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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구역반장 월례연수: 회칙 찬미받으소서 1장을 통해 파악하는 기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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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5 ㅣ No.1854

[구역반장 월례연수] 회칙 「찬미받으소서」 1장을 통해 파악하는 기후 위기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지금 전 세계 교회는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의 요청에 따라 작년부터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동참하는 중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와중에, 기후 위기로 인한 기상 이변까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 공동체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 중입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우리 공동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기저에는 일종의 절박감과 시급함이 자리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선택에 따라서 미래 세대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총량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의 개요

 

지난 2015년 5월 24일에 반포된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사회교리 회칙입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생태환경 회칙이며, 모든 신앙인과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총 6장, 246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태 영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1891년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노동문제에 관한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신 이래로, 교황님들의 사회교리 회칙 반포는 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당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는 워낙 분야가 다양하고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교황님들께서 사회교리 회칙을 반포하실 때 그 주제가 자연스럽게 그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09년에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반포하셨습니다. 당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칙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경제’였습니다. 투기적인 금융자본이 실물 경제의 위기를 가져오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와중에 회칙은 ‘진정한 발전’에 대해서 고찰하며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보면 「찬미받으소서」가 생태환경 회칙인 이유도 해석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6년 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사회 문제가 바로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찬미받으소서」에서 교황님께서는 환경 위기, 특히 기후 변화라는 인류 공동의 문제가 얼마나 다급하고 거대한 문제인지를 상기시켜주시고, 이에 대한 신학적 영적 성찰을 통합하고 발전시키셨습니다.

 

 

제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사회교리의 기본 접근방식은 ‘관찰-판단-행동’입니다. 먼저 현상을 객관적으로 또한 충분하게 관찰하는 작업이 있어야 복음에 비추어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판단된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야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 출발점은 언제나 ‘관찰’이 됩니다.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찬미받으소서」의 첫 장 역시 현상에 대한 관찰을 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제1장에 45항을 할애하시면서 현재 지구 생태계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살펴보시는데, 세부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가 그동안 환경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왔기에 지구 생태계에 다양한 문제가 일어났고, 이것이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입니다. 특히, 기후 변화 문제는 단순히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입니다.”(25항)

 

사실, 「찬미받으소서」 반포 이전에도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이런 우려들은 점점 더 커지는 중입니다. 지구 생태계가 그 한계점에 도달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들에서의 주된 초점은 많은 부분 현상에 대한 해결 방안, 특히 기술적 방안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세상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출발점부터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현 상황을 이렇게 바라보셨습니다.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2항)

 

결국, 기후 변화라는 현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교만이 자리합니다. 진리를 폐기해버리고 인간이 창조주의 자리를 대신한 세상에서 자유는 절대권력이 되었습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반복해야 작동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피조물은 착취되었고 고통받는 이들은 배제되어갔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주목합니다. 교회의 전통이 그러하듯이 사회교리 회칙이 세상 문제를 다루면서도 전 세계 신앙인들에게 보내는 신앙회칙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제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환경 문제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자연환경과 인간 환경이 함께 악화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결과가 인간 사회에 그대로 돌아옵니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그대로 타인을 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관심의 세계화”(52항)가 세상에 만연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리, 하느님께서 공동의 집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교황님께서는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주제 안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와 현상뿐만이 아니라, 다시 여기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인간의 문제에도 분량의 절반을 할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그러하시듯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고통에 더 주목하셨습니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도 체험하고 있듯이 전 지구적인 재난이라 하더라도 그 고통은 부유한 국가보다 가난한 국가에 더 가혹합니다. 또한,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고통받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서 보면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49항) 결국, 환경 문제 역시 인류의 오래된 숙제인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49항)

 

회칙에서 이러한 불평 등에 관한 주목은 최종적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 간 “차등적 책임”(52항), 즉 “생태적 빚”(51항) 개념에 도달합니다. “불평등은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가 국제 관계의 윤리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현실적인 ‘생태적 빚’은 특히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불균형, 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이용한 사실과 관련됩니다.”(51항)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부 부유한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결과는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고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극히 미미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소멸되는 와중에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들은 이들에게 ‘생태적 빚’을 진 셈입니다.

 

그러니 책임도 차등으로 주어져야 실효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90년대부터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이 ‘차등적 책임’에 관한 부분이 예전에도 합의를 방해했고 지금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득실에만 너무 집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 이전에 우리가 다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숨을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국경도 장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52항)

 

이처럼 「찬미받으소서」의 첫 번째 장은 현시대 상황에 관한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61항)

 

그렇다면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난 인류는 무엇을 되돌려야 할까요? 어떠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회칙이 전하는 주요 개념들을 다음 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DJc-yxg4cY0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2월호,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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