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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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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8-31 ㅣ No.675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상)


버려진 아이들 위해 헌신

 

 

- 성 알폰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

 

 

“알폰소! 어린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회를 설립해라. 터는 이미 준비돼 있다.”

 

성 알폰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는 신학생 시절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나 수도회를 세우라는 명을 받았다. 이 명을 간직하고 사제가 된 푸스코 신부가 설립한 수도회가 바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다.

 

1839년 이탈리아의 남부지방 앙그리에서 태어난 푸스코 신부는 앙그리의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앙그리는 공장이 많아 산업이 발달했던 이탈리아 북부와 달리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의 부모들이 들판으로 일을 나가야 했다. 아직 공교육이 없었기에 아이들은 방치됐고,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나와 불량한 일에 빠지기 일쑤였다. 앙그리에도 사제들은 있었지만, 아이들은 사제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푸스코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방학이면 아이들을 돌보곤 했는데, 꿈속에서 만난 예수님의 지시에 용기를 얻고 더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푸스코 신부는 1863년 사제가 되면서부터는 자신의 집에 공부방을 열어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나아가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푸스코 신부는 특히 극심한 빈곤 속에서 일하며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농부들,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고, 모든 이들에게 올바르고 정의롭게 살도록 가르쳤다.

 

푸스코 신부는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막달레나 카푸토와 3명의 지원자를 만났고, 이들과 함께 낡은 집에서 1878년 9월 26일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를 설립했다. 꿈속에서 받은 예수님의 명을 지켜낸 것이다.

 

수녀회는 수도자들이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다. 그럼에도 푸스코 신부는 “이 수도회는 하느님의 것이고 나는 그분의 일꾼”이라며 수녀들과 함께 기쁨에 차 활동했다. 그는 “여러분은 거룩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여기 모였고,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며 “생활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매일 살아갈 것과 순명과 노동, 기도생활”을 강조했다.

 

그런 푸스코 신부의 영성에 따라 고아들을 돌보며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갈망하는 지원자들이 날로 늘어났고, 고아들의 수도 늘어났다. 푸스코 신부는 수녀들을 교사로 양성하고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학교를 세웠고, 청소년들을 위해 직업 기술학교도 운영했다. 또 인쇄소를 통해 신심서적과 기도서, 가톨릭교리 보급에도 힘썼다.

 

푸스코 신부는 1910년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의 무익한 종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했다. 푸스코 신부의 성덕은 잠비아 어린이 제솜 기즈마에게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고, 이에 2001년 시복식이, 2016년에는 시성식이 거행됐다. 푸스코 신부의 영성은 오늘날 세계 18개국에서 활동하는 수녀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편교회가 공경하는 성인인 푸스코 신부의 삶과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기도 하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8월 29일, 이승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중)


고아들과 함께하며 예수님과 일치 추구

 

 

-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문장.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제공.

 

 

“이 수도회는 나의 과업이 아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의 일꾼일 뿐이다. 이 과업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분께서 원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해 이 일을 시작하셨으므로 모든 것은 그분께서 생각하실 것이다.”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설립자 성 알폰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의 이러한 부르심, 즉 하느님이 부르셨다는 성소는 수녀회의 정신이다. 수녀회는 이를 통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무한한 신뢰심을 지니고 열의가 가득 찬 사도직,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쁘게 헌신하는 활동을 펼치고 다시금 그 활동 안에서 수녀회의 정신을 인식해 나간다.

 

수녀회 영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자렛 예수님과의 일치다. 그 일치의 영성은 수녀회 이름에 담긴 ‘세례자 성 요한’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난다. 복음서가 세례자 성 요한을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는 말씀으로 표현했듯이 주님의 길을 마련해 나감으로써 나자렛 예수님과 내적으로 깊이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수녀회 문장을 통해서도 이 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수녀회 문장은 악의 세력에서 보호됨을 상징한다. 또 방패 모양에서 나뉘는 붉은 색과 흰 색은 거룩한 요르단 강을 나타냄과 동시에 머리와 몸이 분리된 세례자 성 요한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십자가를 감고 있는 녹색 깃발에는 세례자 성 요한의 말인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는 문구를 담고 있다.

 

수녀회는 영성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설립자 푸스코 신부의 삶의 모범을 따른다. 푸스코 신부는 수녀회를 설립하면서 아무런 재정적 여건도 없는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갈 곳 없는 고아들을 돌보며 생활했다. 푸스코 신부에게는 이 수도회가 하느님의 것이며, 가장 가난하고 작은 이들인 고아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나자렛 예수님의 길을 닦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녀회의 영성에 감화된 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1880년에는 교구의 인준을 얻고 착복식을 열 수 있었다. 여전히 가난 속에서 사도직활동을 펼쳐나갔지만, 고아들의 교육과 보육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지원자들도 계속 늘어났고, 고아들도 늘어갔다. 수녀들이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한 공간, 이탈리아 앙그리의 작은 수녀원은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으로 불렸다.

 

또한 수녀들은 푸스코 신부의 영적 유언에 따라 수녀 각자의 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푸스코 신부는 선종하기 전 수녀들에게 “그대들은 겸손하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녀가 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라”며 “나는 하늘나라에서 항상 그대들을 생각할 것이며 또한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수녀회는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삼덕을 기초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도직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모든 회원들의 성화를 고유한 목적으로 두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9월 5일, 이승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하)


늘 도움 필요한 아이들 위한 사도직 선택

 

 

- 세례자 요한 어린이집에서 흙공만들기 체험중인 아이들.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제공.

 

 

“주님, 당신께 순종하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을 돌보고 싶습니다. 사랑은 가득하지만 저는 부족합니다. 저의 사랑이 섭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설립자 성 알폰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는 특별히 아이들을 사랑했다. 수녀회 역시 설립과 함께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도생활을 이어갔다. 교구에 진출한 수녀회도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젊은이들을 위한 사도직 지향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수녀회가 1991년 교구에 진출할 당시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활동으로 사도직을 시작했다. 필리핀과 이탈리아 출신의 수녀들이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지만, 10여 년간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 후 영어교실을 운영해왔다.

 

이어 수녀회는 사도직을 더욱 체계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세례자 요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맞벌이 등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보육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어린이들을 돌보는 사도직을 선택한 것이다.

 

수녀들은 어린이집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기표현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돌봤다. 특히 주변 자연환경을 활용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 본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어린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사랑과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아울러 우리농산물 등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으로도 보육환경이 좋아지고, 저출산의 영향으로 지역 내에 어린이 수가 줄어들어, 23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아동보육활동을 마무리했다.

 

어린이집 사업은 종료했지만, 수녀회는 어린이집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찾아 나섰다. 바로 2012년 문을 연 ‘알폰소 푸스코의 집’을 통해서다. ‘알폰소 푸스코의 집’은 북한이탈주민들의 미취학 자녀를 양육하고 초등학교 학업 준비를 도와주는 아동공동생활 가정(그룹홈)이다.

 

수녀회는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많은 수가 한부모로 생업에 종사하거나 학업 또는 건강 등의 사정으로 자녀를 양육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을 알고 ‘알폰소 푸스코의 집’을 마련했다. 이곳의 수녀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엄마, 이모, 할머니 또는 선생님이 돼준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동시에 수녀들은 ‘알폰소 푸스코의 집’을 후원하는 후원자와 은인, 봉사자들의 도움 속에서, 무엇보다도 어린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해 나가고 있다.

 

수녀회는 이밖에도 수원 지역 대학교에서 가톨릭 대학생 동아리 활동을 지도하며 청년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있고, 본당 전교를 통해서도 수녀회의 영성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9월 12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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