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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을 당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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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성미술 [artsacra] 쪽지 캡슐

2021-03-08 ㅣ No.781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을 당하신다

 



사람들은 서울의 중심 명동에 나가면 명동대성당을 즐겨 찾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집처럼 명동성당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품어 준다.

 

 

한때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낭만이 가득했던 명동에도 개발의 물결리 들이닥쳐 나날이 고층 빌딩이 솟아오르고 있다. 명동성당 마당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나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빌딩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높은 건축물 사이로 보이는 남산의 서울타워가 내비게이션처럼 현재 성당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원래 명동성당의 이름은 종현(鍾峴)성당이었는데, 후에 오늘날처럼 이름이 바뀌었다. 종현의 뜻은 종을 뒤집어 놓은 형상의 언덕이라는 것이다. 명동성당이 언덕 위에 있어서 빌딩 숲 사이에서도 쉽게 눈에 뜨인다. 명동이란 지명이 말하듯이 밝은 동네에 있는 하느님의 집이면서, 사람들의 집이 바로 명동성당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 (마태5, 13-16 참조)처럼, 명동성당은 1898년에 축복식을 가진 후부터 우리나라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비빌 언덕조차 없는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오르며 받은 위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명동성당은 신자뿐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활짝 벌려 보듬어 주면서 교회 본연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역사를 요약해서 한눈에 보여준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암울했던 조선시대에 학문을 연구하며 참된 진리를 탐구하다가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연이어 혹독한 박해를 받아 약 만 명에 이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순교하며 용맹하게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백 년 가까운 박해가 끝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었다.

 

 파리 외방전교회에서는 박해가 끝나자 초기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던 명동 언덕에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박해가 끝나고 드디어 신앙 자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승리의 깃발을 꽂듯이 이 언덕에 벽돌조로 큰 성당을 지었다. 성당이 건립된 지 120여 년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있었지만 원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수 많은 미사와 전례에 도움을 주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더욱 잘 이끌기 위해서 성당 마당과 내부에 여러 성미술을 설치했다.

 

 

 명동대성당 좌측의 사제관 앞 정원에는 예수님의 거대한 두상이 전시되어 있다. 장동호 (프란치스코, 1961-2007) 조각가가 제작한 <수 사형선고 받으심>이다. 명동대성당 건립 100주년이 되던 1998년에 성당 뒷마당에서 교회 미술 조각 전시회를 열었는데, 전시회가 끝난 후 작가가 기증하여 사제관 정원에 설치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눈 가까이서 보며 그분이 겪으신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은 머리에 날카로운 가시관과 못이 박히는 혹독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눈을 굳게 감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시는 모습이다. 이 작품을 통해 2000여 년 전, 온몸으로 사랑을 실펀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을 당하며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신다.

예수님 두상 아래의 좌대에 붙어 있는 세 개의 못은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양손과 발에 박혔던 것으로, 그분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세상과 모든 사람을 극진히 사랑했다는 것을 말없이 알려준다. 우리는 예수님의 큰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이르는 길로 초대받았다.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고통 속에 숨을 거두셨지만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뎌내고 금방이라도 눈을 뜨실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하시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은 정의가 불의보다 강하고, 진리가 거짓보다 강하며,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출처: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을 당하신다, 가톨릭 직장인, 201911(271), pp. 34~3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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