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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3: 과학과 신앙의 동일한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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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2 ㅣ No.438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3) 과학과 신앙의 동일한 출발점


과학과 신앙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태어난 쌍둥이

 

 

- 미국 서부에 있는 그랜드 캐니언.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협곡이다. 자연과학과 신앙은 둘 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김도현 신부 제공.

 

 

지난 호에 저는 우리의 신앙을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도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랜 기간 연구해온 물리학의 연구 주제를 예로 들면서 우리의 신앙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의 두 편의 글을 이미 읽으신 분들은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과학이 나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셨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과학과 신앙을 서로 싸우는 사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이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렇듯이 과학과 신앙이 갈라지고, 서로 대립하는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 이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은 밤하늘을 바라보아도 별들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 20년, 30년 전 정도까지만 해도 밤하늘을 바라보면 상당히 많은 별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선조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의 많은 이들은 이 우주의 광활함에 크게 감탄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도대체 저 우주, 저 별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리고 저 우주, 저 별들을 만든 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그리고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바닷가를 거닐면서 넓고 푸른 바다의 모습에 압도되곤 합니다. 이 바다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거리를 던져줍니다. ‘도대체 저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리고 저 바다를 만든 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가는 이들은 그 광활한 모습에 저절로 탄복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도대체 저 그랜드 캐니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리고 저 그랜드 캐니언을 만든 분은 과연 누구길래 이렇게 어마어마한 장관을 만들어내시는 것일까?’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은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한 후에 자신의 신앙이 더 깊어지는 체험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지혜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지혜 13,5)

 

미국항공우주국이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우주. 은하수의 위성 은하 중 하나인 대마젤란운(LMC) 내에서 빛나는 가스와 검은 먼지의 소용돌이를 보여준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많은 신앙인들은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자연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질문하면서, 동시에 그 자연의 창조자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를 생각하고 그분께 찬미를 드리곤 했습니다. 바로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이 어떤 식으로 생겨났는지를 물으면서, 동시에 웅대하고 아름다운 피조물을 창조한 “그 창조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죠.

 

지혜서의 이 문구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에 생겨난 자연과학과 신앙은 사실은 출발점이 동일합니다. 자연과학과 신앙은 둘 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다만 질문이 좀 다를 뿐입니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저 웅대한 자연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저 자연을 저런 식으로 지탱하고 유지시켜주는 근본적인 법칙이나 원리는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면, 신앙을 가진 많은 이들은 “저 웅대한 자연을 만드신 위대한 창조자는 과연 어떤 분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은 그 태생적인 출발은 같은 곳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둘 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과학과 신앙은 사실 한 어머니에게서 난 쌍둥이인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럽이 계몽주의의 영향 하에 있게 되고 나폴레옹이 한참 전쟁을 치르면서 전 유럽을 지배하던 1800년경에 이르게 되면, 무신론적이고 반종교적인 성향의 과학자들이 유럽의 전역에서 출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과학과 신앙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는 과학과 신앙은 사실 한 몸에서 난 쌍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는데, 이 계몽주의 시기 이후로 과학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고 대립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에는 자연철학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과학자라는 명칭을 가지면서 완전히 종교적인 색채, 심지어는 기존의 철학적인 색채까지도 완전히 지워버리고 과학의 내용만을 탐구하는 사람들로 변모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과학과 신앙은 완전히 갈라지게 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레베카라는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쌍둥이인 에사오와 야곱이 서로 갈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쌍둥이였던 과학과 신앙이 어떻게 돼서 이렇게까지 갈라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갈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이 둘 사이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설정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신앙인이면서 동시에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앞으로 계속 가슴에 간직한 채 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30일,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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