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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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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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1235

[영화 칼럼] 원더풀 라이프(1998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과잉의 시대와 팬데믹의 충돌, 그리고 <원더풀 라이프>의 화두

 

 

“당신의 인생에서 단 하나만의 소중한 기억을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던지는 이 화두는 숨 가쁘게 질주하는 문명의 물결에 정신없이 떠밀려온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추어 서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이 화두는 또한, 팬데믹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우리의 삶과 사회와 문명을 새로운 시선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우리 시대가 처한 근원적인 문제들에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거나 확정적인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여울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듯 삶의 근본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천국으로 가기 전, 죽은 사람들이 일주일간 머무는 가상의 중간역 ‘림보’. 죽어서 거기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단 하나만의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을, 어떤 인물은 곧바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은 쉽게 결정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합니다. 어떤 인물은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 하고 어떤 인물은 선택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회한과 부끄러움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시간의 속살 깊숙이 숨어있던 상처들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응시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 속에서 성찰과 선택의 과정을 거친 후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과 화해합니다. 지상과 천국의 중간역인 ‘림보’를 떠나 천국이라는 영원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러한 깨달음과 화해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삶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완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선택한 기억들은 권력과 돈과 명예를 향한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거창한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거나 요란한 구호를 외치는 순간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자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 일상의 아주 소소한 순간들을 선택합니다. 이들의 성찰과 선택, 깨달음과 화해의 과정을 보며 과잉의 시대 한복판에서 팬데믹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은 묻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려 하고 이루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에 없는 너무 많은 제스처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삶과 행복의 본질을 망각한 채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모든 이들이 팬데믹과 함께 과잉의 시대도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2020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서울주보 4면, 이광모 프란치스코(영화사 백두대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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