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현대사회의 극단적 혐오 문제 그리고 종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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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20 ㅣ No.1858

[다시 보는 세상] 현대사회의 극단적 혐오 문제 그리고 종교의 역할

 

 

‘여혐, 남혐’이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여성 혐오, 남성 혐오를 뜻하는 말로, 최근에도 여러 사안에서 이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굳이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일에 대해서도 자기들 기준에서 여혐-남혐의 틀에 맞추어 문제를 극단적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이 틀에 갇히게 되면 애당초 일의 본질은 모호해지고 단순 강경한 여성 혐오, 남성 혐오 감정만 부각됩니다.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뿐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에서 혐오 문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인종 혐오, 성 소수자 혐오, 노인 혐오, 정치적 혐오, 종교적 혐오 등 여러 형태의 혐오 문제로 인해 현대 한국 사회는 분열되고 있습니다.

 

혐오 문제의 심각성은 현재 혐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싫다, 마음에 안 든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혐오라는 말에는 ‘구토를 유발하는 싫은 감정’, ‘증오 혹은 적대’,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토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성적 생각을 넘어 내 몸 자체가 보여주는 거부 반응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극단적 거부와 배제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혐오 문제가 빈번하게 드러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조화와 공존)의 의식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전통적 시대에도 특정 대상을 향한 구분 짓기나 차별은 존재했습니다.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때에도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공생 또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런 전통 사회와 비교해보면 현대사회의 혐오는 상대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 배제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집니다. 현대사회 혐오는 단순한 구분 짓기가 아니라 상대방을 잘못된 것, 틀린 것, 결코 나와 함께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제거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 혐오 문제의 또 하나 특징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맹목적이라는 점입니다.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원인이 구체적이고 명확하다면 그나마 원인의 해소를 통해 혐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이른바 ‘묻지마 혐오’는 뿌리 깊은 감정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 해결방안이 쉽지 않습니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만큼 맹목적인 경향은 더 강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혐오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혐오 대상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근거 없음을 해명해주지만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 한국 사회 혐오 현상의 원인을 근원적인 불만과 분노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대사회와 삶 전반에 걸쳐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로 분출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현대사회 혐오 문제의 위험성은 SNS의 활성화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면서 정보의 확산이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SNS에 대한 의존도와 영향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혐오 현상 역시 SNS를 통해 빠르고 넓게 공유되곤 한다는 점에서 심각성과 위험성이 큽니다. 특정 대상을 향한 개인적이거나 일부 사람들의 혐오 감정이 무분별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고 극단적으로는 대규모의 집단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혐오 문제는 혐오 피해자들의 정신적·심리적 상처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의 갈등과 혼란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원적인 대처와 치유가 절실합니다. 그동안 혐오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주로 사회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이 이루어졌습니다. 혐오를 금지하는 법률적 장치를 제정하고, 혐오를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러한 접근 역시 의미 있지만 현대의 혐오 현상이 뿌리 깊은 정서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만큼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현실 삶의 문제에 즉각적인 해결 방안을 제공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삶의 문제를 근원적인 차원에서 성찰하고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해결로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 종교만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혐오 문제의 근원적 해결과 치유는 종교가 적합하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일관되게 조화와 공존 그리고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고, 이러한 가치를 현실 삶 안에 구현하기 위한 핵심 원리와 실천 체계를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성경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든 소외되고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모두를 한 형제 공동체로 배려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누구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그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됩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아올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우리일 수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종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실 사회와 삶의 혼란 속에 과연 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심각한 문제 제기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도 여러 의미 있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종교 밖의 사람들 사이에는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현실 삶 속의 종교 의미와 역할을 세상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혐오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종교가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종교다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수원주보 4-5면, 오지섭 사도요한(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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