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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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20 ㅣ No.733

[허영엽 신부의 ‘나눔’] 글을 쓴다는 것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외국으로 이민간 한 청년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안녕! 오랜만이야.”

 

“네 신부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지금 모두 다 그렇지 뭐~~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덕분에(?) 모든 게 정지상태야. 그리고 지난 봄에도 청년 탈출기 연수를 못했고 가을에는 청년 탈출기 강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결국 거리두기 단계조정으로 가을학기도 못했지만)

 

그 청년은 탈출기 성서연수도 했고 봉사도 같이 했던 친구였어요.

 

“신부님! 언택트 아시죠?”

“비대면?….”

 

“신부님은 언택트 상황에서도 일하셔아죠?”

“………”

 

“제가 신부님을 처음 뵌 것은 성서연수때가 아니라 D신문에서 글을 통해서였어요.”

“아? 그래….”

 

“주요 일간지뿐 아니라 잡지 등에서도 글을 많이 쓰셨더라고요. 글을 통해 신부님을 알게 되었죠.”

“그랬구나……”

 

“그런데 요즘 같은 시기엔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를 사용하셔야죠. 저는 신부님의 탈렌트는 글을 쓰시는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엔 글을 더 많이 쓰셔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시면 신부님 직무유기(?) 아닌가요?ㅎㅎ”

“그러네~~ 내가 잘못했네. ㅎㅎ”

 

난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창피했어요. 그 청년은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천사 같았어요.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준 인물, 그래서 나는 단상들을 페이스북에 쓰게 되었어요.

 

나는 대신학교 1학년 때부터 학보사 기자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우리 반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 친구들의 글을 보면 무척 부러웠어요. 학보사 선배가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업이 없는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있는데 나는 재미있는 수필, 소설 등을 주구장창 많이 읽었어요.

 

학보사에서 제일 힘든 일은 글을 청탁하는 거였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난 나중에 원고청탁이 들어오면(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ㅎㅎ) 무조건 써줄 거야’라고 다짐했죠. 어쨌든 나는 자의든 타의든 그때부터 글을 계속 쓰게 되었어요.

 

 

글쓰기를 통해 의외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돼

 

나는 본래 성격이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의외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참 신비로운 일이죠. 몇 년 전 그리스에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오신 분이 제 이름을 듣고는 아주 반갑게 인사하셨어요. 처음 보는 분인데도 내 글을 많이 읽었다며 그분은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친밀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글을 통해서도 만남이 이루어지는구나.

 

중앙선데이에 한동안 칼럼을 기고할 때였어요. 어느 날 제게 메일이 왔어요.

 

“허신부님. 칼럼을 읽고 한 번도 못 뵌 분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새벽 일찍 시차로 잠이 깨어 그제 상경하면서 읽다가 글이 좋아서 가져온 중앙선데이의 글을 다시 읽고 마침 메일주소가 있어 메일을 보냅니다. (중략) 나이가 들어서인지 신부님 말씀처럼 항상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버릇을 키워야 하겠다고 자주 자성을 합니다. 세살 먹은 아이가 아는 것임에도 여든 된 노인이 실천하기 어려운 게 많다고 하는데 저도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말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신 신부님에게 감사의 메일 올립니다. 항상 평강하시길 빕니다.”

 

나도 좋은 글이나 영화를 보면 감사의 메일이나 편지를 쓰고 싶은데 사실 그게 잘 안 되잖아요. 우선 이렇게 메일을 보내주신 성의에 감사의 마음이 들어 저도 답장을 보냈어요. 알고 보니 그분은 당시 국회 부의장이셨어요. 그 후에도 메일을 주고받았어요. 그리고 몇 년 후 나중에 국회의장 권한대행을 하실 때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게 칼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일기를 써보세요. 그 글을 통해 삶을 묵상하게 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론 아주 힘든 일이죠. 특히 글을 쓰다가 딱 막혀 진도(?)가 안 나갈 때면 무척 답답해져요. 만약 글을 쓰는 일이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글은 나 자신의 분신이며 또 다른 자아인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의 성찰과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라면 너무 거창할 것 같나요.

 

글을 쓴다는 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글을 써서 누구에게 보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내심엔 상처받기 싫은 인간 본성의 방어적 행동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내 생각이 어떤 단어와 만나 생명력이 불어 넣어질 때 그건 창조의 작업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창조작업은 글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봐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일기를 한번 다시 써보시라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글 안에서 나의 삶을 묵상하게 되고 나의 삶의 소중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통해 가끔은 교실에서도 배울 수 없는 진리를 배울 수 있고, 더 중요한 건 나의 삶에서 솔직한 모습 기쁨과 고통, 행복과 슬픔조차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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