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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 선교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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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23 ㅣ No.652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 선교 수도회 (상)


선교사 양성 위한 신학교에서 시작

 

 

- 창립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

 

 

1837년 독일 라인 강변에 위치한 고흐(Goch)에서 태어난 성 아놀드 얀센 신부(1837~1909)는 수학과 과학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사제직에 대한 열망으로 신학을 공부한 뒤 24세 때인 1861년 8월 15일 당시 뮌스터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그 후에는 독일 북서부 보홀트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의 영성적인 발전과 특히 해외 선교에 투신하고픈 열망을 키워가던 성인은 ‘기도의 사도회’ 회장을 맡아 방학만 되면 선교용 소책자를 들고 본당을 찾아다니며 기도 모임을 열었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는 독일 전역에서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문화 투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그에게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성인은 그 이듬해 해외 선교에 대한 영감을 담은 선교 잡지 「예수 성심의 작은 사자」(Little Messenger of the Sacred Heart)를 발간했다.

 

그는 잡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던 복음 전파에 투신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또한 대중들의 선교 의식을 고취해 선교 신학교 건립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잡지가 짧은 시일 내에 많은 독자를 늘리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 설립을 결심했다.

 

그러나 문화 투쟁 영향으로 독일 내 선교 신학교 설립이 금지된 상황에서 성인은 네덜란드로 시선을 돌렸다. ‘신학교 건립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지는 시간이 바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며 해외 선교를 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라 답했다.

 

마침내 많은 이들의 지지와 협찬을 얻어 1875년 9월 8일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 선교 신학교,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이 설립됐다. 이는 곧 말씀의 선교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SVD, 이하 수도회)의 시작이었다.

 

SVD 명칭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 소명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고, 특별히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성인은 세상 모든 나라에 주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 했고, 중국을 가장 마음에 두었다.

 

수도회 창립 4년 만인 1879년 그는 최초의 선교사를 중국에 파견했다. 이어서 일본,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홍콩, 대만, 한국으로도 선교사들을 보냈고 최근에는 미얀마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선교사 수는 수도회의 53%에 해당한다.

 

계속해서 남미, 아프리카에 진출한 수도회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오늘날 65개국에서 모인 약 6000명 선교 사제와 수사들이 전 세계 72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8월 23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 선교 수도회 (중)


그리스도 말씀 선포를 소명으로

 

 

- 말씀의 선교 수도회 첫 선교사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말씀의 선교 수도회 제공.

 

 

창립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1909년 선종할 때까지 매년 50명의 선교사를 낼만큼 수도회를 발전시켰다.

 

또 1889년 12월 8일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해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서로 협력하도록 했고, 1896년 12월 8일 관상 수도회 ‘지속적인 성체 조배 수녀회’를 설립해 기도와 자기희생을 통해 선교에 참여하도록 했다.

 

선교에 있어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내다 본 성인은 하느님 뜻을 식별하기 위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적절한 사람들을 보내주실 거라고 확신했다. 두 수녀회의 창립은 아놀드 얀센 신부의 선교 가족 수도회 탄생으로 이어졌다.

 

성인은 평생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고심했다. 평범한 수학교사였던 자신이 성령의 힘을 받지 않고서는 수도회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깨달았다.

 

이를 위해 얀센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기도를 자주 드렸다. ‘15분마다 드리는 기도’는 그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수도 회원의 성소를 식별할 때에도 지원자가 정말 기도를 사랑하는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기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며, 사람은 기도로만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도회는 선교의 지표를 사람이 되신 ‘말씀’, 즉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찾는다. 인간과 친교를 이루기 위해 사람이 되신 말씀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과 모든 사람이 이루는 친교의 성실한 일꾼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성인은 늘 ‘거룩한 삼위일체여, 우리 안에 사소서. 또 모든 사람 안에 사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는 이 삼위일체 신비를 단순히 하느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시련도 극복할 수 있으며,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은 시련을 겪을수록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라는 명칭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수도회는 ‘말씀’에서부터 모든 선교 활동과 영성의 기본을 찾아볼 수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요한1,1) 급속한 과학 문명의 발전과 함께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현대 사회 안에서 수도회는 1988년 제13차 총회에서 영성 생활의 현시점을 이 ‘말씀’에서 재확인했다.

 

‘죄의 어둠과 불신의 밤은 말씀의 빛 앞에서 사라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모든 이의 마음 안에 계시다’는 기도는 수도회 회원들의 영성 생활 길잡이다.

 

회원들 소명은 세상에 그리스도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하느님께 대한 헌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본보기를 제공한 ‘거룩한 말씀’을 정신과 마음 속에 간직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8월 30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 선교 수도회 (하)


세계 100여 곳에서 선교사 양성

 

 

지난해 12월 한 자리에 모인 말씀의 선교 수도회 한국지부 회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 제공.

 

 

성 아놀드 얀센은 생전에 다섯 개의 선교 신학교를 설립했다. 그의 선교 가족 수도회 후손들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개 양성의 집에서 선교사를 양성한다.

 

1909년 선종 후 2003년 10월 성인 반열에 오른 그에 대해 한 주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열악한 상황에서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려 했다”며 “바보이거나 성인일 것”이라고 했다.

 

수도회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많은 사람이 하느님 목소리를 듣도록 한다. 그래서 세상 곳곳에서 활동하는 지역교회 부름을 받아들여 복음화와 선교활동, 공동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사목으로 진정한 미래에 대한 안목을 제공하며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회헌 501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나라와 문화에서 온 회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육화하신 말씀에로의 일치 속에서, 성령의 힘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 수도회 양성과 교육 목적이다.

 

특별히 선교 활동의 실현화에 있어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에의 증거, 즉 말씀 증거는 중요한 첫걸음이다.(회헌 106)

 

성인의 선교 열정이 한국교회에 이어진 것은 1984년이다. 그해 8월 24일 당시 수원교구장 故 김남수 주교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수도회 한국지부는 한국인 선교사 양성에 주력하며 본당 사목 참여를 통해 한국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수도자 평신도들을 위한 피정 지도와 영성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교구 내에서는 1992년부터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1997년 경기도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 상담센터 ‘갈릴래아’를 마련했던 수도회는 이를 통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영성 생활을 돕고 안산에서 일하는 필리핀 공동체 등 활동을 지원한다.

 

한국지부 활동과 방향은 한국인 수도 선교사 양성과 아울러 한국인의 선교 의식 자각,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 중인 성서 사도직 등이다. 한반도 복음화를 지향하며 북한에서도 선교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목적들을 실행에 옮기는 다목적 센터 건립도 계획 중이다.

 

현재 한국에는 6개국(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마다가스카르, 콩고)에서 온 17명 외국인 회원들과 6명 한국인 회원이 3개 공동체를 이뤄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사제 3명은 일본, 호주,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돼 있으며 2명 신학생이 미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양성을 받고 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서울, 수원, 광주 등 7개 교구에서 이주노동자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의정부와 춘천교구에서 2명 선교사가 본당 사목을 돕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9월 6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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