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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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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1 ㅣ No.787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7)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상)


아기 예수에게 모유 수유하는 어머니 마리아가 반겨주는 성당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앞 마리아 광장.

 

 

몇 년 전, 한 배낭 여행자가 내게 물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로마 젊음의 거리’라고 되어 있어서 트라스테베레를 찾았는데 젊음은커녕 한산한 거리에 오래된 성당 하나가 있었다고. 왜 거기가 젊음의 거리냐고 굉장히 실망하는 말투였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평일 낮에 가서 그런 거라고.”

 

이렇게 젊음을 대표하는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지역은 저녁이 되면 우리나라의 홍대 입구나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좁은 골목골목에는 맛집과 선술집이 즐비하고 그곳에는 로마의 젊음이 있다. 그 젊음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듯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로마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는 성당이 바로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성당이 위치한 지명 ‘Trastevere’는 라틴어 ‘Trans Tiberium’ 즉 ‘테베레 강 건너편’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로 초기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했던 공적인 교회 1호로 여겨지고 있다. 성당 내 비문에서도 이 성당의 역사를 알 수 있듯이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최초의 성당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성당 제단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기름의 샘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의 이곳은 원래 퇴역한 군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 그 시설을 타베르나 메리토리아(Taverna Meritoria)라고 불렀으며, 그들이 사용했던 수도를 이용해 만든 로마 최초의 분수였다고 한다. 이 분수 터를 1692년 건축가 카를로 폰타나가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해놓았다. 또한 기원전 38년 온종일 기름이 솟아 테베레 강까지 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기름 부은 자는 곧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님 탄생 이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름이 솟은 자리인 성당 중앙 제대 하단에는 ‘Fons Olei(기름의 샘)’이라고 쓰여 있고 바닥에는 이 사건을 기록한 비문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성 갈리스토 1세 교황(재위 217~222)이 최초의 교회를 세웠고 그 후 340년 성 율리오 1세 교황(재위 337~352)이 재건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오래된 교회의 기초 위에 1140~1143년 인노첸시오 2세 교황(재위 1130~1143)에 의해 대대적인 복원과 재건이 이루어지며 그 모습이 현재 성당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성당 내부의 앱스(apse, 반원형 내부 공간)에서 한번, 그리고 성당 내부에 있는 인노첸시오 2세의 무덤에서 한 번 더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 후 16~17세기에 복원과 재건이 이루어지고 1702년에는 성당 현관이 추가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갖춰졌다. 이 현관 위로는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성 율리오 1세 교황, 성 고르넬리오, 성 칼레포디오 등 4개의 동상이 있다.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정면. 수유하는 마리아와 열 처녀 도상이 새겨져 있다.

 

 

성당 정면의 ‘수유하는 성모 마리아’와 열 처녀 도상

 

성모 마리아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도상들이 있다. 성당 정면의 위쪽 장식은 거의 지워져 식별할 수 없지만, 흐릿하게나마 19세기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네 복음서와 일곱 개의 촛불 사이에 계신 예수님과 천사들의 형태가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바로 식별이 가능한 부분은 페디먼트 맨 위쪽 부분인데 여기에는 하느님의 손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은 그림자가 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남았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로마에서 생명력이 짧은 프레스코화를 외관 장식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이 프레스코화 하단 부분의 모자이크는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내용을 살펴보면 중앙에 계신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께 모유를 수유하고 계시고 양쪽으로 5명씩 총 10명의 처녀가 등불을 가지고 성모님을 향해 가는 모습이다. 이 처녀들은 마태오 복음(25,1-13)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성모님 아래 양쪽으로 두 명의 남자가 무릎을 꿇은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들은 이 성당의 후원자라고 한다. 이 모자이크화에서 주의 깊게 볼 도상은 ‘마리아 락탄스(Maria Lactans)’ 또는 ‘마돈나 락탄스(Madonna Lactans)’라 불리는 아기 예수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성모님 도상이다.

 

 

‘마리아 락탄스’의 유래와 번성 그리고 쇠퇴

 

이 도상의 유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의 대지의 여신 신앙에서 기원한다. 성모님을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최초로 초기 교회 미술에 나타나게 된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양육하는 성스러운 존재임을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확산하는 도상이 바로 이 마리아 락탄스, 곧 수유하는 성모님 도상이다. 아기 예수의 인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흔히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와 연결해서 생각하기 쉽다.

 

한 번은 이 성당을 순례객들과 함께 순례 중에 다른 팀 가이드가 르네상스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아기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도상은 누드의 아기 예수나 중세 때 그려졌던 근엄한 아기 예수가 아닌 말 그대로 아기처럼 그려지는 게 큰 특징이다. 이 마리아 락탄스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는 정작 그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성직자들은 종교적 주제에 대한 과도한 노출을 억제했고 이런 경향이 마리아 락탄스 도상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13~14세기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토스카나 지방에서 마리아 락탄스 도상이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페스트로 인한 기근과 공포심 그리고 넘쳐나던 고아의 양육 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들과 관련이 깊다. 이 수유하는 마리아는 육화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도상의 출발로 어머니로서의 헌신적인 노력의 상징이기도 하며 아기 예수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동시에 구원을 간청하는 상징이 된다. 특히 페스트의 피해가 심했던 토스카나 지방은 페스트가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는 도상이다. 마리아 락탄스 도상만이 유행한 것이 아니라 이 시기의 피렌체에서 건축된 5개의 성당이 모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는데 이는 극심한 공포의 시절에 어머니에게 의탁하는 당시의 신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게 한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성당을 돋보이게 하는 내부 구조와 도상들, 그중에서도 성모대관 도상을 살펴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28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8)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하)


빛나는 왕관 쓰고 예수님과 나란히 왕좌에 앉으신 성모님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부 중앙 앱스 상단에 있는 모자이크화.

 

 

최초의 성모대관 도상

 

로마의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성당 내부의 중앙 앱스(apse, 반원형 내부 공간)인데, 이 앱스 중앙에는 ‘성모대관(聖母戴冠)’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최초의 성모대관이라는 도상의 출발점이 어디냐는 논쟁은 20세기에 와서 본격화된다. 논쟁은 197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 학자들의 충돌로 시작되지만, 여기에 영국 학자들이 개입해 자신들이 처음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성당은 더욱 유명해졌다. 마지막에는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성모대관 도상이 최초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의견이 모아졌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왕관을 씌워 장식하는 관습은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동·서방 교회 모든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은 주님의 영화로우신 어머니를 묘사하기 위하여 여왕의 표지를 두르고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왕좌에 앉은 모습으로 그렸다. 그 성화상들 가운데에는 어머니께 빛나는 왕관을 씌워 드리는 거룩하신 구원자가 그려진 것도 드물지 않다.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화상 대관 예식’으로 성모 마리아를 합당하게 모후로 고백하고, 동정녀는 마땅히 ‘천주 성자의 어머니요 메시아 임금의 어머니’, ‘구세주의 존귀하신 동반자’,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자’, ‘교회 지체들의 으뜸’으로 불린다.

 

 

3랑식 구조의 성당 내부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3랑식 구조로 총 22개의 이오니아식 기둥들로 공간들이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사용된 기둥들은 고대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浴場) 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살피고 고개를 들어 성당의 천장을 보자. 일명 도메니키노(작은 도메니코)라 불리는 도메니코 잠피에리(Domenico Zampieri, 1581~1641)가 1617년에 장식한 격자무늬 천장은 아직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나뭇조각에 금박을 입혀 장식했으며, 그 중앙에 성모 승천을 그렸다. 이 성당의 바닥은 중세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13세기의 코스마테스크(기하학적 장식의 석조 조각) 스타일로 장식된 것이다.

 

성당 내부 전경.

 

 

대성당 중앙 앱스의 작품

 

이 대성당의 중앙 앱스는 총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상단에는 12세기 모자이크, 중간에는 피에트로 카발리니(Pietro Cavallini, 1240~1330)의 13세기 모자이크, 하단에는 아고스티노 참펠리의 16세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모자이크는 단연 12세기의 모자이크다. 이 모자이크는 1140~1143년 인노첸시오 2세 교황(재위 1130~1143)이 주문한 것이다. 먼저 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어깨를 감싸고 있고, 한 손에는 ‘VENI ELECTA MEA ET PONAM IN TE THRONUM MEUM(오라, 내가 택한 자여, 내가 너를 나의 옥좌에 앉게 하리라)’라고 적혀있는 책을 한 권 들고 있다. 나란히 앉은 성모님은 양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LAEVA EIVS SVB CAPITE MEO ET DEXTERA ILLIVS AMPLEXABITVR ME(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 아가 2,6)’라고 쓰여 있다. 이는 12세기부터 아가서의 필사본이 유행했는데 이곳의 앱스도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앱스의 좌측에도 이와 연관된 모자이크화가 있는데 예언자 이사야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ECCE VIRGO CONCIPIET ET PARIET FILIUM(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사 7,14)’이라는 구절이 쓰여 있고, 우측 예언자 예레미아의 두루마리에 ‘CHRISTVS DOMINVS CAPTVS EST IN PECCATIS NOSTRIS(기름 부음 받은 이, 주님은 우리 죄에 붙잡혀 있네)’라는 내용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는 저들의 구덩이에 붙잡혀 있다네(애가 4,20)”라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또 예레미아의 두루마리 윗부분에는 새가 갇혀있는 새장이 보이는데 이것은 ‘붙잡혀 있네’ 구절의 상징이다.

 

예레미아의 두루마리 부분.

 

 

황후의 의상을 입은 성모님

 

이 도상이 특이한 점은 성모님의 의상이 약 100여 년 뒤에 제작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앱스에 나타난 튜닉을 입고 있는 성모님의 의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성모님의 의상은 비잔틴 황후의 모습으로 표현되 어 있다. 이 모든 모자이크화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앱스에서의 성모님 모습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며, 다시 그 아들인 예수의 선택으로 천상 모후의 관을 쓰셨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최초의 성모대관 도상은 성모님의 일생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앙에 성모대관 중심으로 성모님 왼편으로는 인노첸시오 2세 교황, 성 라우렌시오, 성 갈리스토 1세 교황이 자리하고 있고, 예수님 오른편에는 사도 베드로, 성 고르넬리오 교황, 성 율리오 1세 교황과 성 칼레포디오가 보좌하고 있다. 이 앱스 하단 부분에서 또 한 번의 모자이크화의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성모님의 탄생, 주님 탄생 예고, 주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성모 승천 등의 내용으로 피에트로 카발리니가 1290~1291년에 제작한 모자이크화다. 그의 작품은 150여 년 전에 제작된 앞서 언급했던 앱스 부분의 모자이크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앱스부분의 모자이크가 비잔틴의 전통 도상을 따랐다면 카발리니의 작품들은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 즉 르네상스의 태동을 알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느끼게 해준다. 공간감은 살아나고 인물들의 사실적인 묘사와 직선보다는 곡선의 사용 등이 그렇다.

 

 

놓치지 말자 ‘자비의 성모 마리아 소성당’ 이콘화

 

이 성당을 순례할 때 절대 지나치면 안 되는 곳은 ‘자비의 성모 마리아 소성당’이다. 이곳은 ‘알템스 경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소성당 조성을 의뢰한 알템스 독일인 추기경의 이름에서 기인한다. 그는 1580년~1595년까지 이 성당의 추기경이었고, 그의 의뢰로 1587년에 완공된 소성당이다. 이 경당에는 로마에서 유명한 6세기 성모님 이콘화가 있다. 이콘화를 자세히 보면 성모님의 모습은 비잔틴 시대 도상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반면, 성모님 양쪽에 위치한 천사들은 고대 로마의 사실적인 묘사로 고대 로마의 고전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동방의 비잔틴 이콘화의 전통이 로마에 와서 로마의 전통과 결합된 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마에 현존하는 6세기경의 이콘화들은 많지 않다. 쉽게 볼 수 있는 이콘화가 아니니 이 성당을 순례할 때 놓치지 말고 찾아보자.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25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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