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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 다중 우주론의 과학적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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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6 ㅣ No.397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2)


다중 우주론의 과학적 문제점 1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과학주의자들은 우주론과 진화론이 주장하는 ‘확률적 우연성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에 입각한 무신론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경향잡지」 3월 호에서 살펴보았다. 이달에는 현대 우주론 중에서, 특히 과학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이론인 ‘다중 우주론의 한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과학주의자들은 다중 우주론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이론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무신론적 과학주의를 극복하는 데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때는 터무니없었던 ‘빅뱅 우주론’

 

20세기 초 물리학계에 소개된 ‘빅뱅 우주론’은 우주의 기원과 현재까지의 팽창을 설명하는 물리 우주론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 매우 높은 에너지로 응축된 작은 공간이 특정한 시점에 발생한 대폭발로 팽창하여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폭발 이전에는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작은 점에 갇혀 있었으나 대폭발의 순간에 그 작은 점으로부터 공간이 급팽창하면서 동시에 물질과 에너지가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 물질과 에너지는 점차 원자와 분자, 별들과 은하계를 형성했다.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이론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는 1927년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수학적 해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우주는 반드시 팽창해야 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밝혀냈다. 이는 정적인 우주를 당연시하던 아인슈타인에게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1929년 에드윈 허블은 수십 개의 외부 은하를 면밀해 관찰한 결과 멀리 떨어진 각 은하의 거리와 그들이 멀어지는 속도가 비례한다는 이른바 ‘허블 법칙’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허블 법칙의 등장으로 빅뱅 우주론의 천문학적인 첫 번째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1964년에는 우주의 극초단파를 연구하던 미국 벨연구소의 관측 천문학자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균일하게 마이크로파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르는 이 마이크로파 잡음은 초기 우주의 온도가 수천 도에 달할 정도로 뜨거웠고, 당시의 물질 분포 또한 은하나 별이 형성되지 않은 상당히 균일한 상태임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이는 빅뱅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우주 배경 복사의 균일도를 엄밀하게 관측하고자 ‘COBE’, ‘WMAP’, ‘Planck’라는 이름의 관측 위성이 차례로 우주로 보내졌다. 그들 가운데 특히 WMAP이 지구로 전송해 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임이 밝혀졌다.

 

 

‘미세 조율된 우주’와 ‘인류 원리’

 

이렇게 대폭발을 통해 탄생하고 팽창하는 우주는 ‘미세 조율된 우주’로 보인다. ‘우주가 미세 조율되었다.’는 말은, 탄생한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중력 상수를 비롯하여 물리학의 30여 가지 기본 상수의 값이 ‘대단히 좁은, 또 놀라울 정도로 한정된’ 범위 내에 존재해야만 하는데, 이 물리 상수들이 마치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의해 ‘정밀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보편적으로 물리학계에서는 만일 이러한 기본 상수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의 값과 다르다면 우주가 빅뱅 이후 현재와 같이 팽창하거나, 우주 안에서 원자와 별들과 은하계 구조가 만들어질 수 없고, 또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생명체가 우주 안에서 생겨나는 것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리라 판단한다. 특히,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우주의 미세 조율을 단 여섯 가지 물리 상수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지금도 미세 조율에 관한 대표적인 물리학적 설명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우주의 ‘미세 조율’ 현상을 일반인들은 단순히 운이 좋게 우리의 우주가 이러한 조건을 만족했다고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주의 이러한 현상에 관한 궁극적인 원인과 이유를 탐구해 온 여러 과학자는, 이들 모두가 유신론자는 아님에도 ‘지구가 인간을 비롯한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러한 개념의 생명체는 물리학적으로 현재와 같은 기본 상수들과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공통된 주장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 대폭발을 통해 만들어진 우주가 우연히 현재와 같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30여 가지의 물리 상수를 포함한 모든 조건이 너무나 완벽해 보인다. 과학자들은 생명체, 특히 인류가 우주에 생존하려면 바로 이러한 ‘미세 조율된 필연적 생명체 생존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인류 원리’라고 부른다.

 

 

다중 우주론의 탄생 배경

 

인류 원리는 1974년 호주의 물리학자 브랜던 카터가 처음 명명한 이래로 여러 저명한 천문학자들에 의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버전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누구라도 이 인류 원리를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원리’로 받아들인다. 특히 1988년 존 배로와 프랭크 티플러 두 학자가 ‘천문학과 양자 역학, 화학, 지구 과학 등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은하계 내에 생존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주장함으로써 인류 원리에 관한 논의가 학문적으로 널리 활성화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이러한 학문적 작업은 인류 원리에 관한 유신론적 해석, 곧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지구에만 생존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창조주의 의도적인 계획, 또는 설계자의 치밀한 설계에 따른 것이다.’라는 식의 해석이 널리 퍼져 나가도록 이끌었다. 이는 결국 여러 유신론적 과학자와 신앙인이 자신들의 신앙을 옹호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이 인류 원리를 적절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무신론이 옳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야만 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으로부터 탄생한 ‘무신론적 우주론’이 바로 ‘다중 우주론’이다.

 

이 내용에 대해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필자의 글 ‘무신론적 과학주의 근간이 되는 과학 이론들은 과연 완벽한가? - 현대 우주론과 진화론의 문제점과 한계들’(「신학전망」 206호, 160-200면)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경향잡지, 2020년 4월호, 김도현 바오로]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2)


다중 우주론의 과학적 문제점 2

 

 

다중 우주론은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사실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으며, 그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라는 것이다.

 

각각의 우주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비눗물로 만들어 내는 비눗방울처럼 빅뱅이라는 과정을 통해 급팽창하여 생겨나다가 나중에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또 다른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서 급팽창하다가 사라진다. 바로 이 아이디어 때문에 다중 우주론은 초기에 ‘버블 우주론’(bubble cosmology)이라고도 불렸다.

 

 

다중 우주론의 상정

 

이 다중 우주 아이디어는 당시 스탠포드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앨런 구스가 1981년에 제안한 빅뱅 직후의 우주 급팽창 개념에, 당시 널리 통용되던 인류 원리를 결합시킴으로써 생겨났다.

 

당시 몇몇 이론 물리학자들은, 만일 우리의 우주 하나만 존재한다면 우주의 필연적 창조주 또는 설계자라는 개념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다.

 

그에 따라, 우주가 무한히 많다고 상정함으로써 ‘무한히 많은 우주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아이디어를 고안한 것이다.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의 총 개수는 10122개(1 뒤에 0이 무려 122개나 붙은 어마어마한 숫자이다!)보다도 훨씬 더 많다.

 

이렇듯이 사실상 무한개의 우주 가운데 아주 예외적으로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리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말하면 우연성에 기반하고도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중 우주론은 과학적 설득력을 갖춘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중 우주론의 아킬레스건

 

다중 우주론은 사실상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론이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의 존재는 실험(관측)을 통한 물리적 검증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론이 주장하는 개별 우주들은 사실 상호작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우주에서 다른 우주들의 존재를 확인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우주 이외의 다른 우주들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도 그 의미를 지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우주가 최소 10122개 이상이나 있다고 이 이론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다중 우주론을 옹호하는 학자들도 다중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다른 우주의 실재성과 검증 가능성’ 문제에 대해 이미 잘 인식하고 있으며, 바로 이 문제로 말미암아 최근까지 학문적으로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그렇기에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론자인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 맥스 테그마크는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 우리가 그 예측을 모두 관찰하고 검증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적어도 하나만 검증되면 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중 우주론이 그 관찰과 검증 중에 ‘적어도 하나’라도 과연 만족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중 우주의 존재는 물리적 관찰도, 물리적 검증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머릿속의 개념과 종이 위의 수학적 해석을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이 가상의 우주를 과연 우리가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도 현재 다수의 ‘과학주의적 과학자들’은 다중 우주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그 주장의 기저에는 신 · 창조주라는 개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대표적인 무신론적 과학주의자인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책 「위대한 설계」를 통하여 다중 우주론에 투영된 자신의 무신론적인 관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중력은 공간과 시간의 모양을 결정하므로 시공이 국소적으로는 안정적이 되고 광역적으로는 불안정적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우주 전체의 규모에서 양의 물질 에너지는 음의 중력 에너지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따라서 우주 전체의 창조에 제약이 없다. 중력과 같은 법칙 때문에 우주는 제6장에서 기술한 방식으로 무로부터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고 창조할 것이다.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

 

철학자이면서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자인 존 레슬리는 ‘창조주 개념의 도입보다는 다중 우주론의 도입이 논리적으로 더 낫다.’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신이 부재할 경우 우리의 탄생은 어마어마한 운 덕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예컨대, 우리 우주의 대칭성이 아주 약간 다르게 깨어졌다면 생명체는 우리 우주에서 결코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뭐? 다중 세계 가설은 몇몇 존재가 탄생하기 위한 엄청난 운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지를 보여 준다. 그것들이 극단적으로 운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 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은 아니다.”

 

 

각축하는 우주론

 

현재까지의 우주론 연구에 따르면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뿐이다.

 

하나. ‘우연히’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는 우주가 탄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둘. ‘신 · 창조자 · 설계자에 의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미세 조율을 통해 조성되어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주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

 

셋. 엄청난 수의 다중 우주 중에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가 우연히’ 발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설명이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우연과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 없이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중 우주론 옹호자들의 주장도, 다중 우주론이 머릿속의 개념과 수학적인 접근에만 기반을 둔 나머지 물리학적인(실재적인) 근거를 ‘심각하게’ 결여한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이 내용에 대해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 분들은 필자의 글 “무신론적 과학주의의 근간이 되는 과학 이론들은 과연 완벽한가?: 현대 우주론과 진화론의 문제점과 한계들”(신학전망」, 206호, 2019년, 160-200면)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김도현 바오로 -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과 ‘과학과 종교’를 연구,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5월호, 김도현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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