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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의 역사와 공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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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938

[경향 돋보기 -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의 역사와 공경의 의미

 

 

들어가며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맞이한 각 시대와 상황에 맞게 그 시대의 징표를 읽어 내며 하느님께서 존재하심을 온몸으로 드러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성화(聖化, 레위 11,44; 1베드 1,15)로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을 후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모범으로 삼으며 자연스레 ‘성인 공경’(cultus sanctorum) 행위가 시작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특히 박해 시대 순교자들을 공경하였는데, 이들이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결합되었으며 그리스도와 지상의 교회를 중개한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박해가 멎으면서 순교할 기회가 사라지지 다른 차원의 성인 공경 행위가 시작되었고 전 유럽으로 널리 퍼졌다.

 

한편 성인 공경은 지나칠 정부 광신이나 미신적인 행위로까지 치달아 교회의 우려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사실 성인 공경은 대중 신심에서 생겨났지만,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지나칠 우려가 늘 잠재하기에, 교회의 공적 전례에서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교도권의 지도가 필요했다.

 

 

박해 시대의 순교자 공경

 

순교는 ‘따라 죽을’ 순(殉)자에 ‘가르칠, 교회’ 교(敎)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로, 풀어 보자면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라틴어로 순교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마르티리움(martyrium)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본래 ‘증인’ 또는 ‘증거’를 의미하지만, 교회적으로는 ‘피 흘림으로 순교자가 됨’을 의미한다. 즉, 순교란 그리스도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 단계라 할 수 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인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는 실로 초인적이라 할 수 있었고,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따라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인식은 그리스도교인을 넘어서 이교인들에게까지 차츰 확산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관례적으로 순교자들이 죽은 장소에서 모이기 시작하였고, 순교자들이 이미 구원의 영예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특히 그들의 순교일(dies natalis, 천상 탄일)을 기억하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깊은 신심으로 보관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은 교회의 운명뿐 아니라 그 모습도 변화시켰다. 그때까지 박해를 받던 교회는 로마제국의 인정을 받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신생 그리스도교를 통일된 로마제국의 내적 구심점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황제의 의도에 따라 다른 종교들보다 다소 우월한 대우를 받다 보니, 제국 통치의 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위험에도 노출되었다.

 

박해가 끝난 뒤 신자들의 관심은 순교자가 아닌 다른 차원의 성인들, 곧 비록 신앙을 위해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신앙을 옹호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갔다. 비록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박해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 고백자(confessor), 안토니오 아빠스처럼 세상과 떨어져 사막과 광야 같은 곳에서 수행하던 고행자(asceticus)나 은수자(anachoreta),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처럼 이단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켜낸 주교와 교부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동시에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서유럽 세계는 이방 민족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교회 또한 이리한 혼란의 국면에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하느님의 섭리는 지속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럽 대륙이 아닌 현재의 영국과 아일랜드 지역에서 시작된 지역민과 함께하는 골룸바노 수도 생활과 체계적인 수도 규칙을 가졌던 베네딕토 수도 생활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기고, 수도승(monachus)들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지나친 성인 공경의 문제점과 교도권의 개입

 

성인 공경이 교회 생활 속에 불러올 유익함은 분명하였지만, 공경이 지나칠 경우 광신 또는 미신으로까지 기울 우려 또한 있었다. 초기 박해 시대 엄격한 생활을 추구하던 집단들은 때때로 순교를 하도록 강요한 경우도 있었기에, 주교들은 그러한 지나침에 대해 경고하기도 하였다.

 

치프리아노(Cyprianus, ?-258년) 주교는 스스로 순교를 원하여 찾아다니는 것은 지나친 자만이라고 경고하였다(「죽음」, 17장). 또한 그리스도교 교리가 정립되기 이전 시대인 초대교회 때는 다양한 이단이 존재했는데(영지주의), 이들은 순교의 영웅적인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선을 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클레멘스는 ‘선교를 위해서 어떤 순교도 피해야만 한다. 신앙을 전파하는 기회를 더 가지고자 겉으로 패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자만심에 기인한 순교를 경계하기도 하였다.

 

박해 시대 이후에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유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해를 지방의 큰 성당들에 안치함으로써 신자들은 순교자의 유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인 유해에 대한 열망은 또한 남용을 낳기도 하여, 9-11세기에는 유해의 위조, 상품화, 악용, 절도 등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13세기에는 카타리파(Cathari), 발도파(Valdesi) 등이 지나친 성인 공경을 비난하였고, 종교개혁 시대 개혁가들은 성인의 존재나 모범적인 삶은 인정하였지만, 성인들의 전구나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부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남용을 막고자 교도권 차원에서 시복 시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시성이란 어떤 가톨릭 신자가 실제로 영광 중에 있으며, 온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공경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최고 교도권이 결정적인 형태로 선언하는 행위이다. 시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부분들만 언급하면,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이 교황에게 유보되었고(1234년), 식스토 5세 교황은 예부성성을 설립하여(1588년) 시성 대상자의 심사를 담당하게 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예부성성과 독립된 시성성을 설립하였고(1964년), 현재까지 시성성에서 시복과 시성의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올바른 성인 공경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어느 날 신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구구절절 너무 마음을 울려 이 글의 원문을 찾아보려 애쓴 적이 있었다. 찾아보니 음을 붙여 노래하는 부분은 시의 앞부분(1장)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예수의 데레사(대 데레사) 성녀가 쓴 8장으로 구성된 긴 시였다. 음을 흥얼거리며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가는데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어 반복해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의 제목이었다. 단순히 가사의 제일 앞부분인 ‘아무것도 너를’을 제목으로 알고 있었는데, 성녀가 직접 붙인 이 시의 제목은 ‘인내’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신학생 때부터 그 명성을 자주 들어 왔고 교회의 역사에 성덕으로 한 획을 그은 성녀 대 데레사! 너무 큰 인물이었고, 사실 그분의 책이나 자서전을 읽어도 그 깊이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당연한 듯 여겨 왔다. 사제이긴 하지만 세상에 한 다리를 걸치고 사는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먼 대 데레사 성녀, 그래서 나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존재로 여기며 살아왔고, 시에서 고백하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라는 구절을 어쩌면 ‘대 데레사이기 때문에 당연하지.’라고 치부하면서 살아온 데 대한 충격이었다. 시의 제목이 바로 ‘인내’임을 알았을 때,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대 데레사 성녀가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공경을 한다 하면서도 나와는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하는 이러한 태도가 어쩌면 우상숭배, 미신적 공경은 아니었을까?

 

사실 성인 공경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자 은총의 보고이기는 하지만, 교회가 그 자체를 의무화한 적은 없다. 미사 경본의 성인 감사송은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성인 공경의 의미를 알려 준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가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성인 공경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천상 형제들에게 표시한 공경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친교를 명백히 인식함이고, 그러한 순례하는 교회와 천상 교회와의 친교를 의미하는 통공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준다(교회 헌장, 50항 참조).

 

하늘의 모든 성인 성녀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주 하느님께 전구하여 주소서.

 

* 최용감 안젤로 – 광주대교구 신부로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최용감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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