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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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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대 그레고리오 - 세상의 고통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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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30 ㅣ No.595

[교부들의 신앙 – 대 그레고리오 1] 세상의 고통 앞에서

 

 

위기 속 낯선 세상에서 던지는 질문

 

코로나19 때문에 세상이 온통 비상사태에 놓인 지도 1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학교 수업도 멈추고 미사마저 방송을 통해서 드리는 상황이 되었지요. 작년 가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일들이 이제는 ‘뉴노멀’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논의도 활발합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면서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들어왔으며, 운송 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세상이라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의 장마도, 위력이 더 커진 태풍도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그러진 때문이며 이는 코로나19보다 더 위협적인 ‘기후 위기’를 초대할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립니다. 지금껏 살아온 세상이 더는 기능하지 않다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신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라는 촉구

 

서기 590년 겨울, 대림 제2주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신임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대 그레고리오)는 루카 복음서 21장 25절부터 33절까지의 내용을 신자들에게 강론합니다. 이것이 기록되어 전해지는 「복음서 강해(40편)」(Homiliae XL in evangelia) 강론 1번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기를 바라시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지 않도록 하시려고 이제 쇠퇴해 가는 세상을 덮칠 악에 대해 미리 선포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채찍질이 종말이 머지않았음을 예언했는지를 가르치시고, 우리가 평온할 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박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곧 다가올 악들의 무게 아래서 말입니다.

 

형제들이여, 실상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구절에 앞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루카 21,10). 몇 가지 다른 말을 덧붙이신 뒤에 우리가 들은 말씀으로 맺으십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25절).

 

실상 이 모든 예언 중 일부는 이미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나머지도 머지않은 앞날에 이루어지리라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온 땅을 덮치는 두려움 속에서, 복음서가 말한 이상으로 많은 민족들이 민족들을 거슬러 일어나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다른 쪽에서는 지진이 많은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끝날 줄 모르는 전염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의 특별한 현상은 아직 분명히 보이지 않았지만 대기의 변화는 그것이 머지않았음을 짐작게 합니다.

 

이탈리아가 야만족들의 칼 아래 놓이기 전에 우리는, 하늘로부터 불덩이들이 마치 이후 사람들이 흘린 생생한 피와도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와 거센 파도의 표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많은 예언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미루어 그 일들도 일어날 것임은 분명합니다. 벌어진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일어나리라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복음서 강해」, I,1).

 

대 그레고리오는 그해 9월 3일 착좌한 참이었습니다. 로마 시장이라는 지위에까지 올랐던 그는 아버지를 여읜 뒤 세상을 버리고, 살던 집을 수도원으로 개조하여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교회의 부름으로 부제가 되었고 이어서 콘스탄티노플에 교황 사절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왔지요.

 

589년 큰 홍수가 로마를 덮쳐 시민들의 양식을 보관하고 있던 식량 창고가 침수되어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페스트가 창궐하여 펠라지오 2세 교황도 전염병의 희생자가 됩니다.

 

 

하늘나라를 맞이하는 예언자의 준비

 

절망에 빠진 시민들이 대 그레고리오의 거처에 와서 “그레고리오 교황!”을 연호하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직무를 받아들이게 된 형편이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강론에서, 당시의 파국적 상황이 그들에게 고통이지만 이는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는 데 따르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은 타락한 이들을 향한 것이므로, 뽑힌 이들을 위로하고자 말씀은 바로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진리이신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뽑힌 이들이 경계하도록 하십니다. ‘세상에 악이 늘어나고 자연의 무질서한 힘 때문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퍼질 때 머리를 들어라. 다시 말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기뻐하라. 너희가 마음을 두고 있지 않은 세상이 끝나가고 너희가 찾던 구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머리’라는 말은 곧잘, 마음을 가리킵니다. 몸의 지체들이 머리에 따라 움직이듯이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든다 함은 마음을 하늘나라의 기쁨을 향해 들어 올린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들이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들이 끝나 가고 그들이 사랑하던 분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쁨에 대한 소식을 지녔으므로 온 힘을 기울여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빠른 걸음으로 그 여정을 마치고, 더 빠른 길로 거기 이르기를 바라야 합니다.

 

세상 삶을 괴롭히는 번민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만한 슬픔과 어려움이 우리를 괴롭힙니까. 끝나고야 말 삶이 여정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형제들이여, 끝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힘든 길을 걷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좋은 비유로 세상이 대단하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29-31절).

 

그 뜻은 이렇습니다. 나무들이 열매를 통해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드러내듯이 세상이 황폐해짐으로써 이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봅니다. 이는 세상의 열매가 바로 그 황폐임을 분명히 합니다. 자라지만 그것은 사라지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맺지만, 생명을 얻은 것을 파국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반면 하느님 나라는 여름에 비견됩니다. 우리 슬픔의 안개가 걷히고 생명의 날들이 영원한 태양의 광채 속에 빛나는 때가 그때이기 때문입니다(「복음서 강해」, I,3).

 

대 그레고리오는 현재의 파국과도 같은 어려움이 새 세상을 낳는 산고와 같다고 가르칩니다. 이민족의 침입, 자연재해와 페스트를 겪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예언자의 말입니다. 대 그레고리오는 교황인 자신의 직무를 저 예언자의 직무와 같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 황인수 이냐시오 – 성바오로수도회 수사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성바오로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0월호, 황인수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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