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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은 옆집에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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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940

[경향 돋보기 -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은 옆집에도 산다

 

 

성덕의 소명

 

성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시복, 시성된 성인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자 그분들이 생전에 이루신 기적이나 봉사, 비범한 애덕 행위 등을 강조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인들에게는 평범한 우리와 다른 어떤 특수한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성인들이나 가졌을 법한 특수한 유전자는 바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은총 안에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덕의 길을 걷기 위한 성화은총도 받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고유한 특정 형질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므로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자 당신의 고유한 유전자를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성화은총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로부터 특수한 유전자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성화은총을 통해 성덕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1베드 1,16 참조).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덕을 완성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성인들로부터 적잖은 거리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분들은 평범한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분, 마치 처음부터 전혀 다르게 태어나고 예정된 분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한 사람이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그 형질이 발현해서 성인(成人)이 되기까지는 거의 20년이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하느님의 유전자를 받아 그 거룩함이 완전히 발현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사실 성인들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을 향해 삶의 방항을 틀고(회개) 하느님을 믿는 가운데 하느님만 바라며 수십 년 동안 그분 안에서 꾸준히 성덕의 길을 걸었습니다.

 

성덕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일상의 여정을 충실히 사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분들은 그 여정의 결과로 하느님과 깊은 인격적인 사랑의 일치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온전히 그분들 안에 임하게 되었고, 그분들의 삶을 통해 이룩된 기적, 봉사, 위대한 애덕 등과 함께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인들의 위대하심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드리고 전구를 청하기도 하지만, 그분들 또한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었음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러한 성덕에 이르렀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로써 용기를 얻어, 우리도 분발하여 성덕으로 나아가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인 공경의 의미일 것입니다.

 

 

성덕의 핵심

 

그러면 성덕을 이루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기적을 행하고, 여러 가지 언어와 천사의 언어를 말하고, 예언을 하며, 모든 신비를 꿰뚫어 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그저 맹목적으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데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은 분명 훌륭하지만, 사도 바오로는 1코린 13,1-3에서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룩함’이란 우리에게는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그분과의 일치를 통하여 그분의 거룩함을 덧입어야 하는데, 오직 사랑만이 주님과의 인격적 일치를 이루게 해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닮아 그분의 성덕을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위대한 일 자체는 우리가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하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조건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 참된 일치를 이룰 때는 사랑할 때입니다. 상대방의 능력이나 선물 등을 통해서는 사랑의 일치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듯 오직 하느님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만 성덕에 이를 수 있기에, 성덕의 핵심은 사랑에 있습니다.

 

 

어떻게 성인이 옆집에도 사는가

 

그렇다면 성덕의 핵심을 이루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다시 사도 바오로의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성덕의 핵심을 이루는 사랑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왜 성인이 옆집에 사는지, 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에 대한 시복 조사가 시작됐을 당시, 성녀의 언니인 레오니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데레사는 특별히 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특징을 특별한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이웃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老)수도자가 있습니다. 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에게서, 저는 투쟁 교회의 성덕을 봅니다. … 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또한, 한국의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이 사실을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평신도로서 가난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의 일에 적극적이었으며 성심껏 애덕을 실천한 분들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 즉 성덕의 핵심인 사랑을 열심히 실천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 성녀도 말했듯이(「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항 참조), 칠흑같이 가장 어두운 밤인 박해 시대에 순교로써 그분들의 성덕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덕은 일상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특별히 1코린 13,4-7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사랑의 특징인 인내와 친절, 겸손과 호의, 진실과 관대함, 이타심과 용서, 믿음, 희망 등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웃을 보면서, 우리는 이 세상과는 구분되는 그 무엇을 느낍니다. 곧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행하는 사랑의 덕은 하느님이신 사랑의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곧 성령의 열매(갈라 5,22-23)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시는 분이시기에, 성령께서 계신 곳에는 성부와 성자께서도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일치하는 그만큼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으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만큼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보이는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은 우리가 놓인 상황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상도(日常道)를 통하여 우리를 성덕으로 부르십니다.

 

 

성화에 동참할 수 있는 일상의 실천 방안

 

그러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상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일까요? 성인들이 그랬듯이 먼지 하느님을 생의 최종 목적으로 삼고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나 자신과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 첫걸음은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만나야 합니다. 곧 기도해야 합니다. 성덕이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일치에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만나려면 시간을 내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만나기 싫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만나야 그분께서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때 성경이야말로 그분께서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루카 10,39의 마리아처럼, 성경을 통해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독백으로 끝내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듣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려면 먼저 성모님께 그 덕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가운데 그분과 사랑의 관계를 돈독히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계속해야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주님과 함께한다면, 그분께서는 어떻게 해야 이웃을 올바로 사랑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할 힘도 주실 것입니다. 마르타처럼 그분을 배제한 채 내 방식대로만 이웃을 사랑하려 하면,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이웃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자기만족을 좇아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먼저 주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만남을 계속해 나간다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성덕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정인숙 젬마 - 평신도 신학자.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10년, 서울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15년간 신학적 인간학, 영성 신학 등을 가르쳤다. 공저로 「이 시대에 다시 만난 여성 신비가들」, 역서로 「순례 영성」, 「성서 안에서의 영적 체험」 등이 있다. 현재 가르멜영성문화센터에서 강의하며 「성녀 소화 데레사 전집」을 번역 중이다.

 

[경향잡지, 2020년 10월호, 정인숙 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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