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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

꾸르실료 한국 도입 50주년 특집 (하) 도입 50주년 한국 꾸르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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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04 ㅣ No.18

[꾸르실료 한국 도입 50주년 특집] (하) 도입 50주년 한국 꾸르실료


기도 · 친교 · 나눔으로 주님 향기 전하며 꾸르실료 영성 일깨우다

 

 

- 올해 도입 50주년을 맞은 한국 꾸르실료의 서울 꾸르실리스따들이 첫 공식 차수 매김이 시작된 스페인 오노라토 수도원 내 성당에서 미사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스페인어 꾸르실료(Cursillo)는 영어 Course(과정)와 같은 의미로, 접미사 ‘~illo’가 붙어 ‘단기 연수’란 뜻이 된다. 이 단기 연수는 1940년대 스페인 현지 젊은 청년들이 불러일으킨 ‘거룩한 열정’의 힘으로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30여 년 뒤인 1967년 한국 교회에 당도하게 된다.

 

 

꾸르실료의 영성

 

꾸르실료의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꾸르실료 운동’이다. 이상ㆍ순종ㆍ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향한 회심과 정화, 믿음으로 발돋움하는 3박 4일의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꾸르실리스따가 되는 기본 여정이다.

 

1930~1940년대 스페인은 내전과 함께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전쟁의 상흔 속에 스페인 사회는 온갖 혼란과 부정부패, 개인주의로 물들었다. 격동기 속 스페인 교회 또한 반성직자주의와 무신론 등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스페인 교회 영성의 밑바탕이 된 예수회 창설자 성 이냐시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힘이 컸다. 꾸르실료 과정이 기본적으로 이냐시오 영신수련 방식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하는 것도 오래된 이들의 영성이 꾸르실료 과정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1967년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열린 한국 첫 꾸르실료의 남성 수료생들. 가톨릭평화신문 DB.

 

 

꾸르실료 창설자들이 주목한 것은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 ‘성직자와 평신도의 일치’다. 이를 위해 꾸르실료 과정은 기도ㆍ친교ㆍ공부ㆍ나눔 등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 리더’로 살아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 꾸르실료가 평신도 운동으로서 확산되고 교회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창설자 에드아르두 보닌과 세바스티안 가야 신부를 비롯한 청년과 사제의 우정 어린 형제적 친교 덕분이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66년 로마에서 열린 제1차 세계 울뜨레야 대회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 교황은 여러분만을 믿습니다”라고 선포한다. 스페인 오노라토수도원에서 세계 첫 차수가 열린 지 18년 만에 교황으로부터 큰 신임을 얻은 것이다. 2014년 교황청은 평신도평의회를 통해 꾸르실료를 공식 인준했다.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태동

 

한국교회에 꾸르실료 운동이 처음 전수된 것은 필리핀 신자들에 의해서다. 에드문도 카이모씨를 비롯한 필리핀 신자 12명이 찾아와 1967년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에드워드 리처드슨(메리놀외방선교회) 신부 지도로 제1차 꾸르실료가 진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성직자 4명을 포함해 21명의 첫 한국 꾸르실리스따가 탄생한 순간이다.

 

1997년 의정부에서 열린 제5차 꾸르실료 세계대회에 김수환 추기경(가운데)을 비롯한 사제와 꾸르실료 대표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차 꾸르실료를 체험한 이들은 필리핀 신자들과 함께 2차 꾸르실료를 진행했고, 3차부터는 한국어로 진행했다. 4년 만에 전국 교구로 퍼져 현재 모든 교구는 꾸르실료 사무국을 두고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성 꾸르실료는 1969년 부산교구에서 처음 열려 꾸르실리스따 44명을 탄생시켰다.(꾸르실료는 남녀 따로 진행된다)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발전

 

한국 꾸르실료는 1994~1998년 세계 꾸르실료를 대표하는 세계협의회(OMCC) 회장국이 된다. 1997년 의정부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한 제5차 꾸르실료 세계대회에는 32개국 대표 160여 명이 참석해 역동적인 한국 꾸르실료를 체험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이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도입 50주년을 맞은 꾸르실료는 지금까지 20만여 명에 이르는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했다. 그 가운데 서울대교구는 3만 9000여 명을 배출했다. 꾸르실리스따는 매년 1000여 명이 탄생하고 있다. 서울은 2000년부터 청년 꾸르실료를 시작, 이를 수료한 꾸르실리스따는 2000명에 이른다.

 

한국 꾸르실료는 때마다 전국 또는 교구 울뜨레야 대회를 개최하며 꾸르실료 영성을 다지고 있다. 3박 4일 과정 외에도 봉사자 교육, 세계협의회와 교류 등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꾸르실료는 2013년부터 해외성소장학회도 운영 중이다.

 

 

"평신도 강의·울뜨레야 새 시대 걸맞게 변화를" - 서울 꾸르실료 대표 서왕석 주간

 

“한국 도입 50주년 기념 스페인 순례는 반세기에 이르는 주님께 ‘감사’와 ‘새로운 다짐’을 봉헌한 시간이었습니다. 꾸르실료가 교회를 위한 더욱 신실한 운동이 되도록 내실을 기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나갈 것입니다.”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회장 겸 서울 꾸르실료 대표인 서왕석(마태오) 주간<사진>은 “70여 년 전 꾸르실료 태동 당시 청년들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고민 끝에 꾸르실료라는 세계적 운동을 창설해냈는지 그 신심과 열정을 느낀 순례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2월 제30대 한국 꾸르실료 회장에 취임한 서 주간은 “그 열정을 새겨 20만 명에 이르는 한국 꾸르실료가 더욱 살아있는 교회 일원이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새 변화는 시작됐다. 서 주간은 “꾸르실료가 기본지침서로 삼고 있는 「꾸르실료 운동의 기본사상」 책을 토대로 진행했던 3박 4일 과정의 롤료(평신도 강의)와 프로그램을 오늘날 상황에 맞게 수정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 주간단과 임원진으로 구성된 ‘롤료수정위원회’를 이미 발족했다. 아울러 3박 4일 이후 모임인 울뜨레야 활성화와 꾸르실리스따 신심 제고를 위해 6ㆍ12월에 일일 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꾸르실리스따를 비롯한 일반 신자들도 자유롭게 강의와 영성 교육을 펼치도록 서울 꾸르실료 교육회관을 더 개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교회 곳곳에서 활동 중인 꾸르실리스따가 교회의 건강한 지체가 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교회 미래인 젊은이들을 위한 노력도 보탤 것입니다. 3박 4일 동안 ‘주님의 은총만을 믿겠다’고 다짐한 우리가 더욱 맞갖은 사명으로 살도록 노력해야죠. 저는 임기 동안 한국 꾸르실료가 더욱 ‘주님의 향기’가 나도록 성모님처럼 어머니 역할을 할 겁니다.”

 

한국 꾸르실료는 10월 도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한국 꾸르실리스따의 새 다짐을 선포하고 영성을 다진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4일,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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