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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5) 사목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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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18 ㅣ No.1977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5) 사목적 사랑

 

 

최양업 신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친교의 삶을 살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였다. 당시 유일한 방인 성직자로서 활동했던 그는 사목적 사랑 안에서 신자들과 친밀한 일치의 관계를 맺었다.

 

최양업 신부는 1850년 10월 1일자 편지에서, 자신이 교우촌을 방문했을 때 신자들이 반기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가 어떤 교우촌에 도착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모두 새 옷을 갈아입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리고 사제가 그들의 인사를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들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들은 공소 회장들을 연방 들여보내 어서 인사를 올리고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최양업 신부는 교우촌에서 미사와 성사 집전 등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그곳을 떠날 때 아쉬워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우리가 교우촌을 떠날 적에는 여행할 옷차림으로 갈아입을 때부터 공소 집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고 탄식 소리로 진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못 떠나게 하려는 듯이 제 옷소매를 붙잡고, 어떤 이들은 제 옷깃에 그들의 애정의 정표를 길이길이 남기려는 듯이 옷자락을 눈물로 적십니다. 그들은 저를 따라나서 제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좀 더 오랫동안 제 뒷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야산 등성이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신자들에 대한 그의 사목적 사랑은 특히 여성 교우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박해로 인해 신앙 수계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교우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며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당시 관습으로는 부녀자들이 자기집 문밖을 자유로이 외출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 교우들이 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다. 더구나 외교인 부모 슬하에 있거나 외교인 남편을 둔 여성 교우들의 경우에는 성사를 받으러 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익히 파악한 최양업 신부는 여성 교우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그들을 찾아가 성사를 집전해 줄 방법을 찾기도 하였다.

 

참조

조규식, 「최양업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4,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9.

여진천,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

양업교회사연구소,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2018.

 

[2021년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의정부주보 3면,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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