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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 과학이 다루는 지식 ‧ 개념 ‧ 이론의 실재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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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30 ㅣ No.405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6) 과학이 다루는 지식 ‧ 개념 ‧ 이론의 실재성 문제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고 탐구하는, 과학철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철학 분과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과학이 다루는 지식 · 개념 · 이론이 과연 실재하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

 

많은 과학자가 옹호하는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이란 ‘과학은 우리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로서, 존재하는 대상으로 정확한 지식 · 개념 · 이론을 통해 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라는 관점이다.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 이론은 대상으로부터 관측된 사실을 기술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등 경험적 유효성을 가질 뿐 아니라, 관측 불가능한 부분, 예컨대 전자, 쿼크, 초끈과 같이 직접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해서까지도 이론이 말하는 모든 예측이 실제로 옳아야 한다. 실재론자가 보기에 과학은 이러한 실체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반실재론(anti-realism)은, ‘과학의 목적은 대상으로부터 정확한 지식 · 개념 · 이론을 통해 진리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얻어 낸 실험 ‧ 관찰의 결과들을 경험적으로 적절하게 기술함으로써 현재의 수준에서 유용한 지식 · 개념 · 이론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과학적 이론화의 진짜 목표는 진리성이 아니라 ‘경험적 적절성’에 있으며, 과학 이론은 진리 ‧ 진실을 의도하지 않는 허구적인 모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반실재론자는 과학적 기술들이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면서 과학을, 관찰 가능한 현상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을 돕는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 정도로 여긴다.

 

이러한 반실재론에 따르면 과학의 임무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의 추구로 그 범위가 좁혀지고, 관측 불가능한 것에 관한 이론은 영원한 가설이거나 사고에 편리함을 더하는 도구로 격하되어 버리고 만다. 실재론과 반실재론 사이의 논쟁은 현재 과학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양측이 의지하는 기본적인 직관은 둘 다 매우 타당해 보인다.

 

 

외부 세계는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가

 

실재론자들의 직관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에 새겨진 인상은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독립적인 속성을 갖는’ 외부 세계에 의해 초래된다. 그러므로 문제의 실체를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든 없든 그 속성은 알아내려는 시도는 분명 올바른 것이다.

 

반면에 반실재론자들의 직관에 따르면,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우리가 발견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의 모습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에는 인상들이 끊임없이 새겨지기에 우리가 그러한 인상들을, 그것을 남긴 대상의 본성과 비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재를 올바르게 기술했는지를 확인하려 현상의 베일을 걷어 내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단 한순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가 우리에게 남긴 인상 외에는 세계에 대한 어떤 지식도 얻을 수가 없다고 본다면, 과학자들이 그러한 인상을 설명하고자 상정하는 숨겨진 힘과 구조들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차이는 실재의 관찰 불가능한 영역에 관한 주장을 내세우는 분과, 특히 물리학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양자물리학은 관찰 불가능한 실체들을 상정함으로써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고 자연에 개입해 새로운 효과를 내며 더 자세하게 정확한 예측을 하는 대표적 분과이다.

 

실재론자들은 만일 전자, 쿼크, 초끈과 같은 입자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물리학자들이 부여한 속성을 실제로 지니지 않았다면 양자물리학과 같은 과학이론의 경험적 성공은 기적이거나 굉장한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실재론자들은 이에 대해 반론한다. 과학사는 한때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실체들을 상정했던 ‘폐기된 이론들의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려 1500년 동안이나 큰 성공을 거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 그러했듯이 지금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론들도 지난날에는 성공적인 예측을 해낸다고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성공적인 이론도 반드시 사실이리라고 예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반실재론자들은 과학사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경험적인 성공으로 미루어 이론이 참되다고 하는 것은 불안정하다고 주장한다.

 

 

반실재론과 과학주의

 

현재 다수의 자연과학자, 특히 절대다수의 실험과학지는 실재론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자신들의 실험 측정으로써 나온 모든 데이터가 바로 독립된 실재의 반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20세기, 특히 양자물리학의 출현 이후 ‘코펜하겐 해석’(관찰자의 행위가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의 해석)의 영향을 받은 여러 이론물리학자와 과학철학자는 반실재론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상반된 두 진영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여전히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 특히 실험과학자와 이론과학자가 대등하게 분포된 물리학의 여러 분과 안에서 진행 중이다.

 

과학을 도구로 여기는 반실재론적 관점은 과학 자체의 개념 · 이론의 진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반실재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만일 과학이 우리 인식과 정신에서 독립된 실재로서 존재하는 대상에게서 사실 · 개념 · 이론 · 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 아니라면, 그러한 과학이 신앙과 종교에 관해 하는 말은 과연 진리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신앙과 종교에 관한 과학자들의 주관적 입장 표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반실재론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과학주의가 점차 그 힘을 잃게 되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반실재론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물질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그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많은 물리적 경험이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반면, 신앙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그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많은 ‘영적’ 경험이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과학 또한 ‘믿음’, ‘신앙’의 태도를 내재적으로 포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반실재론의 입지가 강화될수록 과학과 종교는 신앙의 태도를 공유하는 두 체계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깊은 내용은 알고 싶은 독자분들은 필자의 글 ‘현대의 과학 시대에서도 신앙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과학주의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한 신앙의 의미 탄색’(「신학전망」, 204호, 2019, 130-170쪽)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 김도현 바오로 -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과 ‘과학과 종교’를 연구,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0월호, 김도현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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