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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살레시오회 성인 탄생: 아르테미데 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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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6 ㅣ No.2120

[祝 · 살레시오회 성인 탄생] 아르테미데 자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부활 대축일을 기해 살레시오회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의 시성을 승인했다.

 

 

아르테미데 자티는 1880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지방의 보레토에서 빈농의 자녀로 태어났다. 어린 돈 보스코처럼 자티 역시 열여섯 살 무렵까지 대농장의 ‘견습생’으로 일했다. 당시 많은 이탈리아 서민들은 농업 위기, 대량 실업, 노동 착취 등을 피해 여러 나라로 이민을 떠났으며 자티의 가족도 가난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나게 된다. 1897년, 열일곱 살이 된 아르테미데는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 바이아블랑카에 도착한다.

 

자티 가족이 정착한 지역의 성당은 1875년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살레시안 선교사들이 사목하던 곳이었다. 아르테미데는 일이 바쁘지 않을 때면 카를로 본당신부를 돕기 위해 환자들을 방문하곤 했다. 어느 날 카를로 신부는 아르테미데의 손에 『돈 보스코의 생애』라는 책을 쥐여 준다. 책을 단숨에 읽은 그의 머릿속에는 ‘살레시안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가득 차게 된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아르테미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베르날에 있는 살레시오 공동체에 입회하여 지원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 결핵에 걸린 한 살레시안이 베르날에 왔고 아르테미데도 그의 치료를 돕는 과정에서 결핵균에 감염된다. 아르테미데는 치료를 위해 1902년 3월, 비에드마의 살레시오 집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비에드마의 살레시오 집은 병원과 약국을 갖춘 유일한 살레시오 시설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2년간의 치료 끝에 병에서 완치된다.

 

1908년,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는 장상들과 상의 후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병원장 신부를 돕는 일에 전념하기로 한다. 1911년 병원장이 사망하자 자티 수사는 갑작스럽게 ‘성 프란치스코 약국’과 ‘성 주세페 병원’의 실질적인 책임자 역할로 일하게 된다. 자티 수사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묵상과 미사 참례 후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돌며 40년간 환자를 방문하였다. 그는 응급환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날씨와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그렇게 아르테미데 자티는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섬기는 일을 통해 일생을 하느님께 바쳤다.

 

1950년 7월 19일, 일흔이 된 자티 수사는 병원의 물탱크가 고장 나자 비가 내리는 중에도 수리를 하기 위해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추락하며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이 사고로 알게 된 것은 그가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1951년 3월 15일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는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4월 14일에 자티 수사를 복자로 선포했다. 2022년 4월 9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자 자티의 시성을 위해 필요한 두 번째 기적을 인정하였다. 향후 교황이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를 통해 복자 자티의 시성 날짜가 결정될 예정이다.

 

 

아르테미데 자티의 생애를 소개하는 영상

 

살레시오회 아르헨티나 관구에서 제작한 ‘자티, 우리의 형제(Zatti, hemano nuestro)’라는 영상이 있다. 이 작품은 32분의 유튜브 영상물로, 지금까지 약 7만 명이 시청했다. QR코드를 통해 이 멋진 단편 영화를 관람하도록 초대한다.

 

[살레시오 가족, 2022년 7월호(175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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