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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3: 교회 쇄신의 시작 - 공의회의 교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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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03 ㅣ No.614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3. 교회 쇄신의 시작 : 공의회의 교회 이해 ①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오로지 ‘교회’가 무엇인지만을 들여다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결국 교회를 두고 새로이 내린 정의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그런데 이 말이 그렇게 새로운 것인가? 오히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너무나도 친숙한 말 아니던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예레 30,22; 에제 36,28 참조)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신, 이 ‘내(하느님) 백성’이란 말씀은 거듭 두루 나타난다. 그러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해한 교회 개념, ‘하느님의 백성’은 아무런 성서적·역사적 기원이나 관련 없이 이 공의회에서 돌연 나타난 개념이 아니다. 원천적으로 교회는 (온갖 약점과 결핍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공동체,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해되어 왔다. 곧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럼에도 공의회 교부들이 그 숱한 토론과 고뇌와 성찰을 거쳐 이 옛(?) 개념을 다시 집어든 데에는 그에 합당한 연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우선,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신약의) 교회와의 연속성을 표시한다. 그뿐 아니라 교회가 인류 역사의 변천과 성장 가운데 함께 하는 불완전한 공동체로서, 늘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쇄신되어야 하고, 그분 은총으로 온 인류와 더불어 구원되어야 할 실재임을 보여준다.

 

이제 왜 공의회가 본래의 유산, ‘하느님의 백성’을 새로 택하게 되었는지 서서히 의문점이 풀릴 것 같다. 바로 ‘오랜 유산이자 거룩한 전통’을 오늘의 시대의 징표에 따라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해 낸 것이리라. 그렇다면 필시 이 ‘하느님의 백성’은 세월 따라 시대 따라 인류사와 교회사 안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헤매었던 것이 아닐까? 이에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성서적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필 필요가 있겠다. 이 성서적 의미의 하느님의 백성 개념은 초기 교회,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이해하는 데에 한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세와 반종교개혁의 신학 안에서는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이라는 개념 뒤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교회는 곧 ‘완전한 사회’(societas perfecta)라는 의미와 맞닿았다. 이 제도적 교회의 의미를 담고 있는 ‘완전한 사회’ 개념은 보통 ‘교계제도’로 이해되는, 엄격한 위계질서적 구조를 가진 교회로서 교황, 주교, 사제들이 정상에 있었고, 이들이 모든 구원의 중개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평신도(라오스, λαός)라는 교회 백성 역시 있었으나, 이들은 엄격한 교계제도의 권위에 복종하며, 참여나 공동책임의 고유한 권리가 없었으므로 ‘완전한 사회’로 이해되는 교회 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로 교회와 백성에 대한 이러한 이분된 이해를 극복했다. 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 아래, 교회 안의 모든 구성원(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이 각각 고유한 은사와 임무를 지니고 진정한 평등성 속에 전체로서의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교계제도 이상으로 그 위에 자리하며, 교계제도의 명령을 하달 받는 기관이 아니다. [2021년 5월 2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3. 교회 쇄신의 시작 : 공의회의 교회 이해 ② 왜 하느님의 백성인가? (상)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어머니 품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는 놀라운 은총의 표현을 부디 마음속에 새겨두시길!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해한 교회 개념으로 그것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특징은 (지난 회에 보았듯) 교회와 백성 사이의 분리의 벽을 극복하고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 곧 ‘분리’가 아니라 ‘일치’, ‘하나’인 것이다. 사도 시대부터 교회는 본디 하나의 교회 아니었던가! 그 토대 위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본래 하나이면서) 새로이 전체로서의 하나를 향해 보다 심화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나아간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이 극복해 낸 장벽이 비단 교계제도와 평신도 사이뿐만이 아님을 이미 암시한다. 곧 하느님의 백성은 이 공의회 교회론의 기초이자 핵심개념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공의회의 교회에 대하여 가르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풀어내고 이해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그러면 이 하느님의 백성에 감추어진 또 다른 의미들은 무엇일까? 이제 이 새로운 교회상 ‘하느님의 백성’이 종전의 교회개념에 비하여 무엇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고 또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 차이와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하느님의 백성’은 ‘백성’이라는 인격적 개념을 취함으로써 종전까지 이어져 온 ‘제도’의 개념을 극복하고, 교회가 제도 이상의 인격적 공동체임을 분명히 한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론은 교회를 ‘완전한 사회’로 보면서 교회 안에는 어떠한 죄의 요소도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고, 그것이 교계제도로써 유지, 존속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입장은 비록 당대의 오류에 맞서 가톨릭교회를 지키려는 의도였다 해도, 교회의 진정한 쇄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방어적으로만 대응하여 교회중심권위의 한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는 곧 교계제도’라는 인식을 낳고야 말았다. 이것을 극복해 낸, ‘백성’이라는 인격적 개념이 주는 또 다른 의미는, 선과 악의 성향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인간들의 공동체이니만큼 하느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성인들과 죄인들의 공동체이므로 늘 쇄신으로 불림 받고 있음을 자각하는 겸손한 교회의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의 백성’ 개념은 그 구성원의 평등성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교계제도(성직자)에 대한 신자(평신도)의 무리로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을 포함한 전체로서의 하나의 교회이다. 본디 교회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모임’으로 그 자체로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교회는 이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는 어떤 일정한 신분이나 등급 또는 관청이나 집단뿐일 수는 없다. 그것을 넘어서서 교회는 언제나 어디서나 전체 하느님의 백성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H. Küng) 공의회 이전의 교회론은 교회 안의 여러 신분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평등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공의회는 바로 이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하느님 백성’ 개념으로 극복한 것이다. 곧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두가 하느님 백성이며(「교회헌장」 30), 바로 이러한 교회 구성원의 평등성이 교회의 친교의 신비를 드러내는 바탕이 된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3. 교회 쇄신의 시작 : 공의회의 교회 이해 ③ 왜 하느님의 백성인가? (하)

 

셋째,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서로 포괄한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교회헌장 9항)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 이들의 무리를 불러 모으시어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사람과 개인의 구원을 이룩하는 이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가 되게”(교회헌장 9항) 하셨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이란 말 자체에, 하느님과 백성(인간)의 관계, 그리고 ‘백성’이라는 복수 개념에 이미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함께 들어있다. 그런데 이 백성이 그리스도 안에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공의회 스스로 그 중심을 그리스도 안의 모임에 두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메시아 백성’,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신 대사제 그리스도의 새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는 거룩한 백성’에 대하여 말한다(교회헌장 9.10.12항).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그리스도와의 긴밀하고도 인격적인 관계와 백성들 상호간의 밀접한 관계의 중요성을 동시에 나타낸다(이는 이후에 다룰 하느님 백성의 삼중직무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넷째, ‘하느님의 백성’ 개념은 교회가 종전의 ‘교의의 교회’로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사목의 교회’로 나아가야 함을 인식하게 한다. 공의회는 사목을 성직자가 평신도를 돌보는 교회 안의 일로만 여기던 종전의 사고를 벗어나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온 인류에게 봉사하는 차원으로 폭넓게 이해하도록 그 지평을 열어준다. 곧 이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목의 개념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모든 인간과의 연대’이고, 사목의 주체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며, 사목의 대상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 안 사람들과 교회 밖 사람들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전체 인류이다.

 

이같이 하느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특징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모든 것으로부터 공의회 이전까지 행해진 교회의 자기중심적 이해에 대하여 무언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곧 ‘완전한 사회’(지난 회 참조)를 근본적으로 넘어서게 된 것이다. 교회는 이제 (교회)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이해한다. 곧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 서로와의 관계라는 이중의 관계에 봉사하며, 이 봉사 안에서 교회의 가장 진정한 정체성인 복음화를 실현해 나간다. 공의회는 결국 교회를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표지이자 도구로 이해하며, 이것을 기초로 교회의 새로운 자아개념,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백성’은 이 공의회 교회론의 기초이자 중심 개념이 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이 교리를 공식처럼 머릿속에 외워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행위로써 드러내는 것에 있다. 내가 변화하지 않고, 변화된 교회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그분 백성,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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