마침내 그들의 숙원사업이던 해외원조를 시작했다. ‘한국 마오로 동문회’라는 이름으로 살레시오수녀회를 통하여 몽고 장학사업 지원에 착수했다. 졸업생들은 2014년 5월 5일과 6일 양일간 왜관 수도원에서 동문회 창립 50주년 기념 ‘Home Coming Day’를 열었다. 이후 총동문회의 활동은 모두 중지하고, 기별모임이나 지회모임에 기대하기로 했다.

 

어린 마오로들은 왜관 수도원이 사회에 켜놓은 등불이다. 신자 가정임에도 매일 기도와 묵상으로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마오로 졸업생들은 평신도가 가톨릭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길을 공유하면서 일반인들이 마오로 공동체에 합류하고, 또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20년 겨울(Vol. 52), 김정숙 소화 데레사(영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자료 제공 정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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