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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 안 상징 읽기: 공작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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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9-10 ㅣ No.2881

[교회 안 상징 읽기] 공작의 상징성

 

 


- <동방박사의 경배>, 프라 안젤리코.


공작은 새들 중에서도 단연 아름답고 위엄 있어 보이는 새다. 그래선지 중세기 교회의 회화 작품들과 문헌들에도 종종 등장했고, 교회의 건축물들이며 기물과 용품들에도 장식용 도안이나 문양의 주제로 흔히 채택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한 회화 작품들에는 마구간을 채운 동물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작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서양의 격언 중에는 “공작처럼 자긍심을 가져라!”라는 말도 있거니와, 중세기의 교회에서 공작의 상징성은 분명 이 격언이 말하는 것과 같은 한낱 자긍심이나 자만심 이상의 무엇이었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자연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 세상과 우주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며 섭리와 관련된 나름의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잘 안다. 그런 맥락에서 공작의 상징적 의미 또한 다분히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인지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닐 터다.


공작: 부활, 소생, 불멸의 상징

중세기의 가톨릭 신자들은 공작을 보면서 먼저 부활, 쇄신, 불멸을 가리키는 상징물로 이해했다. 그 근거는 공작의 살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설화에서 유래한다. 그러기에 3세기라는 이른 시기에 이미 로마의 지하묘지인 카타콤바 벽들에는 그러한 염원을 담아 그리고 제작한 공작 그림들이며 모자이크들이 자리 잡았다. 이는 곧 공작이 이승에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육신에서 영광스럽게 하늘나라에 올림을 받아서 죽지 않으며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영적 생명으로 변화할 것임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말해 준다.

- 공작새.


또한 중세기의 동물 우화집에 따르면, 공작새는 해마다 털갈이를 하는데, 묵은 깃털들이 빠진 자리에서는 더욱 화려한 깃털들이 새롭게 나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공작을 소생의 표징이 되게 했고, 그러기에 공작의 깃털은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에 교회를 장식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게 되었다. 또한 소생, 곧 ‘다시 살아남’의 표징으로서, 공작은 동방과 서방의 오래된 성당들의 세례대를 장식하는 모지이크나 그림들에 곧잘 등장하게 되었다.


공작: 그리스도, 하느님, 교회, 지복직관의 상징

한편, 예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공작이 죽은 뒤에도 그 살은 썩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서 공작을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회화 작품들과 모자이크들에 공작 형상이 종종 사용되곤 했다.

그리고 공작이 꼬리 깃털을 펼칠 때면, 마치 수백 개의 눈[目]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 점 때문에 공작의 꼬리 깃털을 보면 온갖 행위들과 모든 사람을 살펴보시는 분, 곧 온갖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연상하게 되었고, 그것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정의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나아가, 밤이고 낮이고 끊임없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자기 자녀들을 보살피는 가톨릭교회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공작의 꼬리 깃털에 있는 눈 모양의 문양은 하느님의 진면목을 본래 그대로 인식하고 알아뵐 수 있는, 이를테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성인들만이 누린다는 지복직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상징성은 중세기의 묘지들에 설치된 조각품들에 흔히 공작 문양을 새겨 넣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 공작 문양을 이용한 교회 장식물.


공작: 악령 퇴치, 부패 방지, 해독과 살균 작용

동물 우화집은 공작이 뱀의 독을 삼키고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며, 따라서 뱀을 물리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독을 삼킨 다음에는 그 독을 이용하여 더욱 화려한 깃털을 만든다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공작의 피로 악령을 쫓아낼 수 있고, 공작의 깃털과 살로 뱀에 물려 생긴 상처와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저서 ‘신국론’에서 공작의 살의 방부제와 소독제로서 효능을 굳게 믿어 마지않았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아닌 그 누가 공작의 살에 방부제 효능을 부여했겠는가? 이 효능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타고에서 이런 종류의 새를 조리한 음식이 내 앞에 놓였고, 나는 가슴 부위의 살을 적당량 도려내었다. 나는 그것을 보관하도록 지시했다. 여느 고기 같았으면 이미 악취를 풍길 정도가 되고도 남았을 만큼 여러 날이 지난 뒤에 그것이 다시 내 앞에 놓였는데, 거기에서는 전혀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30일 넘게 놓아두었을 때도 여전히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1년 뒤에도 살이 약간 오그라들고 건조해졌다는 점을 빼고는 여전히 똑같았다.”(21권 4장)

이에 더해 공작은 독성이 있는 풀을 먹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은 공작의 깃털이 썩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멸불사의 상징이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교회 건축물에 이용된 공작문양.


윤리적이고 우화적인 교훈

중세의 동물 우화집은 이색적이고도 아름다운 새인 공작에 대한 윤리적이고 우화적인 교훈도 전해 준다. 말하자면, 공작의 특징적인 표상들 중 하나가 자만심(또는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자만심이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분투노력하는 가톨릭 신자에게 소중한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공작의 발이 못생긴 편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못생긴 발 때문에 공작의 자존심이 매우 손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공작은 단 한 가지 흠을 빼고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위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러다가도 어쩌다 못생긴 발이 눈에 들어올 때면, 번번이 몹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동물 우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서 공작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자신의 영적인 불완전성을 두고 안타까워하고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공작의 살과 울음소리와 눈 문양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도 있는데, 그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공작의 살은 단단하고 질긴데, 이는 웬만해서는 욕망의 격정에 흔들리지 않는 교사(가르치는 이)들의 단호한 마음을 상징한다. 공작의 울음소리는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귀에 거슬리는데, 이 소리는 죄인들에게 그들이 장차 지옥에서 겪게 될 종말을 경고하는 설교자의 준엄한 목소리와도 같다. 공작의 꼬리 깃털에는 눈 모양의 문양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언젠가 세상 끝날에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위기와 위험을 내다볼 줄 아는 교사들의 예지력을 의미한다.

공작은 칭찬을 받으면 꼬리 깃털을 치켜세우는데, 이는 칭찬을 받는 데서 오는 교만함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덧없는 허영심을 드러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작의 상징성에 대해 성찰할 때, 우리는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했듯이, 자연과 그 안의 모든 피조물, 온갖 생물들, 사물들에서 하느님의 자취와 섭리를 발견하고자 애쓰도록 초대받는 것이라고 하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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