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을 닮은 여인 라헬, 그리스도와의 첫 혼인 계약 체결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0 ㅣ No.747

[레지오 영성] 성모님을 닮은 여인 라헬, 그리스도와의 첫 혼인 계약 체결자

 

 

계속 이 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성모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말에 의아해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않으면 교회의 모델이요, 구원의 모델이 되실 수 없습니다. 구원은 신약의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하와를 창조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새 하와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성모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구원된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모 마리아를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새 하와이시고 교회의 어머니”(975항)라고 칭합니다. 또한 “새 계약이 맺어지는 시각에,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께서는 ‘새 하와’로, ‘여인’으로, ‘살아 있는 이들의 참어머니’로 받아들여진다.”(‘가톨릭교회교리서’ 2618항)라고도 말합니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께서 교회의 모델이시기에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리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구약의 아담의 협조자로 탄생한 하와가 신약에서는 성모 마리아, 혹은 교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와 교회는 그리스도와 혼인한 신부입니다. 그런데 혼인은 분명 남녀 사이의 계약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쌍방의 합의에 따른 계약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첫 번째 계약을 맺으신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모 마리아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응답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혼인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계약은 쌍방의 의무를 동반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그 돈을 받아 자녀를 키웁니다. 남자가 돈을 벌기 싫다고 하던가, 아내가 자녀를 낳기를 원치 않으면 그 혼인 계약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남편이 원하는 아이를 낳고 키워줄 때 혼인 계약이 완성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첫 번째 계약을 맺으신 분은 성모 마리아

 

2000년 중국 산둥성에서 의료 사고로 뇌사상태가 된 아내를 극진히 간호해 8년 만에 깨어나게 한 일이 있습니다. 남편 장위화 씨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아내를 집으로 데려온 뒤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아내는 8년 만에 기적적으로 눈을 뜨고 의식을 회복합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2008년 장씨의 아내는 임신하게 됩니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장씨의 아내는 “남편이 죽어있는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이것입니다.”라고 하며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습니다. 다행히 장씨의 아내는 건강한 딸을 출산했고 산모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장씨는 아내의 생명을 책임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벌어주기를 포기했다거나(이 사례에서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기를 포기했다거나), 아내가 남편의 뜻에 따라 자녀를 낳기를 원치 않았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계 단절은 계약 불이행의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혼인하는 교회가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를 낳고 당신이 주시는 은총으로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이 역할을 한 새로운 계약의 첫 그리스도 신부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첫 신부가 된 성모 마리아의 모델이 구약의 ‘라헬’입니다.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좋아했습니다. 라헬의 눈에 생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아의 눈은 생기가 없었지만, 라헬은 몸매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창세 29,17)

 

“눈의 생기”는 무엇을 나타낼까요? 혼인 계약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성령의 은총’입니다. 성령은 혼인 계약을 충실히 지킬 힘과 의지입니다. 레아가 성령 없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키려 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면, 라헬은 성령으로 계약을 맺으려는 신약의 성모 마리아와 교회를 상징합니다. 새로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맺는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가득 찬 새 라헬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가브리엘 천사의 이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로써 성령과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03항 참조). 성모 마리아께서 은총이 가득하셨다는 말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계약을 맺을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말합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와 혼인하려고 7년을 일했습니다. 하지만 장인 라반은 라헬 대신 레아를 아내로 줍니다. 이는 성령으로 맺어지는 혼인은 반드시 문자로 맺어지는 옛 계약을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사라의 종 하갈과의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다음에야 사라에게서 이사악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랑한 여인은 하갈이 아니라 사라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에게서 낳은 이사악이 상속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새 하와이시고 교회의 어머니”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이 하갈과 맺은 계약이 ‘옛 계약’이고 사라와 맺은 계약이 ‘새 계약’이라고 말합니다(갈라 4,21-31 참조). 야곱과 레아, 야곱과 라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사랑한 사람은 라헬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라헬이 낳은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라헬은 요셉과 벤야민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벤야민은 ‘오른쪽의 아들’이란 뜻인데, 마지막에 구원될 새로운 계약의 백성인 교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낳았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첫 계약을 완수하셨습니다. 라헬은 벤야민을 낳는 중에 죽었지만, 성모님은 영혼이 예리한 칼에 찔리셨습니다(루카 2,35 참조). 신랑이 신부와 자녀를 위해 피를 흘렸으니, 신부도 신랑과 자녀를 위해 피를 흘린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는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새 하와이시고 교회의 어머니”(‘가톨릭교회교리서’, 975항)가 되십니다.

 

혼인 계약은 ‘피’의 계약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피를 “계약의 피”라고 하십니다(마태 26, 27-28 참조).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피’를 들고 계약을 맺으러 오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모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녀들을 낳을 것을 약속하고 세상으로 파견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혼인 계약상 의무로 성모 마리아처럼 세상에서 하느님 자녀를 낳는 새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5월호,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86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