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나는 죽어도 살아도 천주교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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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09 ㅣ No.797

[레지오 영성] “나는 죽어도 살아도 천주교인이요!”

 

 

사생간천주교인(死生間天主敎人)

 

지난해 한국 천주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냈습니다. 희년의 슬로건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는 한 문장은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옥중 취조 때 받으셨던 질문인 동시에, 이 시대가 신앙인을 자처하는 우리 각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생명과 맞바꾼 이 단호한 한마디는 하느님만이 삶의 전부이며 그분과의 온전한 일치 안에서만 가능했던 순교신앙의 증언이었습니다.

 

세상에 즐비한 여러 종교 중에 그나마 무난한 것이라고 선택한 신앙, 이런저런 제약도 별로 없고 고해성사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다 정리되는 편리한 신앙, 주님의 말씀은 몰라도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고 흥청대는 일만 잘해도 독실한 ‘교우’로 인정받는 신앙, 순교자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순교성지를 순례하면서도 순교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신앙에서는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고백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신앙을 담는 그릇입니다. 종교가 참된 신앙을 담지 못하면 거짓 종교이며 쓸모없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참된 신앙을 담아내는 종교만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사생간천주교인(死生間天主敎人)’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라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과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이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이 참된 성화의 열매입니다.

 

 

가짜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신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겉모습만 그럴듯한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고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을 당부하며 하신 말씀입니다.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기도 하고,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면서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가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1. 자기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사람

2.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사람

3.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며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가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제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봅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찾으며 산다고 하면서도 정작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외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을 빙자한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마는 것이겠지요.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도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다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또한 무거운 짐을 꾸려 다른 사람에게 지워주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한다면 말로만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무늬가 아무리 화려해도 이들의 불행은 연륜과 관계없이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신앙인은 자신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하늘나라의 열쇠도 치워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운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잘라 버려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불에 태워버립니다. 쓸데없이 땅만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루카 13,6-8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을 나무에 비유하시고 경각심을 일깨우시는 엄중한 선포입니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제거하고, 거름을 뿌려 일구어야 좋은 땅이 마련됩니다. 신앙의 나무가 잘 자라나는 좋은 땅을 일구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지요. 묵은 땅을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잡초도 제거해야 합니다. 필요한 거름도 주어야 하고 가지치기도 때맞추어 해주어야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 다닌다고 신앙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교우 간의 끈끈한 인간적 의리가 신앙의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은총이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 마음의 땅을 갈아엎어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세속적인 마음과 이기적인 욕망을 거두어 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교자들의 신앙생활을 깊이 들여다보면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한 성화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신앙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기 위한 실천적인 신앙의 노력이 수덕생활입니다. 신앙은 수덕을 통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쓰신 ‘신심생활 입문’은 신앙인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잘 가르쳐주신 신앙생활의 안내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성인은 이 책에서 참된 신심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를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또한 그 교회의 생활한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설명하신다.

 

진정한 신심은 아무것도 손상치 않고 오히려 만사를 완성시킨다. 자기의 정당한 직무를 거스르는 자의 신심은 확실히 그릇된 신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꿀벌은 꿀을 마실 때 조금도 꽃을 상하지 않게 하며 꽃은 이전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참된 신심은 이보다 더 어떠한 직무나 처지도 손상치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를 아름답게 꾸민다. 보석을 꿀에 담그면 그 성질에 따라 광채를 더한다고 한다. 그와 같이 어떤 사람도 그의 경우를 신심과 합치시키면 그의 경우는 일층 더 아름다워진다. 가정의 평화는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며, 임금께 대한 충성은 두터워지고 각자가 맡은 일은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각자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화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 길에서 우리는 어떤 축복을 열매 맺게 될까요? 함께 그 길을 찾아가 봅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3월호, 김영수 헨리코 신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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