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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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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13 ㅣ No.679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상)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가 설립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설립자 선종완 신부(맨 왼쪽)와 수녀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제공.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정복례 수녀)는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수녀회’다.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가 설립한 수녀회로, 삶의 중심에 말씀을 두고 말씀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1915년 8월 8일 강원도에서 태어난 선 신부는 자신의 삶을 말씀으로 살았다.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부모의 기도 생활과 전교 활동을 보며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의 싹을 틔웠고, 성당을 놀이터와 배움터로 삼으며 성장했다. 성경 연구에 기초가 되는 외국어 습득을 위해 열성을 다했고, 1941년 부제품을 받을 당시부터 이미 성서 연구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듬해 사제품을 받고 1945년 경성천주공교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성서학 교수로 임명된 그는 1948년 10월부터 4년 가까이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성경을 공부했고, 귀국해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복직했다. 일생을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친 그는 한국교회 최초로 구약 성경을 단독 번역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성서 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될 당시 가톨릭 측 구약 위원으로서 공동번역에 혼신을 다하는 등 늘 말씀과 함께했다.

 

이렇게 말씀을 따르고 말씀을 알린 그는 그 열정을 토대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다. 말씀을 학문으로만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1960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수녀회를 창설한 것이다.

 

유산으로 받은 땅을 팔고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에 수도원 부지를 마련한지 2년 만인 설립 당일, 선 신부의 성경 번역 작업을 돕던 자매 4명이 첫 지원자로 입회했고, 이는 ‘서울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영보 수녀회’(성모영보수녀회)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뗐다.

 

철저한 기도와 노동의 관상적 반봉쇄 공동체로 시작한 수녀회는 1976년 성 라자로 마을에 진출하며 사회복지 사도직에 투신하는 등 현재는 관상적 활동 수도회로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소속 수도회로 출발한 수녀회는 교구 신설 등으로 1961년 인천교구, 1963년 수원교구 소속 수도회가 됐고, 1969년 8월 22일 수원교구에서 정식으로 인가받았다.

 

명칭은 2011년 회헌을 개정하면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로 바뀌었다. 본원은 1967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로, 1982년 과천면 문원리로 두 차례 이동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별히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수녀회를 설립한 데에 대해 선 신부는 성령의 이끄심임을 강조했다. 책 「선종완」에는 그와 동료 사제 오기순 신부의 대화가 나오는데, 선 신부는 수녀회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서기에 앞서 하느님 뜻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오 신부에게 부탁했다.

 

얼마 뒤 오 신부를 찾아온 선 신부는 “성령께서 이루시려는 바를 깨달았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렇게 하느님 부르심에 적극 응답한 결과 지금까지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말씀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1월 14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중)


가난과 겸손·기도와 노동의 삶 실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수녀가 성경을 높이 들어 보이고 있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제공.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가 성령의 이끄심으로 설립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정복례 수녀)는 ‘하느님 말씀’을 카리스마로 안고 있다.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수녀회를 만들고 싶다’는 성령의 인도로 선 신부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고, 그 후 수녀들은 현재까지 60년 넘는 세월 동안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말씀의 증거자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수녀들은 나자렛 성가정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성모 영보’ 즉 가브리엘 천사에게 자신이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 곧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는데, 이에 성모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하고 온전히 순명하고 봉사했다. 성 요셉 역시 말씀이신 예수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며 그를 보호·양육하고 기도와 노동을 통해 말씀의 봉사자로 헌신했는데, 이처럼 말씀을 중심에 놓고 말씀에 봉사하는 삶을 산 나자렛 성가정을 수녀들은 본받고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을 따라 사는 수녀회의 영성은 ‘가난과 겸손(순명), 기도와 노동의 삶’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이들로, 수녀들은 성경을 묵상하고 이를 가난과 겸손(순명), 기도와 노동의 삶을 통해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녀들은 철저히 청빈의 삶을 살고 있다. 말뿐만이 아니라 진짜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동참하고 그들과 좋은 이웃이 돼 영적 풍요로움을 성장시켜 이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다.

 

이들은 겸손과 순명의 삶도 살고 있는데, 이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명한 예수님의 겸손과 온전한 신뢰와 순명으로 말씀을 몸과 마음에 받아들여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낳아 주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수녀들은 모든 순간 자신 안에 말씀을 잉태하고 낳아 성장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수녀들은 성 요셉이 보여 준 기도와 노동의 삶도 실천하고 있다. 관상적 활동 수도회인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마음의 호흡이며 생명인 기도를 끊임없이 하고, 노동을 통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돼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수녀회 영성과 관련해 선 신부는 “항상 마음을 합심하여 어려움을 잘 참고 하느님 사랑으로 모였으니까 여러 모든 고통을 많이 이겨 내야 된다”면서 “끝까지 겸손하며 가난해야 되고 하느님 사랑으로 남에게 봉사하며 서로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겸손해야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또 “그리스도 지체의 심장인 우리는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며 수도자들은 극기와 희생·보속을 위해서도 노동이 꼭 필요합니다” 등의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선 신부는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살아가십시오”라고 늘 당부했고, 수녀들은 지금까지도 이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말씀을 중심에 두며 이를 증거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1월 21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하)


6개 교구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돌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수녀가 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미술 작업을 돕고 있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제공.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정복례 수녀)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도와 노동의 관상적 반봉쇄 공동체로 출발한 수녀회는 지금은 관상적 활동 수도회로서, ‘가난과 겸손(순명), 기도와 노동의 삶’이라는 영성을 살고 있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가 수녀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와 교류하며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어린이 주일 학교를 운영하면서부터다. 1968년 어렵사리 피정 집을 마련해 운영하면서 수녀들은 복음을 전했고, 양계장에서 키운 닭을 요리해 피정 집 손님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활동하며 피정 집은 복음화 현장이 됐다. 이 시기 수녀회 설립자 선종완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아이가 자라서 수녀회에 입회하기도 했다.

 

1976년 성라자로마을에 진출하며 수녀들은 본격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회복지 사도직에 투신했다. 성라자로마을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한센인들에게 사랑을 전했고, 살레시오청소년센터 등에서는 청소년들의 따뜻한 어머니가 돼 줬으며, 공소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농촌 신자들과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등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예수님을 사랑하듯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소외된, 복음이 간절한 이들을 돌봤다.

 

나자렛 성가정의 삶을 따라 사는 수녀회는 작은 일, 눈에 띄지 않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복음을 증거하지만, 그동안 수녀들이 낳은 결실은 결코 작지 않았다. 1960년 설립 당시 4명이었던 회원 수는 현재 157명으로 60여 년간 40배 가까이 증가했고, 활동 영역 역시 국내외로 크게 범위를 넓혔다. 수원·인천·원주·전주·광주·대전 등 6개 교구에서 현재 수녀들은 기도, 피정 집 운영, 사회 복지·생태 사도직 활동 등을 통해 노인·장애인 등 이웃과 함께하고 있고, 멕시코와 로마 등 해외에서도 애덕을 실천하고 있다.

 

수도 생활에 전념하도록 수녀들이 본당 사도직은 하지 않길 바랐던 선 신부 뜻에 따라 수녀들은 지금도 본당 사도직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선 신부 출신 본당인 원주 용소막본당에서는 사도직 활동과 선 신부 유물관 운영 등을 하고 있다. 전주교구 익산 상지원 공소와 광주대교구 영암 시종공소에서도 사목에 협력하고 있다.

 

말씀을 증거하는 이들로서, 수녀들은 직접적으로 말씀을 알리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젊은이 성경통독 모임’ 등을 운영하며 젊은이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찾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자연 안에서 기도와 영적 휴식으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성화할 수 있도록 경기 과천과 용인에 영보 피정의 집을 운영하며 말씀 선포의 장으로 삼고 있다.

 

성경대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수녀들의 이 같은 왕성한 활동을 예견한 것일까. 선 신부는 생전 이러한 말을 남겼다.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곳에 수고가 많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1월 28일,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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