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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뷰티풀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 화가 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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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02 ㅣ No.1277

[영화 칼럼] 영화 ‘뷰티풀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화가 납니까?

 

 

화를 참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소리 지르고, 폭력을 휘두릅니다. 아무 상관 없는 타인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무턱대고 화풀이를 하는 비열하고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화를 참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참고 쌓아두면 한국 사람에게만 있다는 ‘화병’에 걸리거나,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거나, 어느 날 한꺼번에 폭발해 더 큰 화(禍)를 불러옵니다.

 

영화 <뷰티풀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의 잡지 기자인 로이드도 가슴에 화가 가득합니다. 그 화는 죽어가는 엄마와 어린 남매를 두고 오래전에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상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고립된 인간관계, 세상에 대한 냉소, 대화가 아닌 주장, 일에만 몰두하기,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글로 대신합니다. 그 글로 때론 아무도 못 보는 진실을 밝혀내고, 망가진 세상을 고치게 하고, 연말에 특집 기사 상까지 받으면 뭐 합니까. 정작 자신은 망가진 사람인데. 그가 자조(自嘲) 하듯 ‘사회 부적응자’로 아내와 어린 아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모두가 인터뷰를 꺼리는 외톨이로 ‘악명’만 높아져 가는데. 그런 그가 내키지 않은 한 인물을 만나면서 바뀝니다. 어린이 TV쇼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의 진행자 로저스입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로저스는 TV쇼에서 ‘좋은 날, 최고의 이웃’으로 그를 맞이해 일방적 질문과 대답(인터뷰)이 아닌 대화를 시작합니다. 예상 못한 상황을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TV쇼에서의 로저스와 실제 삶에서의 로저스를 보면서 로이드도 마음을 엽니다. 화를 녹여버리니 소중한 가족이 보이고, 아버지의 사랑이 보입니다.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은 로저스로 분한 노배우 톰 행크스가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동요로 전하는 메시지가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이해하고, 쓰다듬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난 로이드와 기꺼이 ‘이웃’이 되어 그 가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겸손한 모습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최고의 양육은 우리가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보고 아이들이 겪는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어서 특별합니다. 전 이 모습 그대로를 참 좋아합니다.”

 

삶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고, 화날 일도 많습니다. 로저스는 그럴 때,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고 자기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많다고 했습니다. 찰흙 덩어리를 주먹으로 치거나, 피아노 건반을 열 손가락으로 ‘꿍’하고 두드리거나, 전속력으로 수영을 하거나.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성자(聖者)는 아니니까요.

 

로이드에게서 제 모습을 봅니다. 신문기자로 글에 날을 세워 찌르기에 매달렸던 그때는 몰랐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나의 상처였음을. 5년 전(2016년)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의 신앙체험 수기(대상 수상)를 쓰면서 다짐했지만, 이따금 글에 가시가 툭툭 나옵니다. 어리석게도 버리지 못한 화가 있나 봅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를 합니다.

 

[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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