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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 안 상징 읽기: 딸기 - 완전성과 의로움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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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07 ㅣ No.2799

[교회 안 상징 읽기] 딸기 : 완전성과 의로움의 상징

 

 

- 보스(Bosch),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중세기의 미술은 다분히 상징주의에 빠져서 표현하는 모든 대상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중세기에는 이를테면 십자가, 물고기, 가시나무처럼 성경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상징성을 지니는 것들이 가톨릭 전승을 통해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께로 귀결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중세 가톨릭의 분위기 안에서 점진적으로 온갖 돌들, 꽃들, 나무들, 동물들에서 연상되는 창조주의 특징적인 속성이며 그 의미를 발견해 내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장미는 위엄과 순수함을 상징하게 되었고, 카네이션은 그 고유한 특징과는 별개로 꽃받침의 모양으로 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실 때 사용된 못들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뭇 짐승들의 왕인 사자는 왕권과 용기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상징성 또한 풍부한 식물로 딸기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딸기는 그 열매에 씨앗이 많은 데다가 꽃의 향기는 스쳐 지나가고 나면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일시적이어서 현세의 쾌락이 찰나적임을 말해 주는 식물이라 해서 중세기에 한때는 한순간의 성적인 유혹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은 오래전부터 전해 온 것은 아니고, 네덜란드의 화가 보스(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딸기에 관한 기괴한 글에서 유래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16세기 초에 그려진 이 그림은 중세기가 아니라 종교혁명이 촉발되던 시기에 유럽의 특정한 지역들에서 보였던 타락한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보스의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 미술의 섬뜩한 면모를 앞서 보여 준 예형(豫型)으로서 회자되곤 한다.

 

- 뒤러, <바냐카발로 마돈나>

 

 

사실 딸기는 중세기의 많은 회화 작품들과 수많은 필사본 서적들의 면면에서 아주 매력적이고 좋은 상징성을 지닌 식물로 표현되고 묘사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원예가 다로우(Darrow)가 1966년에 쓴 ‘딸기’(The Strawberry)라는 책에는 딸기에 관련된 많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딸기가 가톨릭의 전통 안에서 결코 육욕이나 악행을 자극하는 열매로 여겨지지는 않았다고 말해 준다. 그보다는 오히려 무구(無垢)하고 좋은 열매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딸기는 의로운 사람이 맺는 좋은 결실을 나타낸다

 

중세 초기의 미술 작품들과 설화들에는 지상 낙원의 식물로서 딸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아마도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라는 시에서 유래하는 듯하다. 시인은 황금시대에 지구는 인간이 향유할 수 있도록 열매들을 자발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하면서, 그중에 딸기를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즐거움들 중의 하나로 거론했다.

 

그리하여 1300년대까지는 딸기가 이탈리아, 플랑드르, 독일, 영국의 미술 작품들에서 완벽한 의로움의 상징으로 묘사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중세기의 사람들은 딸기가 우울증에 좋은 치료제가 된다고 믿었다. 이는 딸기가 우리를 영원한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치유 능력을 암시하는 식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나아가, 다로우는 “딸기는 고결한 생각과 겸손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 색깔과 향기로 해서 쉽사리 눈에 띄는 편임에도 대지를 향해 겸손하게 절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딸기의 세 부분으로 나뉜 잎은 삼위일체를 연상케 한다. 아래로 땅을 향해 달리는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핏방울들을 가리키고, 5개의 흰 꽃잎은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가리킨다고도 말했다.

 

덕행은 본성상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주장을 펼친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주변을 둘러싼 어떠한 독성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딸기의 의롭고 썩지 않는 특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면서 딸기의 신선한 순수함과 순결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딸기는 땅 위를 기듯이 자라며 뱀, 도마뱀과 그 밖의 독을 품은 파충류들에게 끊임없이 뭉개지면서도 조금도 그 독의 영향을 받거나 악한 성질을 흡수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독과는 아무런 친화성도 없는 진정한 표지다.”(‘신애론’) 이어서 성인은 딸기가 덕이 높아 자신을 둘러싼 죄악의 악한 의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을 연상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기에 중세의 석공들은 완벽함과 의로움의 상징으로서 딸기 문양을 교회 건축물의 제대들과 기둥들의 상단부에 새겨 넣곤 했다. 그렇게 웅장한 교회 건축물들의 장식은 꽃들을 한데 엮은 화환으로, 꼬아 올린 담쟁이덩굴들로, 빨간 열매들과 흰 꽃이 어우러지며 선망의 대상이 된 야생 딸기들로 자연에 대한 중세기의 찬사를, 그리고 봄철에 누릴 수 있는 온갖 즐거움들에 대한 감사를 노래했다.

 

- 보티첼리, <잠드신 아기 예수님께 흠숭을 드리시는 성모님>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 딸기, 그리고 동정 성모 마리아님

 

성모님을 그린 그림들, 기도서들과 성무일도서들의 면면을 장식한 테두리 그림들, 특히 성모자를 그린 그림들에서 딸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딸기들의 마돈나’(The Madonna of the Strawberries)라는 멋진 작품에서 보듯이, 때로는 이름마저도 별것 아닌 열매인 딸기가 그림에서 영광스럽게 배경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꽃을 피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매를 맺는 딸기는 동정성을 간직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아드님을 낳으신 어머니시기도 한 성모 마리아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열매의 빨간색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꽃의 흰색 때문에 성모님의 정결함과 겸손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인지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은 성모님을 그릴 때 흔히 딸기도 또한 그려 넣었다. 뒤러(Dürer)가 그린 ‘바냐카발로 마돈나’(the Bagnacavallo Madonna)에서는 성모님이 열매 달린 딸기 가지를 손에 드신 아기 예수님을 무릎에 안고 계신다. 그런데 이 딸기 가지의 잎은 세 갈래 중 두 갈래만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누락된 갈래는 아기 예수님을 가리키며, 이는 그분이 곧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심을 가리킨다. 또한 보티첼리(Botticelli)의 작품 ‘잠드신 아기 예수님께 흠숭을 드리시는 성모님’(Virgin Adoring the Sleeping Christ Child)의 오른쪽 하단 모퉁이에서는 꽃과 열매가 모두 달린 딸기를 볼 수 있다.

 

- <낙원의 동산>

 

 

그리고 15세기 초의 또 다른 그림 ‘낙원의 동산’(the Garden of Paradise)에서는 성모님이 온통 당신을 상징하는 꽃들과 열매들에 둘러싸여 계신다. 그 열매들 중에는 천당에서 지내는 복된 영혼들의 음식인 겸손한 딸기도 있다. 그러니까 이 달콤한 열매는 에덴동산에서 누리는 행복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열매들인 천상의 복된 영혼들의, 곧 성모님의 발 주위에 모여 있는 복된 영혼들의 행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로우에 의하면, 딸기의 상징성을 그림으로 묘사한 그림들 중 단 하나의 예외는 보스의 이상하고 복잡한 그림뿐이다. 보스는 포도, 체리, 사과와 함께 딸기를 관능의 표지로 묘사했다. 이는 무고한 중세기 예술 정신의 표현이 아니라 보스의 일그러진 상상력 안에 깃든 어둡고 기괴한 상징주의의 표현일 뿐이라고 하겠다. 딸기는 무엇보다도 성모님의 열매 맺는 동정성과 천상의 행복 안에서 지내는 영혼들의 완벽한 의로움을 확실하게 반영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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