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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구역반장 월례연수: 찬미받으소서의 주요 개념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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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11 ㅣ No.1861

[구역반장 월례연수] 「찬미받으소서」의 주요 개념 이해

 

 

지난 달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사회교리는 ‘관찰 – 판단 - 실천’이라는 기본 접근 방식을 따릅니다. 사회교리 회칙인 「찬미받으소서」의 1장 역시 현시대에 대한 관찰에 집중합니다. 이는 기후 변화와 불평등으로 대표되며, 상황이 너무나도 심각하기에 1장의 마지막 항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61항)

 

그렇다면 하느님을 삶의 주권자로 믿는 우리는 무엇을 되돌려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느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회칙이 제시하는 몇 가지 주요 개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후 위기와 정의의 문제

 

무엇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태 환경 문제가 그 자체로 정의의 문제임을 일깨워줍니다. 먼저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48항) 삶의 조건이 가혹해질수록, 가난한 이들이 대처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 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특히 기후 위기에 관한 차등적 책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산업화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의 약 70%는 선진국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크게 받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를 ‘빚’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십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선진국들이 이를 선점하였기에 생태적으로는 가난한 나라들에 빚을 진 셈이라는 뜻입니다. “현실적인 ‘생태적 빚’은 특히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불균형, 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이용한 사실과 관련됩니다.”(51항)

 

또한, 기후 위기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는 세대 간에도 적용됩니다. 지금의 신생아, 어린이, 청소년 세대가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받으리라는 예측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겪을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것은 지금 우리 세대가 내리는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후 위기를 정의의 문제로써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160항)

 

 

생태적 회개에의 요청

 

기후 위기가 정의의 문제임을 인지한 신앙인이라면 자연스럽게 생태적 회개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서 마음을 돌리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공동의 집에 끼쳤던 피해를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하며 우리의 행위와 방관으로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해를 끼쳐 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 곧 마음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합니다.”(218항)

 

그간 인간이 하느님의 자리를 대체하여 자신을 높여 세웠던 결과가 오늘날 생태 위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겸손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지구는 우리보다 앞서 존재하였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67항)

 

또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실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회개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태 환경 문제는 본질적으로 신앙의 문제도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의 고통에 더 마음 아파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위기감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더 큰 실천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통합 생태론의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통합 생태론은 회칙에서 교황님께서 중요하게 제시하시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통합 생태론을 우리가 세상과 타인,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 개념은 환경뿐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삶과 사회의 모든 측면을 포괄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합니다. 어떤 지역이 오염된 이유를 알아내려면 사회의 기능, 경제, 행태, 유형, 현실 이해 방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변화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개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별도의 답을 찾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연계 자체의 상호 작용과 더불어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며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환경 위기와 사회 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139항)

 

그간 인류는 세상을 분절하여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편을 가르고, 경쟁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쟁취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개인끼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국가와 민족 단위에서도 이것이 당연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세상뿐만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자연을 착취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가장 중요한 근본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는 다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결과로 인간 세상에는 극심한 양극화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고, 자연 생태계는 이제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기존처럼 편을 가르고, 영역을 분절하여 그 부분만 해결하려는 방식으로는 거대한 차원의 문제에는 대응할 수 없음이 드러납니다. 기후 위기로 대표되는 생태 환경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온 방식과 관련됩니다. 즉, 이는 인간 본연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통합 생태론의 시각으로 인간뿐만이 아니라 피조물의 세계 전체를 포용하는 데에서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보호는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91항)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평화, 소비주의에서의 탈피

 

회개한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양식 또한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기반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소비주의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소비가 아니라 절제에서 삶의 기쁨을 찾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에게는 세상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 요구됩니다. “소비의 기회가 끊임없이 생겨나 분심이 들고 모든 것과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222항)

 

이와는 반대로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체재입니다. 이를 원활하게 하려고 자본주의는 소비를 미덕으로까지 포장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시장이 상품 판매를 위하여 강박적 소비주의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과잉 구매와 불필요한 지출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쉽습니다.”(203항)

 

문제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필연적으로 대량 폐기를 불러온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21항) 불행히도 이제는 지구가 한계에 도달해버렸습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의 제목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에서 따온 것입니다. ‘피조물의 찬가’에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반복하여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셨습니다. 기후 위기가 절박해지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자는 회칙의 제목은 일종의 아이러니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의도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우리 인간은 잘못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은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정신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시 선을 선택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05항)

 

그러니 위기 상황이지만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여정 안에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회칙의 마지막 항은 이를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께서는 늘 이 세상 중심에 현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245항) 그러니 우리도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합시다.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에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살아가라고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옵니다.”(212항)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5eZOxkfR7vA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3월호,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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