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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가구야 공주 이야기 - 천국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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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28 ㅣ No.1274

[영화 칼럼] 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 - 2013년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천국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기억은?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설화(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동양적 선과 채색, 일본풍 수채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 가구야를 달(천국)로 다시 데려가는 천사는 그곳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잊게 해, 슬픈 일도 더러움도 없어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구야 공주는 영원한 삶이 있고, 행복만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천상(달)의 아이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본 그녀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더러움 같은 건 없어. 이 땅에 사는 것은 모두 생기가 넘쳐!”

 

손바닥만 한 크기로 죽순에서 태어나서는 순식간에 ‘대나무 순’처럼 쑥쑥 자라 아리따운 소녀가 된 그녀라고 행복한 나날만 계속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너그러운 사랑, 오누이처럼 지낸 스테마루와 마을 아이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던 즐거움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준 보물로 부자가 된 할아버지가 그녀를 공주처럼 키워 귀공자와 결혼시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도시로 이사하면서 끝납니다.

 

귀공자들은 물론 왕까지 탐내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좌절과 속박,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자연과 고향의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고향 뒷산의 나뭇잎이 새순을 감추고 봄을 기다리며 견디듯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지만,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욕심으로 그녀에게 수치심과 두려움, 죄의식만 심어줍니다. 그녀를 돌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땅에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그 소원을 달(천상)에 비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온 것인지 깨닫습니다. 먼 옛날 이 땅에서 달에 간 사람들이 기억을 모두 잃어버려 기쁨도 슬픔도 없건만 “돌아오라, 돌아오렴, 아득한 시간이여, 돌아와서 마음을 떠올려다오. 새, 벌레, 짐승, 풀, 나무 꽃, 사람의 정을 키우고 키워서 기다린다고 하면 지금 돌아가리라.”라고 노래 부르면서 눈물을 흘린 마음을 알게 됩니다.

 

때론 슬프고 괴롭겠지만 새와 짐승처럼 그녀는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스테마루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먼 옛날 이 땅에서 온 사람들 역시 기억을 잃었지만, 그 시간만은 잊지 못해 언제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가구야는 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미 달(천상)에 온 사람들도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이 땅에서의 삶은 한 번뿐이니까요. 기억을 지우고 달로 돌아가는 먼 하늘에서 가구야가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지구를 보면서 흘리는 한줄기 눈물이 그래서 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설화는 인간의 삶을 투영합니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역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에서 행복을 느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면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천국에서도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요. 그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릅니다.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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