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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20: 신자들을 위해 만든 천주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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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24 ㅣ No.2089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20) 신자들을 위해 만든 천주가사


주요 교리 노래로 부르며 쉽게 익히도록 도와

 

 

- 최양업 신부가 동네 사람들에게 천주가사 중 ‘사향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한 임수현 작가의 작품.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최양업은 줄곧 한글을 이용한 교리 신심서 보급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신자들 대부분이 하층민과 여성인 현실을 고려할 때 한글로 된 책이 신앙 교육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에서 최양업은 “쉬운 한글 덕분으로 세련되지 못한 산골에서도 신자들이 빨리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구원을 위한 훈계를 받을 수가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성교요리문답」과 「천주성교공과」의 한글 번역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최양업.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한 교우촌의 특수한 상황, 필사본 교리서의 절대적인 부족을 고려해 최양업은 누구나 암송하기 쉬운 대중적인 ‘가사’(歌辭) 양식을 활용했다. 누구든 우리말로 쉽게 노래처럼 교리를 암송할 수 있는 천주가사를 만든 것이다.

 

 

조선 교회 안에 전파된 천주가사

 

가사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발생된 문학 갈래로,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를 띤다. 주로 4음보의 율문으로 3·4조 또는 4·4조를 기조로 한다. 이러한 가사는 민중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생활 속의 노래로 가창되거나 음영됐다.

 

불교나 동학, 규방에서 대중성을 띠며 전파됐던 가사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천주교에서도 이를 활용하게 됐다. 천주가사는 4·4조나 7·5조로 만들어졌다. 노래를 좋아하던 우리 민족의 성향에 맞춰 가락에 교리 내용을 가사로 붙여 노래로 부르게 된 것이다.

 

교리의 내용을 노래로 부른다는 점은 배우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노래 자체가 주는 특유의 감동과 호소력은 신심을 높이는데 기여했을 수 있다.

 

구전되던 천주가사들을 모은 「천주가사집」에 수록된 가사는 크게 ▲ 구세사와 삼세(천당과 지옥, 현세)를 노래한 가사 ▲ 세례·견진·고해·성체·병자·신품·혼인을 다룬 칠성사가 ▲ 제성(提醒)과 수덕(修德)을 노래한 가사 ▲ 사말(四末) 중에서 죽음과 심판을 노래한 가사로 묶을 수 있다.

 

「황사영 백서」에는 ‘경신년(1800년) 부활절에는 개를 잡고 술을 빚어 가지고 한 동리 교우들과 함께 길가(산골 작은 길)에 모여 앉아서 큰소리로 희락경을 외우고 바가지와 술통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라고 당시 신자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천주가사 자료집」을 엮은 김영수(스테파노) 전 경희대 교수는 이를 토대로 천주가사의 기원에 대해 “이 노래가 천주가사였는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부활절에 부르는 노래인 만큼 교리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며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이미 천주교 신자가 급속도로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천주가사가 나타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밝힌다.

 

티성지 최양업 박물관에 소장된 천주가사 중 하나인 공심판가. 세상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께 받을 공심판을 노래로 설명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최양업의 천주가사

 

천주가사는 박해시대에 구전이나 노래를 통해 전승되다가 1900년대 초에 비로소 필사됐기 때문에 제작 시기 및 작가가 명확하지 않다.

 

최양업이 지었다고 추정되는 작품도 여럿 존재하지만 정확히 작자표기가 된 것은 ‘사향가’,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 4편이다.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는 사말(四末) 중에서 죽음과 심판을 노래하며 ‘사향가’는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생각하고 현세의 박해를 이겨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양업 천주가사의 특징은 신자 재교육의 측면에서 주요 교리를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 스스로 묵상과 교리실천, 신심 함양에 힘쓰도록 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형식면에서는 기본적으로 3·4조 내지 4·4조의 전통 가사 형식과 운율을 이용했다. 표현 방법에서는 인유론(引儒論), 즉 전통 유교의 표현과 내용을 빌려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당시대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천주교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주려고 한 것이다.

 

박해와 순교라는 조선 교회의 현실은 그의 천주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향가’는 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육화론적 영성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종말론적 영성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양업의 염원이 담긴 ‘사향가’를 함께 듣고 불렀던 신자들은 이웃과의 나눔과 같은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훗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원의를 품을 수 있게 됐다.

 

[가톨릭신문, 2022년 5월 22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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