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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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대건 ·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 복된 해를 이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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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19 ㅣ No.2044

[특집 – 김대건 ·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복된 해를 이어가며

 

 

희년(禧年)이 끝나고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며 희년을 잘 살았는지 반성해봅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는 주제로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과 최양업 신부님을 기억하는 올 한해에 그분들이 살아생전 보여주었던 신앙의 증거와 성무 활동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어려운 마카오 유학 생활 중에 김대건 소년이 성장통을 극복해가며 청년 신학생이 되어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고 신덕(信德)과 용덕(勇德)을 키워나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만이 가진 과감성, 그것이 때로는 스승 신부님들에게는 위험한 모험으로 보였을지라도, 나룻배를 몰고 서해를 건너며 바닷길을 개척했던 조선의 첫 사제! 옥중 생활에서, 새남터 형장에서 보여주었던 신앙의 용사로서의 모습!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하고 믿음을 증거하고, “영원한 생명이 내게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합니다.”라고 형벌의 칼 앞에서 공표했던 김대건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우리는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는 질문에 어떻게 응답했는지요? 혹시 코로나19를 핑계로 “저는 잠시 쉬는 중입니다.” “저는 냉담 중입니다.” “온라인이 훨씬 편합니다.”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동갑내기 최양업은 첫 번째로 부르심 받은 신학생으로 학생 시절과 사제생활 내내 스승과 동료 사제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규칙적이고 바른 신학생, 성적이 우수하고 모범적인 신학생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베르뇌 주교님으로부터는 “12년 동안 끊임없이 그는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철저하게 지키며 모범을 보였고, 구령사업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1861년 9월 4일 베르뇌 주교의 서한)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최양업 신부 같은 이가 10명만 되면 조선 팔도가 다 복음화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그분의 겸손함에서 드러나는 성실한 성무 활동으로 산골 교우촌을 방문하며, ‘찾아다니는 사목’을 하였습니다. 한여름 휴식 시간에는 다블뤼 주교님의 작업을 도와 교리서와 기도서의 한글 번역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교우들의 삶과 영혼을 돌보시다가 길 위에서 선종하신 사제입니다.

 

그렇게 한국 교회에는 김대건 성인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 두 기둥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희년을 지내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복된 한 해의 기쁨과 구원을 한 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삶으로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뜻에 있습니다. 희년은 복된 해, 기쁨의 해, 대사(大赦)의 해, 곧 용서와 구원의 해입니다. 희년은 끝났지만 두 분이 남기신 피의 순교와 땀의 순교의 자취는 피땀 어린 정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말씀(言)이 사람이 되신(成) 정성된(誠) 역사를 되돌아보며 희년(禧年)을 다시 살아갑시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1846년 6월 8일 김대건의 옥중 편지)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서울주보 4면,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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