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를 보여 준 결정적 사건 - 갈릴레오 사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407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를 보여 준 결정적 사건


갈릴레오 사건

 

 

갈릴레오 사건은 종교 재판인가

 

‘갈릴레오 사건’은 가톨릭 교회의 검사성성(흔히 종교재판소라고 번역한다.)이 이탈리아의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총 두 차례(1616년과 1633년) 행한 종교 재판과 공식적인 단죄를 포함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은 형식상으로 종교재판의 형태를 띠지만, 내용 면에서 갈릴레오의 신앙 문제가 아니라 그의 과학적 발견과 해석을 성경과 신학의 잣대를 들이대어 판단, 단죄한 재판으로 비춰져 왔다.

 

그 때문에 이 사건은 아직까지 갈릴레오 사후에 교회와 과학자 집단 사이 갈등의 씨앗이 되는 ‘첫 번째 중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전 세계의 과학사학자들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지난달에 소개한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다.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은 ‘한 과학자에 대한 몰이해로 일어난 교회의 과도한 권력 행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고 탐구하는 과학철학이 학문적으로 생겨나자 사건에 대한 해석이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갈릴레오 사건은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철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질문인, 이른바 ‘실재론 문제’를 보여 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로서 받아들여진다.

 

 

실재론과 반실재론, 갈릴레오와 교회

 

세상의 많은 과학자와 과학철학자는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의 옹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은 간단하게 말하면, ‘과학은 우리들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로 존재하는 사실과 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실재론에 따르면, 과학 이론은 관측된 사실을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등 경험적 유효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론이 말하는 모든 내용이 관측 불가능한 부분에까지도 글자 그대로 정말로 옳아야 한다. 또한 실재론자는 과학이 이러한 실체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갈릴레오는 바로 이러한 실재론의 입장을 옹호한 대표적인 과학자였다. 실제로 그가 종교재판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지동설의 ‘물리적 실재성’을 옹호하는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 실재론에 반대하는 반실재론자들 또한 존재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반실재론(anti-realism)에 따르면, ‘과학의 목표는 진리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험과 관찰의 결과들을 경험적으로 적절하게 기술함으로써 현 단계에서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에 있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화의 진짜 목표는 진실성이 아니라 ‘경험적 적절성’에 있게 된다. 곧, 과학 이론은 진리나 진실을 의도하지 않는 허구적인 모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반실재론자들은 과학적 기술이 정확한지에 대해 불가지론적 입장을 지키고, 과학이 관찰 가능한 현상의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을 돕는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라고 여긴다. 반실재론을 따르면 과학의 임무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의 추구만으로 그 범위가 좁혀진다. 또한 관측 불가능한 것에 관한 이론은 영원한 가설이나 편리한 사고의 도구로 격하되고 만다.

 

사실 갈릴레오의 시대에 이미 이러한 반실재론자들이 있었다. 예컨대 갈릴레오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추기경과 우르바노 8세 교황이, 반실재론적인 접근을 취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천동설과 지동설은 둘 다 별과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하늘의 구조를 만들 때 실제로 선택하신 방식이 어떤 것인지는 당시로서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현대 과학철학의 해석

 

그러나 현대의 실재론자들과 반실재론자들은 갈릴레오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실재론자들은 전반적으로 갈릴레오가 실재론자였기 때문에 그를 옹호하면서 당시 교회의 과학적 무지를 비판한다.

 

반실재론자들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대표적인 반실재론자인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자신의 대표작인 「방법에 반대하여」에서 실재론자들, 일반적인 자연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을 한다.

 

교회는 ‘우리가 해석한 성경에 반한다면 아무리 과학적인 이유가 강력하더라도 그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학적 추론으로 지지되는 진리는 배제되지 않았다. 성경 구절의 해석이 과학적 추론과 명백히 배치되는 경우 그 해석을 수정하려 했다. 평평한 지구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이 많이 있었어도, 교회의 교리는 마땅히 구형의 지구를 받아들였다.

 

반면에 교회는 누군가가 어떤 애매한 추측을 내놓았다 하여 변화하지는 않은 것이다. 교회는 증거를 원했다. 과학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적 증거 말이다. …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에는 그때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교회는 그래서 갈릴레오에게 그것을 ‘가설로서’ 가르칠 것을 권고하고, ‘진리로서’ 가르치기를 금했던 것이다.

 

(가설과 진리에 관한) 이 구분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 우리는 과학사학자이자 물리 ‧ 화학자인 피에르 뒤엥이 말한 대로 “논리는 벨라르미노의 편에 있었고 갈릴레오의 편에 있지 않았다.”는 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확고한 반실재론자인 파이어아벤트는 갈릴레오 사건이 단순히 당시의 권력 집단인 교회가 한 선량한 과학자를 부당하게 박해한 사건이 아니라고 여긴다. 지동설을 가설로서 ‘올바르게’ 받아들인 반실재론자 집단인 교회와, 그것을 진리로서 ‘고집스럽게’ 주장한 실재론자 과학자의 관점 차이에 따라 발생한 불행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재도 반실재론적 성향의 과학철학자들과 이론물리학자들은 ‘당시 교회의 관점이 갈릴레오의 관점보다 더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갈릴레오 사건은 ‘실재론과 반실재론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최초로 수면 위로 드러난 역사적 사건’으로서 현재까지도 계속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렇듯이 과학을 도구로 여기는 반실재론적 관점은 과학 자체의 개념과 이론의 진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달에 제기한 질문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실재론자들이 주장하듯 만일 과학이 우리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로 존재하는 대상으로부터 사실, 개념, 이론, 그리고 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 아니라면, 그러한 과학이 신앙과 종교에 관해서 하는 말은 과연 진리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신앙과 종교에 관한 과학자들의 주관적 입장 표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반실재론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과학주의는 점차 힘을 잃게 되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분들은 필자의 글 ‘갈릴레오 사진: 교회와 과학자 집단 간 갈등의 시발점’(「신학전망」, 201호, 2018년, 119-156쪽)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 김도현 바오로 -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과 ‘과학과 종교’를 연구,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김도현 바오로]



2,445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