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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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기에 하늘의 큰 영광을 채우신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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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30 ㅣ No.1817

[현대 영성]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기에 하늘의 큰 영광을 채우신 성모님

 

 

성모님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신 분이시다. 그녀가 열어 준 이 가능성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 비움’(self-emptying)이다. 성모님의 가장 큰 영광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자신을 비우셨기에 오히려 더 큰 하늘의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토마스 머튼은 『새 명상의 씨』에서 “비움을 찾는 것은 성모님을 찾는 것이다. 비움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은 성모님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듯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모셔오는 성모님의 사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비우고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사실 당시 처녀가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죄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성모님의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은 돌 맞아 죽을 각오로 한 엄청난 말인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천사의 소식에 오롯이 믿음으로 응답한 그녀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어야 했으며, 태어난 아기가 자라고 성장하고 공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하느님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고, 그 아들을 먼저 무덤에 안장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렇듯이 성모님의 영광은 순종과 자기 비움, 기다림의 인내와 드러나지 않은 삶,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의 열매였다. 또한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로 불러 올림을 받으심으로써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느님의 영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삶의 고통 중에도 믿음과 자기 비움을 통해 성모님을 따라갈 때 우리도 성모님의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는 성모님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듯이 비워진 우리 자신 안에 예수님이 사실 때 완성된다(갈라 2,20 참조).

 

성모님의 자기 비움과 순종의 삶은 우리에게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간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평생 동정’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 등의 교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다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성모님은 합리적 사고를 넘어 납득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예수님과의 일치를 선물 받았다. 우리 삶 가운데에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이성적인 생각을 넘어 자신의 것을 온전히 내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반면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다른 모든 것도 부정적으로 보이는 경향도 생겨난다.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도 합리적인 인간의 사고를 넘어 더 큰 사랑과 자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마태 20,1-16; 루카 15,11-32 참조).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셨다. 우리도 우리 삶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있는 아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우리는 더 큰 사랑의 선물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 앞에 성모님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모님의 자기 비움의 영성을 통해 일치(union)와 친교(communion)의 삶을 배워야 할 것이다. 자신의 뜻을 온전히 비우신 성모님,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자신의 것을 모두 비우신 아들 예수님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셨다.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통해 서로 참된 친교를 나누셨다. 이 친교는 영적인 친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친교를 포함한다. 성모님은 태중에서 예수님과 몸의 일치를 이루셨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마음의 일치를 이루었으며,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영적 일치를 이루셨다. 일치를 이루신 두 분의 사랑의 친교는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성체를 통해 몸으로 예수님과 일치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마음으로 일치를 이루며, 우리의 영이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삼으셨기에 성모님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다. 성모님과 교회의 지체인 우리 역시 분리될 수 없다. 가톨릭교회 역시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성령 안에서 영적인 일치를 이루고 세상과 친교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22년 5월 29일(다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가톨릭마산 4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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