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떠오르는 상상 속에 숨겨진 상징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04 ㅣ No.1038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1) 떠오르는 상상 속에 숨겨진 상징은?

 

 

남들이 선호하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평범한 생활을 하는 요한은 갑자기 떠오르는 잡념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생각들은 그 내용이 기괴하고 공포스러울뿐 아니라 양심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성당에서 미사나 전례에 참여할 때는 물론이요 일상생활 중 수시로 생기는 이 분심들로 인해 요한은 자신의 정신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의심했다.

 

요한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생각들은 대부분 자신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거나 혹은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내용이었다. 요한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고통을 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다.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대상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 혹은 싫어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부모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까지 그 경계가 없었다. 심지어 십자고상이나 성모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한은 자신이 마귀에 들렸거나 미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나 증오의 대상에게 잔인한 생각이 들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수 있다. 외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공격성이 무의식적으로 상상을 통해 드러났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도움을 준 가족은 물론이요, 성스러운 믿음의 대상에까지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생각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의식적 과정이 아닌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상상은 우리의 무의식적 욕구를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요한이 고통받고 있는 떠오르는 생각(침투적 사고)을 무의식 안에 어떤 억압된 욕구와 연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나 폭력의 상상이 자기도 모르게 올라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이코패스라고 해석하는 심리학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상상의 내용이 용납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경우, 자신 안에 인정하기 어려운 욕구가 있으며 그것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은 심리상담을 통해 자기분석의 시간을 가졌고,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인식하기 두려운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없는 자기주장과 관련된 문제였다. 요한은 남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말했다가 크게 상처를 입은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체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체험을 일회적 사건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요한처럼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체험을 지속해서 일어날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경우 부정적 사건을 다시는 경험하지 않으려는 대처방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요한은 이것을 타인에게 무조건 맞추는 대인관계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식사나 여행을 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이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에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전적으로 남에게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구가 타인을 죽이거나 해치는 상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상상 속의 폭력성은 타인을 향해 표출되어야 할 자기 생각과 감정의 극단적 상징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점차로 표현하는 빈도와 수준을 높이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상상이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상상은 우리가 마주하기 어려운 내면을 상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생각으로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그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한 번쯤 그 생각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곱씹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2,197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