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신부님, 묵주기도 많이 하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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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11 ㅣ No.806

[레지오 영성] “신부님, 묵주기도 많이 하셔야 돼요”

 

 

오늘 어떤 글을 써서 이야기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 뭘 말해볼까요?”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신부님, 묵주기도 많이 하셔야 돼요.”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답답해서 여쭤본 건데, 어머니는 그 기회에 또 잔소리를 하셔서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마저도 하느님께서 어머니를 통해서 힌트를 주신 것이라고 믿어봐야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에서 가장 먼저 세례를 받으시고 레지오 단원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는 것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면, 어머니는 항상 거실에 앉아서 묵주기도를 하셨습니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적으라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제가 공부하는 동안 어머니는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부만 하면 자주 졸았지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다가 보시곤 오셔서 혼내곤 하셨습니다. 몇 번은 조곤조곤 말씀하셨지만, 어느 순간에는 화가 나셔서 제 뒤통수를 때리곤 하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런 어머니가 미울 따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미운 것을 넘어서, 어머니의 기도가 향하는 성모님도, 예수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이렇게 혼낼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제 잘못은 인정도 안하고 어머니와 애꿎은 성모님, 예수님 탓만 한 거지요. 좀 더 커서야, 어머니도 사람이고 그 시기는 어머니에게도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면서 그 순간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잘 넘어가고자 했다는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묵주기도 자체가 저에게는 참 힘든 기도였습니다. 공부하기도, 놀기도 바쁜데, 묵주기도를 하고 앉아있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다른 짧은 기도들도 많은데, 이 기도는 기니까요. 어머니께서 가끔 같이 기도하자 하시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이 기도하면서도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피곤하다며 자리를 피하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도하셨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곤 하셨습니다. 이제 와서 보면 어머니는 기도하시면서, 저 또한 성모님께 봉헌하셨던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기도하길 싫어하던 제가 지금 이렇게 신부가 되고, 또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겠지요.

 

 

어머니와 성모님의 많은 사랑과 끊임없는 봉헌 속에서 자라

 

물론 신부가 되었다고 해서, 제가 막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엄청난 말주변이 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론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대지요. “신부님,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재미있는 행사를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를 주도해 사람들이 모이고 싶은 자리를 꾸려 나가지도 못합니다. 한 명, 한 명 잘 끌어 모아야 하고, 갈등이 생겼을 땐 잘 조율해야 하는데 저는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신부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시면, 때로 마음이 철렁하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줄어가는 가운데 제가 하는 일들이 과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재능이 많지도, 제 힘으로 이 일들을 해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커오면서 어머니와 성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끊임없는 봉헌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저 역시 그렇게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모님을 찾으며 주님을 만나고, 신자 분들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싶습니다. 그간 선배 신부님들로부터 사제로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성모님을 찾는 것과 묵주기도라고 들어왔습니다. 그게 꼭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조금 더 와 닿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여전히 저는 젊습니다. 아직 유혹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여전히 진득하게 앉아 있는 것도 어렵습니다. 강론과 훈화 때, 신자들에게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나는 살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지요.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성모님께서 신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저에게도 이야기하신다고 믿습니다. 성모님 당신의 조그마한 도구로라도 쓰시려고 부르셨다고 믿지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는 것은 어려워도 근처를 산책하면서 묵주를 들고 기도합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기도를 청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여전히 어머니께서는 “신부님 기도 많이 하셔야 해요.”라고 잔소리를 하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운동해라, 살 빼라, 공부해라.” 하는 잔소리도 많으십니다. 하지만 이런 잔소리도 예전보단 조금 더 정겹게 들립니다. 잔소리를 하시기 전에 먼저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성모님께 저를 봉헌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글이 올라간 것을 보면, 어머니는 분명 “신부님, 뒤끝 있네요.”라는 말씀을 하실 듯합니다. 한번 웃어 드려야죠. 제가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잖아요. 레지오 마리애 모든 분들께서도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 안에서 행복하십시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5월호, 조인기 암브로시오(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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