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일)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성모님을 세상에 모셔오는 파스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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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3 ㅣ No.804

[길 위의 사람들] 성모님을 세상에 모셔오는 파스카의 삶

 

 

- 성모발현성지 녹(Knock)의 성모상.

 

 

세상에 성모님을 모셔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레지오 마리애 교본 5장) 특별히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동행하시면서 겪었던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신뢰 안에서 이 세상 여정을 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의 구원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을 이 세상으로 모셔오는 일은 하느님 사랑에 뿌리를 둔 충실성으로 기도하고, 기도에서 흘러넘치는 은총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실현됩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존재 자체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성모님을 알리고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올 수 있습니다.

 

‘자비로운 모후(Our Lady of Mercy)’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의 첫 주회는 1921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 전야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프란시스 거리에 있는 마이러 하우스(Myra House)에서 있었습니다. 둘이나 셋이 모여 드리는 기도는 언제나 힘이 있습니다. 작은 기도 모임이 전 세계로 퍼져 큰 모임을 이룬 것을 보면 성모님을 이 세상으로 모셔오는 신심 단체, ‘레지오 마리애’는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평화로운 자연의 나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만난 연만하신 분들은 여전히 프랭크 더프를 자랑스럽게 기억하며 레지오 마리애에 열심이셨습니다. 그분들께 레지오 마리애는 삶의 자리에서 묵주기도를 통해 교회에 협력하면서 자신의 성화와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성모님은 특별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성모 성지인 녹(Knock)을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성모님이 요셉 성인 그리고 사도 요한과 함께 나타나셨는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것이 녹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특징입니다. 아마도 수 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지내면서 종교탄압과 혹독한 박해, 그리고 수년간 있었던 감자 대기근으로 인구의 절반이 굶어 죽거나 국외로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매일 밤 가족이 모여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을 부르며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하여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침묵 중에 발현하셨을 것입니다. 상대의 고통을 공감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말없이 그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신앙의 모든 것, 사랑의 고백, 희망의 토대

 

우리 삶의 동반자아신 성모님께서는 지금도 가정의 크고 작은 어려움, 크게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기아, 전쟁 등 고통 중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매일의 삶 안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도록 격려하십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요? 그래서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께서도 묵주기도를 ‘은총의 면류관’이라고 하시면서 신앙의 모든 것, 사랑의 고백, 희망의 토대라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악에 맞서 모든 것을 승리로 이끄는 묵주기도는 작은 영혼들이 만드는 승리의 화관입니다. 이 은혜로운 기도를 통해 성모님을 우리 삶의 현장으로 모셔올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캐나다 사람과 결혼한 후 서울에서 사는 필리핀 사람입니다. 그녀는 고향 민데나오 다바오시의 여행자 리서치 회사에서 현장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다 남편을 만났습니다. 2013년 다바오시에 여행 온 레스는 여행자 리서치를 위해 다가온 그레이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신앙이 돈독한 두 사람은 2015년 성모승천대축일에 혼배미사를 올렸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이 몸에 밴 그레이스는 어려서부터 묵주기도를 즐겨 바치면서 언젠가는 수녀원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꽃길만 걸을 것 같던 신혼 생활은 2015년 12월17일, 남편과 함께 인천공항에 착륙하면서 처음 느낀 추위만큼이나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1년간의 결혼생활은 어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기쁨은 잠깐, 전혀 다른 문화의 타국에서 외국인과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지만 아쉬움과 향수를 달랠 수 없어 우울감만 쌓였습니다. 결혼에 대한 이상은 산산이 부서졌고, 쉬이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그레이스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2017년 5월, 중환자실로 실려 간 남편과 함께 25일간 병원에서 지내는 것은 그레이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의사는 대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남편을 집중치료실로 보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 감금된 듯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어 묵주를 꼭 잡고 병원 경당으로 가 성모상 앞에 엎디어 한참을 울부짖었습니다. ‘괜찮아질 거란다.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미소를 보고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기도 중에 그레이스는 성모님의 현존을 느꼈고, 그 이후 무겁기만 했던 어깨가 가벼웠습니다. 그레이스와 동행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강인함과 평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시 영어 독서단을 동반했던 저는 단원들과 레스의 병문안을 가서 처음 그레이스를 만났습니다. 그레이스는 수도자인 저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남편이 퇴원한 후, 그레이스는 저에게 연락해서 청소도 괜찮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마침 네팔에 가야 할 일이 있었던 저는 그레이스와 영어 연습도 할 겸 제가 있는 곳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레이스는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는 저와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레이스는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한국 생활도 그렇지만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끈끈했던 그레이스에게 남편하고만 지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높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레이스는 때로 집을 나와 지내기도 했던 번민의 시간을 눈물로 토로했습니다. 그레이스는 결혼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을 맘껏 풀어냈습니다.

 

차츰 안정을 찾을 즈음, 우리는 ‘묵주기도’와 ‘하느님 자비의 기도’에 의탁해 기도했습니다. 함께 묵주기도를 할 때의 그 평화로운 느낌, 처음에 가졌던 어둠이 가시면서 차츰 광명으로 인도하시는 어머니의 품으로 우리를 데려가시는 따뜻함으로 만남이 채워지면서 그레이스는 서서히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지내고 저는 네팔로 갔습니다.

 

이듬해 새 학기에 그레이스는 전보다 환한 얼굴로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레이스는 매월 자신의 삶을 성찰한 후 고해성사를 보고, 매일의 묵주기도를 통해 결혼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주말 피정에서는 남편과 속내를 나누면서 가정의 중심에 예수님과 성모님을 모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녁 식사 후 함께 앉아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어 두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이은주 마리헬렌 수녀(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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