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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21: 천국 닮은 공동체 일궜던 서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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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31 ㅣ No.2091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21) 천국 닮은 공동체 일궜던 서지마을


가난했지만 함께 기도하며 참 행복 누리다

 

 

- 최해성 요한이 교우촌을 이루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던 서지마을 일대의 현 모습. 원주교구는 신앙선조들의 신앙을 본받기 위해 지난해 8월 서지마을 성역화를 계획하고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비로 330-1를 성지로 개발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던 최양업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해성(요한·1811~1839)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신심이 깊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던 최해성. 최양업은 서한에서 “최해성 요한은 천주교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뛰어난 열성을 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권면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한다. 복자 최해성이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더 깊게 만났던 곳이 바로 원주의 서지마을이다. 이곳에서 최해성은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천국을 닮은 공동체를 일궈 나갔다.

 

 

최해성 요한이 하느님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했던 서지마을

 

최해성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 비르지타의 조카이자 황사영(알렉시오)의 처조카다. 충청도 홍주 다래골(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서 살았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해성의 조부가 체포돼 이 지방으로 유배됐고, 이 유배지에서 최해성이 태어났다. 신심이 깊었던 집안 출신인 최해성은 어릴 때부터 교리를 배우며 성장했다.

 

외교인들이 있던 마을에 살았던 최해성은 성인이 된 뒤, 보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의 서지(현 원주시 부론면 손곡 2리)로 이주했다. 그는 이곳에서 작은 교우촌을 이뤄 모든 이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또한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앞장섰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야기해 줬다.

 

그의 행적을 최해성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해들은 최양업은 “선교사가 서지 교우촌에 와서 성사를 베풀 때면 최해성 요한은 말할 수 없는 열심에 불탔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덕행과 깊은 신심으로 최해성은 마을 회장으로 선임됐고 더욱 열심히 신자들을 격려하고 교리를 가르쳤다. 하지만 혹독한 박해의 위협은 최해성도 피해가지 않았다. 1839년 체포된 최해성은 “저는 관장께서 온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하셔도 하느님을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신앙을 지켰다. 스물한 차례나 문초를 당한 최해성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살과 가죽이 터져 창자가 몸밖으로 쏟아졌으며 뼈는 으스러졌다”고 최양업은 전한다. 하지만 모진 고문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1839년 9월 스물여덟의 나이로 순교한다.

 

서지마을에서 신앙의 삶을 이어온 복자 최 비르지타.

 

 

서지마을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 싹을 틔우다

 

서지마을은 최해성뿐 아니라 복자 최 비르지타, 그리고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박 요한 사도의 아내 최 필로메나 등이 신앙의 삶을 이어간 곳이다. 또한 원주본당(현 원동본당)의 리굴로 신부는 1898년 쓴 편지에서 서지마을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교리교사가 신앙 때문에 고초를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최해성이 서지마을에 정착한 이후에도 180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모진 박해를 피해 집과 논, 밭을 버리고 산속 깊은 서지마을로 숨어들었던 신자들. 비록 생활은 곤궁했지만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마음 편히 기도할 수 있었기에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서지마을은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역사적인 공간이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이에 원주교구는 지난해 8월 서지마을 성역화 추진을 계획했다. 그러던 중 서지마을에 살던 부론본당의 한 신자가 자신이 살던 집과 땅을 교구에 기증하며 서지마을 성역화에 힘을 실었다. 또한 원주시와 제천시, 횡성군이 공동으로 서지마을이 포함된 관광 순례길 조성을 계획함에 따라, 2023년 이곳에 ‘최해성 요한 순교자 기념관’이 세워질 예정이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비로 330-1에 위치한 서지마을은 새 단장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현재는 가정집과 미사를 위해 앞마당에 세운 천막이 전부이지만,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미사를 봉헌하며 신자들은 이곳에서 신앙을 이어온 선조들을 기억하고 있다.

 

부론본당 주임 겸 서지마을 주임인 이우갑(베드로) 신부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서지마을 성역화는 다른 무엇보다 그곳에 살았던 신앙선조들의 신앙을 본받기 위한 것이고, 특히 순교 복자들이 품고 살았던 하느님 앞에서의 온전한 비움과 헌신, 그 사랑을 배워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비움을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성지로 조성될 수 있도록 많은 교우분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22년 5월 29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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