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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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112: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9) 정의, 희망에 대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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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1 ㅣ No.2729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12.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9) 정의, 희망에 대한 희망(「간추린 사회교리」 578항)


서로를 보듬는 희망 속에서 정의는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공동 역사의 결정적 사건들을 용감하게 써 내려 온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엮여 있고 그들을 통하여 지탱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의사, 간호사, 약사, 상점 종업원, 환경미화원, 요양사, 운송종사자, 기본 서비스 제공자와 보안 요원, 자원 봉사자, 사제와 수도자 등입니다. 이들은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54항)

 

 

사회를 바라보며

 

노동사목 소임 당시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심란한 많은 노동문제와 현안을 대함에서 오는 막막함이 참 컸습니다. 노동사목 사제가 그런 문제를 다 책임질 수도 없겠지만 여러 갈등현장을 보며 마음이 늘 무거웠습니다.

 

또한 그 해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동 말고도 우리 사회에는 많은 갈등 현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복되고 쌓이면 돌이킬 수 없는 실망감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열심히 해 봐야 소용없잖아?”, “아무리 정의를 외쳐 봐도 바뀌지 않아!” 이런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공정성은 논란을 넘어 극도의 실망을 주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느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게 현 정권도 고위관료를 포함한 공공기관에서 자행된 투기와 탐욕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처입었습니다. 소외와 가난에 시달리는 어르신들,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 가난한 노동자들,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타향살이 하는 외국인 형제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과연 공정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평화를 얻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실망과 좌절

 

토론토 라르슈 새벽공동체에서 장애우들과 함께 지내며 일생토록 전쟁과 핵무기에 맞서 평화를 외쳤던 헨리 나웬(1932~1996)은 고통과 불의함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비폭력과 기도를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때로는 고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 이를 통해 가난하고 주변화된 이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망과 실망, 우울, 낙담 등이 수반되며 이른바 영적자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투쟁은 영적 건강함을 유지하며 악에 오염되지 않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용기, 믿음, 하느님 안에 머묾, 은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평화의 영성)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용서의 어려움’(43항), ‘지상낙원의 건설의 현실적 불가능함’(579항), ‘불의함을 마주할 때 이해하고 용서하기가 쉽지 않음’(517항 참조)을 언급합니다. 더욱이 불의한 상황이 도덕적 삶을 짓누를 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어기고 죄를 짓도록 강자와 약자를 모두 유혹한다고(137항) 하며 악의 간교함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도, 존중, 이해, 존경과 사랑을 갖고 끊임없이 용기를 내어 평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519항)

 

 

원더풀 미나리!

 

어떤 영화의 대사인데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이 잔잔히 흐르는 영화입니다. 이민 간 가정이 겪는 희로애락을 통해 잊힌 가족애와 공동체의 가치를 기억하게 해 준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하자’라는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감염병 사태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가 옅어진 것은 아닌가 걱정됩니다만 여전히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 안에는 희망이 존재합니다. 아쉽고도 아쉬운 지금의 현실들, ‘내 삶의 평화, 우리 사회의 안녕’이라는 소박한 바람과 소시민적 삶이 위협당하고 허무한 일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비록 괴롭지만 이 삶을 잘 살아가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알고 이해하는 것보다 살아 내고 실천할 의지, 용기와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고발하고 투쟁해야 할 의무도 있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스함이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친구, 이웃, 공동체와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죠. 정의는 그런 희망 속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세상이 스스로에게 닫혀 있지 않고 하느님 나라로 열려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 교회는 무법의 신비가 이미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 안에는 넉넉한 자질과 활력 그리고 근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창조주의 모상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며, 성령의 힘 있는 활동이 온 세상에 충만히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78항)

 

[가톨릭신문, 2021년 3월 28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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