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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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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31 ㅣ No.689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상)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는 이들이 모여

 

 

- 1950년대 초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창립자들과 초기 수녀들.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제공.

 

 

‘나 주님께 의탁하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1928년 벨기에에서 창립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를 모토로 살아가는 국제 수도회다. 일생을 주님께 의탁하는 수녀회의 모토는 창립자들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녀회는 폐결핵, 골수 결핵을 앓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픈 어린 소녀였던 성삼의 마리 마들렌 수녀, 선교 사제인 페르디낭 마르카스 신부가 설립했다.

 

마들렌 수녀는 생후 11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했다. 그녀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 다시 걷게 될 것”이라며 주님께 의탁했고, 그녀는 9살 때 제라 성인에게 9일 기도를 바친 후 기적적으로 다시 걷게 됐다. 일생을 거의 침대에서 생활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녀의 의탁 정신은 강했다. 만 10세 무렵인 1910년 처음으로 영성체하며 매일 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약속했고, 1917년 2월 1일 기도 중 ‘너를 희생 제물로 봉헌하여라’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예”하고 답했다.

1923년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그녀 주위로 함께 기도하려는 자매들이 모여들었다. 1925년부터 그녀 집으로 하나둘 와서 기도하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1928년 6월 15일 공동체가 리에즈로 자리를 옮기며 수녀회가 뿌리내렸다.

 

마르카스 신부 역시 주님께 의탁했다. 첫영성체 날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밝힌 그는 평생 목자로 살았다. 벨기에 말린-브뤼셀대교구장 메르시에 추기경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수도회 창립을 제안할 때도 그는 여자 수도회를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적군을 보호, 숨겨줬다는 이유로 독일군에 체포돼 고통받았을 때도 그는 어떤 혹독함을 겪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3년간 체중이 40㎏ 이상 빠진 고통에도 그는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려면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다 1953년 눈을 감았다.

 

마르카스 신부는 건강 때문에 환자 방문이 어려운 마들렌 수녀의 본당 신부 대신 병자영성체를 해주기 위해 1923년 그녀를 만났다. 메르시에 추기경이 “도와줄 영혼이 있을 것”이라며 수녀회 창립을 제안한 말씀을 그녀를 보자마자 떠올렸다. 둘은 병자영성체를 위해 매일 만나며 영적으로 대화했다.

 

수녀회 창립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을 뿐 아니라, 전염병과 가난·실직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고, 이를 잊기 위해 알코올·약물 등에 의존했다. 때문에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고통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인 중독자와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빠져있던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수녀회는 주님께 의탁하며 탄생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29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중)


이웃에 자신 내어 주는 ‘성체’가 되어

 

 

-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들이 벨기에 본원에서 열린 회의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제공.

 

 

어린아이와 같은 의탁 정신으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두려움 없이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간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채 그분 뜻을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녀회의 정신은 수도복에서도 잘 드러난다. 흰색이나 상아색인 수도복은 제병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믿고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수녀들은 자신들이 성체가 되어 서로에게, 이웃에게, 온 인류에 자신을 내어 준다.

 

모든 것을 의탁하고 성체가 돼 살아가는 수녀회는 미사와 성체 조배를 중심으로 산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고, 삼위일체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성찬의 전례 안에서 체험한 은총을 매일 살아가려 노력하는 수녀회는 성체 현시도 계속한다. 벨기에 본원에서는 수녀들이 돌아가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 분원에서는 사도직 상황을 고려해 저녁 동안 성체 조배를 한다.

 

이러한 수녀회의 일치, 의탁, 봉헌하는 카리스마는 ‘성체 뽑기’에서도 나타난다. 수녀회는 성탄이 되면 성체 뽑기를 하는데, 각 뽑기에는 ‘침묵의 제병’,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제병’ 등이 적혀 있다. 뽑기에 따라 수녀들은 다음 성탄까지 그 내용대로 삶을 구체화해 봉헌한다.

 

현재는 다양화 등의 이유로 지속하고 있지 않지만, 초기 수녀들은 한자리에 모여 소임지 열쇠를 모두 모아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집어 사도직을 정했다. 이 역시 아이 같은 단순함을 보여 주는데, 각자 바람과 욕구도 있지만, 하느님 뜻이 더 크고 기쁠 것임을, 어떤 몫이든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기에 감사할 것임을 믿고 의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녀회는 명칭대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는다. 성인은 ‘작은 몫’이라는 뜻의 ‘포르치운쿨라’에서 공동체를 시작했고,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이 작고 허름한 성당을 품고 세워졌는데, 수녀회는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수녀회는 형제적 사랑과 단순함으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공동체 삶을 살아간다.

 

특히 수녀회는 사제들과 복음화 사명을 위해 산다. 이는 비오 11세 교황이 성삼의 마리 마들렌 창립 수녀에게 보낸 강복장에서 비롯됐다. 1927년 마들렌 수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녀회 미래를 교회에 의탁하기 위해 교황에게 편지를 썼고, 같은 해 10월 17일 교황은 이렇게 답신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희생과 기도와 사도직을 통해 성직자들의 성화와 선교 사업의 성공이라는 숭고한 목적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딸 제르멘 고도(마들렌 수녀 본명)와 그녀와 함께하는 관대한 모든 영혼들에게 특별한 강복을 보냅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6월 5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하)


시대적 요청 따라 사도직 활동 펼쳐

 

 

- 수녀회가 돌보는 어르신들 모습.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제공.

 

 

‘작고 가난하지만 단순한 천상의 기쁨을 증거한다.’

 

세상 속 성체로 살아가는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 같은 정신으로 하느님께 의탁한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수녀회의 단순하고 기쁜 삶은 사도직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수녀회는 가장 절실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수녀회는 그 창립부터가 시대적 요청을 향한 응답이었다. 벨기에 말린-브뤼셀대교구장 메르시에 추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 수도회 창설을 제안했고, 이는 1928년 수녀회 설립과 ‘천사의 모후 정신 병원’ 개원·운영으로 이어졌다. 가장 고통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은 당시 전쟁으로 힘든 온갖 중독자와 우울증·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들이었고, 수녀회는 이들을 전인적으로 돌보고자 했다.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수녀회는 지금도 이 병원에서 사랑을 펼치고 있다. 200개 이상 병상을 보유한 병원에는 벨기에 전역 환자 500명 이상이 매일 오가거나 함께하고 있고, 2028년이면 100년 역사를 맞는다. 본원에는 20여 명 수녀들이 공동체를 꾸리고 있고, 이들은 장애인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머물 장소를 제공하고 정서적 상담 등도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녀들은 언제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단순하고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말없이 가서 동반한다.

 

수녀회의 한국 진출도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결과였다. 벨기에로 유학을 떠난 한국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할 제구조차 없다며 도움을 청하자, 수녀회는 이를 신문에서 보고 돕기 위해 페르디낭 마르카스 창립 신부의 제구 일체를 그들에게 줬다. 이 도움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노기남(바오로) 대주교가 성삼의 마리 마들렌 창립 수녀를 방문하면서 한국과의 연이 본격 시작됐다. 1950년대 초 당시 서울대목구장 노 대주교는 마들렌 수녀에게 “한국에 젊은 자매(여성 성소자)들이 많이 있는데 받겠느냐”고 물었다. 이를 수락하며 1957년 한국 자매들이 입회했다.

 

본원에서는 자연스레 한국 진출 계획을 세웠다. 수원교구에 보낸 서신에 1988년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와서 보십시오!” 초대하며 수녀회가 1989년 한국에 자리했다. 한국 활동에서도 수녀회는 시대적 요청에 따랐다. 정신 질환보다 노인 복지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고려해 어르신 주거 복지 시설 ‘아녜스의 집’ 문을 열었고, 현재 분원에는 한국인 6명, 벨기에인 1명 등 총 7명 수녀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어르신 39명이 걱정 없이 살다가 하느님께 안길 수 있도록 그 여정의 동반자로 살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6월 12일,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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